바츨라프 스밀
[출판사 '김영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특정 물리량의 정도를 나타내는 단어들의 이름에는 대부분 어느 한 방향으로 편향성이 담겨 있다. 예컨대 한국어의 경우 길고 짧음의 정도를 나타낼 때는 '길이'를, 크고 작음에는 '크기'를, 넓고 좁음에는 '넓이'를, 두껍고 얇음에는 '두께'를 사용한다. 왜 '짧이', '작이', '좁이' 등의 단어나 아예 중립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도가 더 큰 쪽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이러한 경향은 한국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의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정의와 설명의 언어인 고대 그리스어에서 크기를 가리키는 단어는 메게토스(megethos: 범위, 넓음, 커다람)인데, 라틴어의 마그니투도magnitudo와 거의 비슷하게 우리 마음이 크기 스펙트럼의 위쪽 끝을 향한다는 걸 보여준다.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14p
이 외에도 체코어,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독일어, 스위스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도 큰 크기 쪽으로 치우쳐진 단어를 사용한다. 물론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폴란드어와 같이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예외도 존재하나, 이 정도면 크기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다.
본 책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인간은 '커진다'는 것에 매료되었는가? 인간이 세워 올린 수많은 중요한 건축물들의 크기는 거대하며, 인간은 그러한 거대한 인공물들과 생명체들을 마주할 때 경외심과 압도되는 감정을 느낀다. 저자는 이러한 성향을 '더 큰 것을 숭배하는 이 새로우면서 보편적인 양상'이라고 서술한다.
생물의 역사는 크기 증가의 역사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크기를 증가시키는 것은 생명체에게 있어서 보편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현대와 같이 인간의 척도를 넘어서는 거대한 인공물들을 제작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는 전적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것이다. 다양한 건축 기술과 철근 콘크리트 같은 새로운 재료의 발견으로 인간은 더 크게, 더 높이 건축물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위의 질문에 답하기 전, 인간이 주어진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자. 인간은 세상을 신체라는 물리적 매개체를 통해 지각한다. 다시 말해 신체는 인간이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규정한다.
인간의 지각은 수많은 내외적 요소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구성된 지극히 상대적인 능력이다. 지각은 인지하는 대상의 물리적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대신, 직관적으로 어떠한 상태인지 비교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어떤 대상의 실제 크기와 길이 등을 수치적으로 측정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측정에서 놀라울 만한 오차를 보여준다. 반면 내 앞에 주어진 대상이 나보다 큰지, 작은지, 아니면 비슷한 크기인지 인간은 손쉽게 비교할 수 있다. 이때 비교의 기준은 필연적으로 인간 자신이기에,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라고 주장한 프로타고라스의 발언은 귀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은 물체에 대한 표준적인 크기와 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이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은 무언가 '정상'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규모를 생성해 낸다. 그러한 평균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데, 책의 서술을 따르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떤 평균(또는 최소 치수)을 기대하고 거기에 따른다. 평균 크기를 모사하고, 그것에 맞추고, 그것을 반복해서 접할 거라고 예상한다. 대상이 어떤 범위를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평균 크기를 예상하고 있었음을 떠올린다."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18p
"우리 지각은 습관화, 예상된 규칙성, 패턴에 대한 기대의 결과물이다."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74p
때문에 그러한 평균으로부터 벗어난 예상외의 크기를 마주하는 것만큼 인상적인 경험도 없을 것이다. 이때 크기의 양극단 중 작은 쪽보다는 큰 쪽을 마주할 때 인간은 더욱 압도된다. 필자는 이를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보다 더 큰 대상을 마주할 때 자주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끼지만, 작은 대상을 마주할 때는 이런 감정을 잘 느끼지 않음은 경험적으로도 자명하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이 많은 언어권에서 대상의 물리적 성질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한쪽으로 편향성을 띠는 이유를 약하게나마 설명해 주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Size, 즉 크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크기'에 초점을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크기'라는 단어보다는 quantity, 즉 '양'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말하는 게 더욱 직관적일 듯하다. 대부분의 성질은 양으로 치환하여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양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말은 그 대상을 측정 가능하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성질은 측정 가능하다. 질적 요소와 달리 양적 요소는 이견의 여지가 적으며 객관적이라고 말하기 충분하다. 정량적 방법은 설득력을 가지기 쉬운 방법이기에 수많은 현상을 정량적 특징에 주목하여 설명함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수치적 자료를 제시한다. 또한 기초적인 수학과 통계학만을 가지고도 주어진 자료를 통해 특정 현상에 대해 어떤 일반화되고 보편적인 서술을 할 수 있는지 소개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크기라는 성질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고 인간 문명은 크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또한 크기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논문과 대중서적 그 사이의 수준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만 쏟아지는 자료와 분석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주제만을 골라 읽어도 무방할 듯하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778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