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rdos Paul Aug 15. 2024

인생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모순」

https://www.youtube.com/watch?v=KisvWoVUZz0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다. 달리 설명할 말이 있을까. 


    그러나 살아간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니며, 안다고 해서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코끼리를 만지는 맹인과도 같아서 자신이 느낀 감각만을 가지고 해석하고 결론 내린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생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는 모순덩어리의 괴물이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모순」 296p.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인생이란 반드시 옳음과 옳지 않음의 이분법으로만 해석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인생이란 눈길을 주고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비논리성과 오류가 묻어 있는 것임을,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가 쉼 없이 춤을 추고 신명 나게 부딪히며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는 모순의 향연임을 「모순」은 말한다. 인생이란 흑백논리로서 쉬웁게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옳음과 옳지 않음, 선과 악, 행복과 불행, 풍요와 고난이 함께 공존한다. 간단하고 앳된 논리학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모순」 173p.


    본문은 네 가지 메모로 사랑을 서술한다. 전화, 유행가, 고마움, 그리고 솔직함의 부재. 네 가지 모두의 공통점은 '나'를 구속하고 가둔다는 것이다. 

    전화기는 애인에게서 언제 연락이 올까 기다리고 애타게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구속한다. 유행가는 이 사람과 헤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여 슬픔에 젖게 만든다. 고마움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해 준 애인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솔직함의 부재는 애인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고 스스로를 "미화시키고 왜곡시킨다." 

    다시 말해, 어떤 이를 너무 사랑하면 그만 '나'를 잃게 된다. 사랑하면 자신을 상대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모순」이 그려내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사랑이 지나치고 특별해서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이다. 그토록 아버지가 두려워했던, 술에 취한 안진진이 두려워했던 절망이 바로 이것이다. 


"… 안방 벽들이 나를 가두는 감옥 같았고, 달려온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순」 86p.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모순」 206p.


    그러므로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늦게도 내게 오지" 말라고 했던 이모의 말처럼, '나'는 선택해야만 한다. 나에게 가장 적절한 속도를 말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생은 곧 상대성원리다. 절대적으로 고정된 하나의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생의 탐구자에게는 각자의 시점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인생은 살아내는 것이며, 살아낸 만큼, 그리고 그동안 탐구한 만큼, 모순을 마주하고 실수를 되풀이한 만큼, 지리멸렬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온 생애를 내던진 만큼 인생의 부피는 커진다. 


    때문에 안진진은 김장우가 아닌 나영규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안진진의 두 남자, 김장우와 나영규는 각각 아버지와 이모부로 대응된다. 그녀에게는 어떠한 삶을 살지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탐구하기로 한다. 탐구한 뒤에 결정을 내리고 그대로 살아내기로. 

    그러나 결국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탐구를 그만두고 먼저 살아내 보기로 한다. 이미 말할 수 있는 어머니의 삶이 아니라, 아직 말할 수 없는 이모의 삶을 살아보기로. 

    이십오 년 뒤의 안진진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과감히 주장한다. 그녀의 결혼 생활의 끝이 이모와는 다른 방식으로 끝날 것이라고.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정신을 부여잡는, "'나'를 장악하며 생애를 살아"내는 안진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모순」 303p.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반대로 이 물음에 대해 아버지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한 나머지, 너무나 깊게 탐구한 나머지 답을 찾지 못한 게 아닐까. 또한 반대로 이모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은 알았으나 그렇지 살아내지 못했음에 스스로 삶을 끝낼 만큼 괴로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설적으로, 결혼 생활 내내 '나'로서 살아가지 못했던 이모는 생을 마감할 때만큼은 '나'로써 인생을 살아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 대신 보다 더 적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죽음을 택한 것이다. 

    가히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과 대답이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 다만 넘치지도 않게, 부족하지도 않게, 실수를 되풀이하면서, 삶을 살아내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보라! 나의 삶은 나의 것이고,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물을 권리는 없으며, 누구도 당신이라는 사람을 간단하고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살 필요가 없으며,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도 없다. 행복과 불행은 해석된 만큼 나에게 다가온다. 

    디오게네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 그렇지 않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불타 없어질 걸 알면서도 불 앞으로 다가가야 한다. 나라는 한 인간은 맹인이며 소의 귀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책의 한 문장처럼,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다.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살아감으로써, 견뎌냄으로써, 저 타는 불 속에 온몸을 내던짐으로써, 온몸으로 모순을 마주함으로써, 나라는 한 인간의 생애는 온통 모순덩어리임을 인정함으로써 해결되고 탐구된다. 그러했을 때 인생의 부피는 커져가며, 말하여질 수 있는 인생인 것이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모순」 9p.


    이 글을 읽는 나는, 당신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외친 안진진의 저 부르짖음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가? 빈곤하고 가여운 나의, 당신의 삶에 절박한 포즈 이외에도 수많은 유연한 포즈들을 취하고 있는가? 때로는 괴상망측하고, 기이하고, 두려워 보일지라도, 당신의 선택을 담담히 마주하고 있는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오로지 당신의 선택들로 채워지고 마침내 완성될 나의, 당신의 본질을 우리는 추구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나아가라! 자신을 자유라는 폭력 앞에 노출시켜라! 나를 향해, 당신을 향해 다가오는 저 거대한 삶의 폭풍우 앞에서 두려워하지도, 외면하지도 말고 정면으로 맞서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옹호하고 용서를 베풀어라.


이렇게밖에 살 수 없었다고. 너무 나를 나무라지 말라고.

「모순」 299p.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632467


작가의 이전글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