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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명 Jan 29. 2024

이북 리더기 (전자책 단말기)

나의 물건 이야기 2




나는 항상 잠들기 전에 책을 읽기 위해 침대 옆에 한 권의 책과 이북 리더기를 두곤 한다. 요즘 침대 옆에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과 함께 나의 두 번째 이북리더기인 ‘교보 샘 7.8’ 구형이 있다.


요즘 바쁜 관계로 책 읽기에 소홀했다. 일과를 정신없이 해내다 보면 이미 침대에 누울 땐 많이 지친 상태라 책을 읽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어느 날은 불현듯 책을 읽자는 생각이 나더라도 이불 밖으로 굳이 손을 꺼내 뭔가를 집어들 엄두조차 나지 않아 그냥 눈을 붙이고 잠들고 만다.




일상의 틈에 책 읽기를 끼워 넣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하루 중에 굳이 잠들기 전에 책 읽기 시간을 마련한 것도, 막상 읽기를 시작하면 무한정 읽을 수는 없어 자기 위해 중간에 끊어야 하는 기제를 일부러 만든 것이다. 사실 내가 해야 하는 하루의 일들을 깔끔하게 무시할 수만 있다면 하루 종일 책만 읽고 싶어질 정도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일부러 침대 옆에 읽을 책을 둬 자기 전까지만 읽자고 다짐한 것이다.


사실 지금은 책 읽기를 위해 물리적인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바빠서 책 읽기 힘들다’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바쁘길래 그 잠깐의 시간도 못 내는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알겠더라. 그러다 보니 내 책 읽기 루틴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이 불만족스럽고, 이 고민은 자연스레 침대 옆에 있는 이북 리더기에 쏠리게 되었다.


나의 교보 샘 7.8 이북 리더기. 편하게 들기 위해서 집에 있던 그립톡을 붙여서 쓰고 있다.


이북 리더기는 책을 자주 읽는 사람들이 정말 사랑하는 기기다. 일부러 빨리 잠들기 위해 실내 간접 등만 켜는 어두운 방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고, e-ink를 사용하니 아이패드나 다른 기기에 비해 눈이 훨씬 편하다. 게다가 다양한 온라인 이북 구독 서비스로 인해, 월에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면 서점을 가서 책을 살 필요 없이 베스트셀러를 포함한 많은 책을 읽어볼 수도 있다. 나는 보통 ‘밀리의 서재’와 ‘크레마 클럽’에서 읽고 싶은 책들을 검색하고, 그때그때 해당 책들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막상 이 기기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마땅치 않다. 일단 처음에 기기를 구입하는 비용이 있어 진입 장벽이 있고, 아무래도 전자기기라서 배터리를 따로 충전해서 관리하는 불편함이 있다. 무엇보다 이북 리더기 사용자들이 모두 두려워하듯, 리더기 액정이 굉장히 약하기 때문에 오죽하면 ‘설탕 액정’이라고 부를 정도다. 게다가 위에 말했던 구독 서비스에 직접 접속해 책을 내려받으려면, 기기 내 와이파이를 켜고 사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느리고 번거롭다. 심지어 리더기의 크기도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고려 요소다. 휴대성을 생각하면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6인치가 좋은데, 책 크기와 비슷하게 읽으려면 7인치 이상이면 좋다고 하니 잘 고르는 것도 본인이 써봐야 알 정도다.


구동 화면과 설치된 앱이 표시되는 홈 화면. 구독형 이북 서비스들과 리더기에서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설정을 바꿔주는 앱을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인데 이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게 매우 귀찮은 일이긴 하다. 제일 쉽게만 생각해 보자면 그냥 물성이 있는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제일 편하고 저렴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지만 이북 리더기와 이북 서비스에 대해서 쉽게 미련을 놓지 못하는 것이, 비용을 주고 사기엔 판단하기 어려운 책들을 구매할 때 최적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솔직히 책의 제목이나 표지만으로는 ‘나에게 필요한 책’인지 확신할 수 없는 책들도 아주 많고, 내가 찾던 책이 나에게 맞는 수준의 책일지도 헷갈리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게는 내가 이미 이북 서비스에 가입한 상태라면, 같은 값이면 도서 서비스에서 제공하지 않는 다른 책을 사고 싶은 마음도 있다. 게다가 실물 책은 들고 다니기에 굉장히 '불편하다’.


이북 리더기 때문에 생각의 꼬리를 이어봤지만, 결국 항상 적은 자원으로 효율적이자 효과적인 최선의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이 단순한 책 읽기 습관에도 이어진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고작 책 읽는 게 뭐라고 읽기 전부터 고민하게 되나 싶은 순간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름 객관적인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책 읽기에 필요한 시간이나 돈이라는 객관적으로 비용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집에도 지금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 많아졌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이 따로 있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스스로 책 읽기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이 모든 고민을 떨쳐내고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럴 때를 위해 내 주변에 책을 많이 두고, 이북 리더기도 언제든 눈에 띄는 곳에 둘 필요가 있다. 내가 알고 싶은 것, 지금 궁금한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련된 책 정보를 찾으려고 할 것이고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 일과를 조정해 가며 다시 고민할 것이다. 다만 이걸 깨닫기 이전과 달라지는 점은, 그 고민을 지금처럼 부담으로 느끼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 스스로 책을 읽을 준비가 된 상태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본질적으로는, 책 읽기 자체에 연연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자기 계발 서적을 읽는 걸 좋아하는데, 그들의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자기 계발을 효과적으로 실천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뭔가를 인풋으로 집어넣는 순간이 아니라, 익힌 것들을 실제로 해보면서 아웃풋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책 읽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책의 지식을 잘 흡수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무언가를 바깥에서 실천하고 온 다음에 다시 책에 관심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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