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아니 그보단 눈 깜짝 하니까 이미 지나간 일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긴장감은 나이를 먹어도 적응이 안된다.
내일 아이들 학교로 학부모 상담을 가야한다. 국제학교에 다니게 된 딸들 덕분에 엄마는 또 영어를 쓰게 되었다. 그냥 상담을 가도 긴장될 판에 영어'말'을 알아들어야 하고 영어'말'로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동안 영어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닌데 영어는 늘 어렵다. 더욱이 파란 눈의 남자 어른과 대화해 본 적이 있던가. 단연코 없다. 수줍음 많은 내 성격에 이건 정말 혹독한 일이다. 어딘가 체한 기분이 자꾸 든다.
5년 전 우리 반에 베트남 친구가 전학을 왔다. 아이의 어머니는 서울에 있는 한 추어탕 식당에서 일을 하셨는데, 그러다 식당 사장님과 결혼을 했다. 덕분에 그 친구가 베트남에서 한국 학교로 올 수 있었다. 어머니와 한국 아버지가 함께 상담을 오시던 날이 생각난다. 공손히 교실 문을 여는 아버님 뒤에 어머니가 계셨고 교실에 들어오면서 신발을 벗으셨다. 당황해서 말렸지만 한사코 괜찮다 하셨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교실이니 본인의 지저분한 신발이 닿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분명 딸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셨을텐데 한국말을 잘 못하는 어머니께서는 충분히 묻지 못하셨다. 그 분을 배려해 되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지만 아마 반절도 이해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저 내 말이 끝나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 흐엉 잘 부탁드려요." 하셨다. 그 분의 기억에 내 모습이 겹쳐보인다.
그래 맞아. 나도 선생님이다. 누구보다 선생님 마음을 잘 안다. 분명 선생님은 나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님을 알고 배려하실 것이다. 알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은 사라지질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 혼자가 아니다. 한국에서 학부모 상담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다. 여기는 학생도 초대된다.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시도해보고 싶었던 모델이기도 하다. 그럼 궁금해야하는 것 아닌가. 상담이 기대되고 설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모르겠다. 부디 쿵쾅거리는 마음이 진정되고 내일 당당한 학부모로 선생님을 만나기를!
영어 말하기에 소심해질 때 나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내가 쓰는 언어 보다 내가 하는 생각이 더 중요하다. 좋은 생각은 항상 존중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