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집에 '루틴'이 하나 생겼다. 잠자기 전 동시집 읽기. 아니, 읽기라는 능동적 표현은 좀 안 어울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기 전에 그림책을 많이도 봤다. 종종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성의 있게 읽는 것이 힘들었다 고백하고 싶다. 그래도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큰 임무 중 하나라는 사명감으로 참 꾸준히 그랬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이 필요 없어질 무렵 나는 자유를 되찾았다. '잘자. 사랑해. 좋은 꿈 꿔.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자.'하고 포옹 한번 뽀뽀 한번 한 뒤 자기들 방으로 들여보내면 그만이 되었다. 더이상 좁은 이불 사이에 끼어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서 자라고 잔소리만 좀 하면 되었다. 참 편하다. 아이를 낳고 그런 시간이 오기까지 꽤나 고되었다.
그런데 낯선 나라의 낯선 집에서 다 큰 아이들은 그렇게 '쿨'하지 못했다. 솔직히 진짜 다 큰 어른인 나도 그랬다. 텅빈 공간에 혼자 있는게 싫었다. 서로의 요구가 맞물려 한 방에 잠자리를 펴고 모였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직 잠기차는 정류장에 도착하지 않았고 마냥 기다리자니 어딘가 적적했다. 그렇다고 다시 일어나 다같이 게임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함께 양 한마리 양 두마리를 세기도 싱거웠다. 책을 읽어주자니 아이들의 키만큼 글밥도 늘어나서 별로 하고 싶지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동시를 읽어주자. 잠기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예쁜 생각주머니를 달고 꿈속을 여행할 수 있도록 동시를 읽어보자.
책꽂이에서 동시집을 하나 꺼내온다. 천사같은 아가들아 눈 감고 들어보렴. 동시는 짧아서 좋다. 연 마다 숨을 고르며 잠시 생각하는 휴식도 좋다. 무엇보다 낱말 하나하나가 맑고 순수하다. 의미가 함축적이라 그 깊이가 가늠이 안되는 것도 좋다. 처음에는 한두 편 읽고 누우려고 했는데 시를 읽어주는 사람이 더 궁금해서 읽고 또 읽는다. 어느새 아이들은 새근새근 잠들었다. 불을 끄니 밤은 어두운데 바깥 불빛들은 아직 밝다. 저 하늘 어딘가에서 아이들의 꿈도 빛나고 있겠지. 그 빛에 의지하여 나도 잠을 청해본다. 우리는 그렇게 잘 잤다.
동시 읽어주는 밤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어느 정도 엄마의 의도가 있었음을 털어놓지만, 아이들은 그 이상으로 좋아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연일 "엄마, 동시 읽어줄거지?"를 외쳤다. 우리집은 그렇게 밤마다 동시 읽어주는 집이 되었다. 너무 피곤했던 어느 밤, 미안하다 엄마는 너무 졸려서 오늘은 그냥 자고싶다고 하자 큰딸이 오늘은 자기가 읽어주겠다고 한다. 불을 끄고 침대 옆에 스탠드만 켠 채 첫째는 동시집을 읽는다. 아이가 읽는 동시말이 사근사근 내 귓속으로 들어온다. 웃음가스를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입안에서 조금 달콤한 맛이 나는 것도 같다. 그렇게 나는 또 잠들었다. 알겠다 아이들이 매일 밤 '동시'를 외치는 이유를.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읽어주어야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을 들으며 잠들면 분명 몸도 마음도 예쁜 사람으로 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