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그보다는 좀 더 오랫동안 이상하게 자꾸 눈에 거슬리는 단어가 있다. 다정多情. 다정한 것, 다정하게, 다정히. 다정은 뭐길래 다정한 척 내 눈에 띄어 자꾸 내게로 오려하는가. 나는 하여튼 다정한 사람은 아닌 것을. 내가 다정하기를 바랐던, 다정하기만을 바랐던 당신을 떠올리며 나는 이렇게 어물쩍 글이나 싸지른다.
다정한 인간. 단언컨대 거진 서른 밤을 지새워온 내게 있어 가장 사치스러운 바람은 다정한 인간이 되려는 것 아니었을까. 나 자신이 친절한 이웃이길 바라는 소망은 늘 꿈꿔왔으니 친절하기 위해서 다분히 노력했지만, 다정한 것은 조금 다르지 않은가. 한자 그대로 정情이 많은多 인간은 맞는 것도 같지만, 나는 내가 다정하지 않은 것을 언제나 자책했다. 당신도 내게 그러하다 말했으니까.
오빠가 다정했으면 좋겠어. 조금 과장하자면 거의 매일을 몇 년 전 여름에 함께 했던 너라면 알았을 것이다. 내가 정이 많지 않은 사람은 아니란 것을, 오히려 정이 과해서 혼자 상처받고 시들어져 끝내 쇠약해져 버렸음을, 그래서 다시는 너무 넘치는 정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을, 그럼에도 너한테 만큼은 내 남은 용기까지 끌어모아 정으로 포장해 건네고 있음을, 너만은 알아야 했다. 그럼에도.
감정이 뚜렷했다. 말하자면 사랑을 사랑이라고 있는 그대로 발음할 줄 알았던 너는, 나 역시 너와 같은 언어로 그러하기를 바랐다.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사랑해라고. 알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의 습관대로, 그간 빚어온 새롭지 못한 꿉꿉한 방식으로 내 사랑을 전할 뿐이었다. 몰랐지만 내가 보여줬던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그 전부는 진작에 틀렸다. 네가 떠났다. 내가 다정하지 않아서.
여전히 다정하지 못한 것에 자책한다. 번지르르한 문장들이 입술을 마구 애무해도 새어 나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다. 잔뜩 겁을 먹어 눈 감고 자신을 위로할 뿐이다. 바닥나버린 사랑을 끌어모아 그마저도 실실거리며 누구에게 쥐어주던, 아직은 아픈 것이 아픈 것인지 모를 때의 나를 마주한다. 위로한다. 속삭인다. 이제 그만 죽어주라, 너 때문에 내가 다정하지 못하잖아. 제발.
나도 다정하고 싶었겠지. 나도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을 거야. 사랑하니까, 그래서 사랑한다고, 사랑해라고 맘껏 말하고 싶었겠지.
뭐가 그렇게 어려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나는 이해가 안 가. 화가 나.
헤어지던 날 밤, 너는 사랑을 꺼내고 남은 부스러기까지 한꺼번에 내게 던졌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로 한다. 나 혼자만의 흉터는 동정을 살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내가 사랑한, 사랑한다고 말한 모두가 죽었는데 너는 그중 하나가 아니라 다행이다. 네가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