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다. 꿈에서 나는 너한테 기대 어리광 피우고 있었다. 팔짱을 끼니 너는 왼팔을 급히 빼내었고, 그 손으로 나를 때렸다, 찰싹. 남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철딱서니 없다는 듯 타이르는 네 목소리는 선명했다. 알싸한 등을 숨기고 굳이 네 그 왼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너의 존재를 확인한다. 몇 년 만에 만난 너는 왜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이따금 그런 순간들이 있다. 어떤 시간선을 어떻게 건너서 어쩌려고 나를 그곳에 앉히는, 이런 거룩한 순간이. 사랑을 시작한 순간일 수도, 이도 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신성한 시간선 속에서 몇 번을 죽고 죽이고 죽여지는 것을 반복하면서까지 살아남는다. 그렇게라도 하면 사무치게 그리운 떠나갔던 너희를 볼 수 있어서.
개구리가 울어댄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여름에 누군가와 나란히 하천가를 걷고 있다. 내가 보인다. 나는, 그니까 나를 가장해 걷고 있는 ‘저것’은 무언가를 재잘거리고 있는데 제법 신난 눈치다.
나는 부자가 돼도 행복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 그래도 나는 부자가 될래.
그럼 나도 부자가 돼야 하나?
응? 아니, 넌 예술해.
‘저것’은,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내 예술은 진작에, 아니다.
외젠 들라크루아가 말했다던데,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예쁘기까지 하다면, 당신의 예술은 죽었다고. 더 이상 불행을 춤추지 못하게 된 나는 확실히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지, 내 예술은 불행을 파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다 이어진 대화에서,
맞아, 점심에 만났는데. 형이 행복해 보인다고.
응.
아주 주접을. 너 만난다고 하니까 놀라면서.
놀랄 일인가?
나 행복해 보이나 봐.
행복해?
모르겠어.
그럼 안 행복한가?
모르겠네.
다른 사람 기분은 신기하게 바로 알아차리면서 본인 감정은 하나도 모른다는 그녀 한마디에 나는 불행을 들킨 것 같아 창피했다. 분명 다시는 불행을 추지 않기로 했으면서. 꿈이었다. 너무 창피해서 꿈에서 깼다. 눈 떠보니 나는 멀쩡히 살아있다. 방금까지 선명했던 그녀와의 모든 장면들이 십 년 전에 본 영화처럼 흐릿해진 걸 보니 꿈을 꾼 것이 맞나 보다.
한때는 선명했던 꿈을, 이제는 실제였는지조차 모르겠는 그 순간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여름에, 작년에 너무 오랜만에 꾸었다. 다시 선명했고 또다시 흐릿해졌다. 이후에 나는 당신과 무얼 했는지, 떠나보냈는지, 떠나왔는지. 우리의 것들은 맞닿았는지, 우리의 연민이나 위로, 사랑으로 포장한 동정 그런 것들은 하나가 됐는지. 그래도 사랑이었는지. 한 개도 기억나지 않는다.
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