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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Mar 08. 2024

39. 경험을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과 나의 고통




입학


아이의 입학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교복을 새로 맞추고 어려워하는 수학 영어를 보충하기 위해 같이 학원을 알아보러 다니고, 마련해야 할 준비물을 챙기고 이것저것 준비하며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고등학교는 10 지망까지 할 수 있는데 보통 5 지망 안에 지망한 학교에 배정이 되는 것 같다.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와, 내신 성적을 후하게(?) 준다는 학교와, 급식이 잘 나온다는 학교와, 교복이 예쁘다는 학교들 사이에서 큰아이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 엄마, 나 어디 쓰죠?


지망 용지를 들여다보며 같이 고민을 했다.


/ 넌 어디에 가고 싶은데?

/ 여길 가자니 이게 걸리고, 이 학교는 그게 좋은데 저게 걸리고, 아... 진짜... 어디 가지?


아이의 말을 들으며 그렇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아이가 나 어디 가죠?라고 다시 물었다.


/ 글쎄, 엄마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너무 멀면 등하교가 힘드니까 그걸 중점에 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데, 어떤 선택을 한다 해도 절대적으로 좋거나 절대적으로 나쁘진 않을 거야. 너무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잘 생각해 보고 선택해 봐.









언제든 너의 어려움에 응답한다는

무언의 메시지



결국 아이는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를 1 지망으로 시작하여 10 지망까지 직접 써 내려갔다. 그리고 때로 거길 쓸 걸 그랬나, 저길 쓸 걸 그랬나 혼잣말을 했다.

아이는 1 지망으로 썼던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다시 신입생이 되었다. 그래도 다니던 중학교보다는 멀어져서 힘들어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힘든 아이를 위해 따듯한 밥을 지어주는 일뿐이다.

그리고 반찬으로는 " 힘들지? 가깝다 해도 조금 멀어져서.. 당분간은 힘들어도 적응되면 괜찮아질 거야.."


기름진 앞머리에 두드려 바르는 노세범 파우더와 립밤이 떨어졌다는 말이 잊히지 않아 주문해서 건네주니 아이가 이거 다 쓴 걸 어떻게 알았냐 묻는다. 네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했더니 웃으며 고맙다고, 잘 쓰겠다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은, 내가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무언의 메시지이다.








선택의 기로


매 순간, 선택의 기로


아이가 부럽다. 그래서 가끔 샘이 나기도 한다.

고민되고 걱정되는 일을 표현할 곳이 없었고, 그걸 기꺼이 받아준 사람도 없었으며, 지나가는 말을 붙잡아 기억하고 있다가 필요를 채워준 사람도 없었다. 살아가며 마주한 많은 두려움과 불안을 경청해 준 사람도 없었다. 내 엄마는 내게 그런 것을 해주지 않았다.


교복도 실내화도, 운동화나 체육복도 내가 빨아 입었다. 하얀 깃에 하루의 때가 묻으면 빨랫비누에 칫솔을 문질러 더러워진 깃에 문질러서 빨았다. 내일 입어야 하는데 안 마를까 봐 걱정돼서 축축한 교복 셔츠를 다리미로 다려서 널었다.

세탁기도 없어서 손빨래를 해서 입었다.


큰 산처럼 의지가 되고 안전함을 느끼는 존재는 없었다. 언제든 의지할 수 있고 무엇이지 않아도 되는 경험도 해 본 적 없다. 그래서 아이가 부럽고 샘이 난다. 엄마로서 아이를 돌보면서도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난 그래 본 적 없는데..'라는 억울함과 슬픔이 고개를 쳐든다.


매 순간,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상처를 경험하는 선택을 할지, 기억하는 선택을 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기억하는 선택을 한다.

아픔을 기억으로 만드는 선택은 무겁고 외로운 일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사랑받아본 적 없는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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