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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Apr 13. 2024

42.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방법

당신과 나의 고통




한 무더기의 들꽃 같은 아이들.



들꽃 같은 아이들



소담스러운 들꽃들이 무더기로 핀 작은 성당에서의 일이다. 그 성당의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있어 걸을 때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날도 발밑의 잘그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묻혀 버렸다. 아이들 무리가 신부님을 잡으러 뛰어다녔다.


신부님은 두 팔을 크게 벌려 한 무리의 아이들을 한 무더기의 들꽃을 안는 것처럼 안았다. 아이들은 신부님의 얼굴을 만지고 숱 없는 대머리도 만지고

딱딱한 가슴도 만지고 팔뚝의 볼록한 알통도 만지고 우와! 거리며 놀랐다. 우와 신부님 힘 디게 쎄겠다!!







신부님이다!!


신부님이다!!



그분은 아이들이 숱 없는 머리카락을 뽑아도 허허 웃으며 아이들 곁에 있었다. 아이들을 멀리하지도 근엄하지도 않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신부님은 아이들과 성당 마당에서 잡기 놀이를 했고 아이들을 단체로 안아주었다. 거대한 거인이 작은 소인들을 들어 올리는 광경이 매주 일어났다. 아이들은 성당 마당에 신부님이 나타나면 단체로 달려갔다. 신부님이다!! 하면서.


내게는 성장과정의 소중하고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때 그 성당에서의 기억 하나가 따듯함으로 남아있다.

그 따듯함은 단순한 놀이에 있지 않다. 신부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던 시선에는 사랑이 있었다. 그런 것을 지금 말로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깊은 사랑이었다. 그는 눈으로 말했다. '너희는 무척 귀중하며 소중한 존재다.'


그런 신부님은 이후로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제사장으로서의 신부는 많이 보았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가로서의 신부님은 보지 못했다.







고통 속에서도 살아있게 만드는 힘



불멸의 의지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때 그 신부님의 나를 포함한 아이들을 바라보던 시선이 떠오를 때가 있다. 의식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그 사랑이 넘쳐흐르던 눈빛이 잊히지가 않는다.


한 사람을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건 어쩌면 어마어마한 돈이나 법적인 장치 같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나의 눈빛만으로도 인간을 구할 수 있다. 그런 시선을 가진 어른이 많았으면, 사랑을 할 줄 알고 사랑을 하려고 하는 어른이 많았으면 좋겠다.


긴 시간을 살아왔지만 그 신부님 이후에 사랑할 줄 아는 어른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되어보기로 했다.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불멸의 의지가 아니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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