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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2시간전

49-2. 손수경험한 꼭지가 돈다는 말

당신과 나의 고통


손수 경험한 피꺼솟


피꺼솟


며칠 전 비가 와서 말리느라 한쪽에 걸어두었던 노란 우산 안의 신문지 뭉치를 보는 순간, 피꺼솟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됐다.

과거의 상처를 말하는 순간 나는 분노했고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 나를 보면서도 그녀는 결국 돈을, 몰래 놓고 가버렸다.


한 조각의 연민이 있었다. 수용되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인간에 대해 한 조각의 연민이라는 게 있었단 말이다. 그러나 그 마지막 한 줌이 바람에 산산이 흩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송금하겠다고 전화를 하니, 그러면 정부 지원을 못 받는다고 그러지 말라 하기에 그건 당신 사정이라고 하고 끊었다. 곧이어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장모님이 돈 부치지 말래.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내가 알아서 해. 당신은 빠져.라고 하고는 은행에 달려가 송금을 했다.


송금을 하고 나오니 태양이 뜨거웠다. 더워서 땀이 흘렀고 배고픔이 밀려왔다. 시계를 보니 두시가 넘었다. 집에 와서 밥을 차려 먹으면서도 계속 화가 났다. 복어처럼 입안 가득 밥을 퍼 넣으며 더 씩씩해져야지. 더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했다.







너는 나쁜 사람이어야만 해


너는 나쁜 사람이어야만 해.

=> 그래야 내가 좋은 사람이 되니까.


그녀는 언제나 내가 나쁘다고 했다. 자라는 내내, 내가 두 아이를 출산하고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쁘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녀에게 나는 나빠야만 하는 대상이다. 왜 그럴까?


엄마는 자신의 의존성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나쁜 위치에 둔다. 딸인 내가 번거로운 존재, 짐 덩어리,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야 자신이 형제들에게 의존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피해자야. 쟤가 나를 고통스럽게 해.라는 말을 해야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므로 내가 어떻게 해준대도 결과는 같다. 아무리 좋은 걸 주어도 나는 나쁜 사람이다. 그녀가 나를 대하는 기본값이 그렇다.


그녀가 건넨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 돈은,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물건이다. 그 돈을 나에게 주고 그 돈을 받은 내가 계속 엄마를 찾아가지 않으면 나쁜 년이 된다. 그녀는 내가 나빠지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이 계속 형제들에게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위한 배설물이다. 내가 그 배설물을 받아주기를 원하고 그걸 거절하자 배설물을 던지고 간 것이다.


형제들이 고맙고 그들을 그렇게 신뢰한다면 나에게 찾아올 일이 무엇일까. 내가 왜 필요한가, 형제들이 찾아와서 음식을 해주고 돌봐줘서 고맙다면 그 돈을 그들에게 주면 될 일이 아닌가. 왜? 왜 내게 돈을 던지는 것인가? 그것은 좋은 존재가 되어서 자신의 의존에 합리성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상태는 내가 무엇이지 않을 때 불안해지는 관계 안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안전한 관계는 내가 아무도 아니라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괜찮은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면서까지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자기는, 괜찮은 자기, 좋은 자기, 그래서 의존해도 되는 자기다.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식에게 나쁜 자기를 모조리 투사하는 엄마를 어떻게 손절하지 않을 수 있나.


엄마의 나쁜 자기를 물려받은 나,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아온 한 여자, 그리고 앞으로도 무수히 그 죄책감이라는 불순물을 걷어내며 살아가야 할 한 여자, 그건 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꾸 그 누더기를 주워 입으려는 마음의 습관을 매 순간 바라봐야 할 한 사람의 인생이 화가 난다. 피꺼솟, 꼭지가 돈다는 말은 이런 경험을 말하는가 보다고 얼음을 씹어 먹으며 혼잣말을 한다.


최악의 부모는 의존적인 부모다. 누가 봐도 괴롭히는 것처럼 학대하는 부모는 차라리 더 손절이 쉽다. 그러나 의존적인 부모는 피해자의 가면을 쓰고 무수한 학대를 저지른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학대인지에 대한 자각도 없다. 아주 굳건히 믿는다. 자기는 피해자라고. 최악 중의 최악의 부모는 바로 이런 부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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