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아존중감을 종이의 두께에 비유하자면 기름종이 수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장환경은 나의 내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나라는 사람에 대한 부적절감을 가지게 했고 타인에 대한 불신감을 속옷처럼 입게 만들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무슨 의도지? 왜 잘해주는 거지?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무슨 의미지? 타인을 의심하고 부정적인 정보만을 수용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된 의문점이 있었다. 왜 평가받아야 하지? 왜 사람에게는 더 낫고 나쁨이 있어야 하지? 왜 무엇은 멋지고 무엇은 안 멋진 거지? 왜 보편적이고도 긍정적인 어느 지점이 있어야 하는 거지? 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이 있었고 계속 동의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네 자존감이 낮아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그랬을까? 정말 내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였을까? 그래서 동의가 되지 않는 거였을까?
복지시설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기저귀를 갈고 기저귀에 묻은 대소변을 치우고 식사를 돕고 양치를 도와드렸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일손이 부족한 적은 없었지만 대소변을 치우는 일손은 늘 부족했다.
처음 일주일간은 식사를 하지 못했다. 하루종일 대소변을 치우다 보니 코끝에서 계속 대소변 냄새가 났다. 미역국에서도 쌀밥에서도 나물무침에서도 짜장밥에서도 대소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식사를 잘하지 못해 체중이 6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관장을 도운 날에는 더 먹지 못했다. 스무 살이었는데 그때가 건강이 제일 나빴다.
그곳에 간 이유는 오로지 숙식제공 때문이었다. 집을 나가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곳에서는 무료로 숙식도 제공되었고 월급도 받을 수 있었다. 계속 대소변을 치우다 보니 나중에는 대변이 진흙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냄새도 견딜만해졌다.
그곳에는 다양한 장애가 있었다. 인지장애, 발달장애, 다운증후군, 치매, 정신장애, 때때로 전국 각지의 노숙인 분들이 오시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도마 수녀님만 백 분 정도 계셨고 마리아 수녀님만 이백분 정도 계셨다. 일하다가 수도자로 스카우트가 될 뻔했지만 나라는 사람은 순종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그렇게 되진 않았다.
그곳에는 보편의 기준이 없었다. 걷지 못한다고, 혼자 밥을 떠먹지 못한다고,발음을 정확히 하지 못한다고 비난받는 사람이 없었다. 선택하지 않은 일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곳이 그곳이었다. 일상에서 부딪히고 다투긴 했지만 그것이 너라는 존재가 결점을 가진 존재이므로 수정되어야 할 존재라고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은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도왔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도왔다. 볼수 없는 사람은 볼 수 있는 사람이 도우면 그만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그 세계의 다른 점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었다.
나는 유년기에 자아존중감을 상실했다. 그리고 <완전한 반쪽을 가진 사람들> 을 만났다. 나는 그들을 화장기 없는 얼굴로 만났지만 아무도 내 외모를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너는 너이고 나는 나였다. 바로 그점이 모두가 만났으면 하는 세계, 멋진 신세계였다. 나는 자아존중감을 상실하고 멋진 신세계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