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때 희망을 잃을까? 백번의 시도가 백번의 무용함일 때? 의미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때? 어떤 형식으로든 어떤 일이나 경험이 마지막이었다는 마음이 들 때?
화가 반 고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7년 동안 단 한 점의 그림도 판매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중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 사망 전 2년 내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그는 70일간 70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의 죽음이 자살이다 아니다는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나는 그가 살아있는 매 순간 희망을 소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간절한 소망이 느껴진다.
희망을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의 배경은 어떤 상태일까? 절망 상태일 때 발생한다. 사람은 생존본능이 있어 절망상태가 되면 그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 그래도 무언가를 할 때는 그나마 생에 대해 욕망하는 상태다. 희망을 소망하는 상태는 그것이 비록 처절할지라도 동적인 에너지가 있다.
그래서 고흐의 그림에는 생동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다. 처절한 생동의 에너지, 절망 속에서 끊임없이 희망을 소망하는 치열한 생동의 에너지가 있다. 그런 그림은 감상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왜? 절망 속 자취를 감춰버린 희망을 샅샅이 뒤지며 살고자 하는, 그래도 살아보고자 하는 한 인간의 처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처연함을 공감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그 처연함을 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일 수 없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처연함을 무의식적으로 공감한다. 소리 없는 처절한 공포를 직관적으로 보여준 뭉크와 다르게 <소리 없는 처절한 절망을 아름다움으로> 보여준 고흐, 그래서 더 슬픈 것이다. 차라리 절망을 절망으로 그렸더라면 그의 그림이 그렇게까지 슬프게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로 나는 희망을 잃었고 절망을 얻었다.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절망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절망은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 목표에 대한 집착이 아닌 목적에 대한 집중을 가져온다. 절망 없는 인생은 영혼 없는 인형과 같다.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상태는 공산품처럼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인형 같은 존재의 상태이다. 진공이 아니라 생동의 상태로 울고 웃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이 삶을 기꺼이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