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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Sep 29. 2024

6. 영속성

사라져 버린 것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찾아간 적이 있다. 분명 그 동네였는데 모든 게 다 변해버려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좋은 기억 하나 없는데도 내가 기억하는 세상 어느 구석쯤은 그대로였으면 했다. 변해버린 그곳을 보며 왠지 미아가 된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영원하길 바라는 것들이 있다. 아름다운 추억, 사랑, 젊음, 부, 명예, 권력, 생명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다. 우리가 영원하길 바라는 대부분의 것들은 유한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늦출 수는 있지만 영원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추억 또한 마찬가지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기도, 노화 때문에 사라지기도 한다. 기억은 사라지고 정서만 남는다.









새해가 밝아 작심삼일의 계획을 세운 기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 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오면 아, 한 해가 또 지났구나를 절감하게 된다. 삐삐 머리를 하고 뽈뽈 기어가 싱크대 수납장 문을 열어 해맑은 표정으로 간장을 쏟아버리던 작은 아이의 눈높이가, 어느새 나와 같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아이가 자랐다는 걸 알게 된다.


바쁜 일상살다 어느 순간 변한 것을 발견하고는 영원한 것은 어떤 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 그러나 그건 사실 내 눈으로 발견한 것일 뿐 발견되기 이전부터 그 나름대로 이미 변화 중이었을 것이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그대로가 아니라는 걸 발견할 때면 문득 외로워진다. 언젠가는 모두와 이별해야 한다는 걸 직감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나는 영속성을 상실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유한성을 얻는다. 그 유한성으로 모든 것들이 한층 더 귀하고 소중해진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적립이 아닌 일시불로 쓴다. 만나는 모든 사람, 그들과 보내는 모든 시간, 모든 찰나가 귀하고 소중하다. 물론 그들은 이 마음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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