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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1년 6개월 동안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된 것들

내 주변에는 이모티콘 작가가 아무도 없었다. 비전공자인 내가 어떻게 이모티콘 작가가 되어야 할지 처음에는 그저 막막했다. 하지만, 막막함을 뒤로하고 한걸음이라도 나아가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인터넷에서 이모티콘 작가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모티콘 작가가 되는 법”을 키워드로 스크롤을 계속 넘기며, 검색 결과로 나오는 웹페이지들을 거의 모두 찾아봤다.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높은 이모티콘 강의들도 찾아보았다. 온라인 인터넷 강의 플랫폼에서 유료 이모티콘 강의들도 몇 가지 구매해서 수강했다. 이모티콘 작가가 되는 법에 대한 책들도 읽어보았다. 이모티콘 작가의 출시 후기도 찾아보고 이모티콘 작가 카페 등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정보 과잉 시대에서 내가 원하는 지름길을 한번에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러 정보들을 바탕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나니, 이모티콘에 대해 나름대로 깨달은 것들이 생겼다. 몇 가지 깨달은 것 중에 첫 번째는 이모티콘을 그리는데 그림 실력만큼 “기획 능력” 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모티콘을 만들기 시작하고 한참 뒤에야, 이모티콘 작가로서 이모티콘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이모티콘은 “내 감정을 대신 전달하는 아이콘”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을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이 “아 이건 내가 카톡방에서 애인,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선생님 등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공감을 일으켜야 한다. 카카오에서 판매하는 움직이는 이모티콘 한 세트는 24개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정해진 개수 안에서, 공감의 메시지들을 이모티콘으로 어떻게 시각화할지 고민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IMG_8455.png 턴어라운드 예시, 캐릭터의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

두 번째는 이모티콘 캐릭터를 그리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캐릭터를 그리는 것을 “턴 어라운드”라고 하는데, 캐릭터가 3차원 공간에 있다고 상상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캐릭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대개 24개 이미지로 이루어진 이모티콘 한 세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캐릭터의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을 그리더라도 통일성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이 과정이 쉽지 않아서 집에 있는 인형을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그리는데 참고했다. 캐릭터를 잘 그리기 위한 팁이 하나 더 있다면, 얼굴에는 십자선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캐릭터를 그릴 때, 십자선을 그려서 캐릭터의 양 눈의 대칭을 맞추고 코와 입의 중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그리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캐릭터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더 깊이 공부하면 좋겠지만 나는 여력이 되지 않아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12원칙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내 캐릭터의 움직임에 적용했다. 또한 내가 직접 움직여서 촬영을 한 뒤 프레임을 분석해 보거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담긴 gif 파일을 찾아서 프레임별로 분석해 보았다. 나는 디즈니 만화 등에 나오는 동화적 움직임에 매료되어 자료를 찾아보는 일이 즐거웠다. 처음에는 열심히 그려도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이 어색했는데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IMG_7775.jpg 퇴근길에 신중히 메뉴를 고민한 뒤, 도착 시간에 맞춰서 배달을 시킨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그대로 잠든 날들이 많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퇴근하면 줄곧 맛있는 것을 먹고 누워 있었다. 나는 그 휴식을 하루 중 제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소위 "갓생"과 "미라클 모닝" 열풍이 불면서, 왠지 나도 그렇게 하루를 꽉 채워 살아야 할 것 같아서 따라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몸살이 나버렸다. 새벽에 일어나면 오전 내내 피곤했고, 퇴근하면 "해야 할 일"을 지우고 쉬어야 살 것 같았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야 했다.

IMG_7774.gif 이모티콘 제작 초기에 만든 캐릭터. 그 때 당시에는 열심히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부족함이 많이 보인다.
좋아하는 일이라도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해 정성을 들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회사 일이 늦게 끝나는 날도 있고, 약속이 있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개인적인 일들이 생겨나면 그날은 연필을 쥘 힘도 없었고, 아이패드를 켤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지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농축된 시간을 보내고 많은 성취들을 빨리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내 속도에 맞춰서 이모티콘 작가가 되기 위한 시간들을 천천히 쌓아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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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 와 <포스타입>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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