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잇, 그놈의 오이지가 뭐라구!
오이지 이제 영영 안뇽.
몇 해 전 오이지 철, 마트를 가니 오이지의 '오 '자 도 보이질 않았다. 오이지라면 환장을 하는 남편이라 해마다 백개씩은 담그는데 어찌 어찌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시기를 놓쳐버렸다.
오이지 담그기는 5~6월 사이가 가장 적당한데
오이지 용이 대량으로 출하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저장용 여름 반찬 준비기간으로는 고 때가 딱 안성맞춤이었다.
굳이 5월을 고집하는 이유는 요맘때 나오는 오이가 작고 단단해서 맛도 좋을 뿐 아니라 덜 무른다는 장점이 있다나...
장마가 시작되기 전, 이라야 오이가 쓴 맛이 날 가능성도 적다는 얘길 주워 들었던 터라 시기를 잘 맞추어야 했다.
조금만 늦어지면 껍질도 뻣뻣하고 억센 데다 씨도 많고 모양도 고르지 않은 것이 오이지 담그기엔 제로였다.
게으름 피우다 시기도 놓쳐 버린 듯 해 올해는 그냥 건너뛰자는 마음이었는데 왜 오이지 안 담그냐는 성화가 빗발쳤다.
그놈의 오이지, 오이지...
하긴 어릴 적 추억의 한 단면이 깃들어 있다 보니 남편 입맛에 각인되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대갓집 마나님이었던 우리 시어머니는 깔끔하고 정갈하게 반찬 하나, 양념 하나에도 온갖 정성을 쏟는 분이었다. 그에 비해 우리 엄마의 오이지는 숭구리 당당 숭당당, 대충 숭덩숭덩 썰어 물 들이붓고는 파
송송도 아니고 몇 개 두둥실, 고춧가루도 몇 개
두리둥실 성의 없이 떠도는 기억이 전부였다.
사람 써 가며 남의 손 빌어 해 주는 음식으로 자란 탓인지 유달리 솜씨도 , 살림도 뒷전이었다.
그런 입맛에 길들여진 남편이 눈치코치 세트로 내다 버렸는지 간혹 한 번씩 옛날에 어머니는 말이야..
말 나오는 순간 속으로 혼자 빡쳤다.
한 때 유행했던 컴퓨터 광고 문구처럼
밤 새지 마란 말이야 가 아니라 그런 소리 하지 마란 말이야...나도 한 솜씨, 두 솜씨 한단 말이야!!
이처럼 오이지는 대부분이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했지만 그 반대인 사람도 있었다.
드럽게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 반찬이 없으니
맨밥에 물 말아 짜디 짠 오이지를 한 입 씩 베어 먹었다던 사람도 있었고, 도시락 반찬이 그낭
길게 쭉 쭉 가른 그놈의 오이지였단 사람도 있었으니..
그 사람은 어른이 된 후 에 절대 오이지를 안 먹는다고 했다. 추억의 음식이 아니라 그 짠내가 잊혀지질 않아 오이지라면 신몰이 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가방이며 책 까지 온통 오이지 짠내가 스며들어 꾸리꾸리하다는 표현을 했다.
지금이야 먹을 것도 천지삐까리에 널렸고 짜게 먹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듯 기피하는 현상이다 보니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오이지가 아니었다.
슴슴하게 담가 새콤달콤 피클처럼 먹기도 하고 얇게 썰어 물기 꽉 짜서 갖은 양념으로 고소하게 무치니 맛이 없을리가 없었다.
노릇하게 숙성된 것을 열댓 개씩 꺼내어 얇게 쫑쫑 썰어 놓으면 물기 짜는 건 항상 남편 담당이었다.
그놈의 오이지가 뭐라고 있는 힘을 다 해 죽기 살기로
꽉 짜 놓은 것에 각종 양념을 곁들여 무쳐냈다.
손 맛은 자동 옵션으로 정성까지 듬뿍 담아 만들어
놓으면 씹을때마다 입안에서 꼬드득꼬드득
싱그러운 초록의 향연이 펼쳐졌다;
오전 내내 동네 마트며 대형마트를 돌며 눈에 불을 켜고 다녀도 오이라곤 보이질 않았다.
너네 다 어디로 자취를 감춘 거니,
나온 김에 이대로 포기 할 순 없다 싶어 기필코 오이를 사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오이지 찾아 삼만리 과업에 착수했다.
재래시장 두어 군데를 이 잡듯이 뒤져서야 팔고 남은 듯한 두 봉다리가 눈에 띄었다.
한 묶음에 50개 반접이니 두 봉다리를 다 사야 한 접
백개를 담글 수 있었다.
그래야 여름 내내 먹고 맘 내키면 퍼 주기도 하고...
만들긴 힘들어도 퍼 줄 땐 네댓 개씩만 나눔해도
백개 순삭,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얻어먹는 쪽은 해마다 오이지 철만 되면 니 오이지
맛 있더라...요 몆 글자로 압력을 넣었다.
풀이하자면 맛있으니 또 달라는 뻔뻔함 보소.
이렇게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손 많이 가는 오이지
담그는 방법도 천차만별,
예전 방식을 고수해 소금물 끓여 부은 후, 바윗덩이 눌러 놓으면 꼬들꼬들, 아삭 아삭이 었지만 까딱 소금의 양이라도 실수하는 날엔 짠순이가 되어버리는 단점을 감수해야 했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오이지 레시피를 들들 뒤져 소금과, 소주, 물엿 설탕만으로 사나흘만에 먹을 수 있는 오이지를 담구었다.
고대로 해 보니 굳이 썰어서 물에 담갔다 짠맛을 빼는 번거로움도 없었고 피클인 듯 오이지인 듯 그냥 뚝 잘라먹어도 맛이 예술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재래시장 들른 김에 오이지 백개를 선두로 양손이 떨어지도록 장을 봤다.
남편의 희한한 버릇은 꼭 집에 도착하기 5분 전, .;
무슨 비상시 작전에 투입되는 5분 대기조도 아니고, 전화를 해 두 놈 중, 한 놈이라도 있으면 짐 가지러 내려오라는 통보를 했다.
그 당시는 엘베 없는 아파트 4층이기도 했고 지 딴엔
마누라 무거운 거 덜 들게 하려는 맘이었는지 어쨌는지
항상 같은 방식이었다.
차라리 내가 잠깐의 수고나 고생을 감수하고 말지
굳이 애들 불러 내려 짐 꾼 만들기도 싫었고, 주말이면
지들 나름의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일 수도 있는데 그날도 역시 기대를 저 버리지 않았다.
집 앞 도로를 들어서는 동시에 "전화해봐, 톡 하지 말고
한놈이라도 있으면 내려오라고 해...
휴일 늦잠이라도 자면 깨우는 것도 조심스러워 톡 으로 먼저 하는 나 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역. 시. 대. 박.로. 또. 여.,
톡 을 하려는 눈치를 깠는지 잔소리가 뒤를 이었다.
" 백날 톡으로 하느니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되겠다,
말로 하는 게 낫지 언제 톡으로 하고 그거 확인했나 또 ,기다리고..어쩌구. 저쩌고.. 따따따 따발총!
전화를 거니 큰 놈은 고새 뛰쳐 나가셨고, 작은 놈이 전화를 받는데 목소리에서도 허덕거리며 바쁜 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
건성건성, 설렁설렁...난리라도 처 들어 온 동넨가..
"ㅇㅇ야, 시장 봐 가는데 짐이 어마어마라 좀 내려와
들고......하는데 벌써 어 아 여 그냥 놔 둬, 쫌 있다 워 어쩌고 ,알았어..하며 황급히 끊어버렸다.
에미 눈엔 안 봐도 다 보여, 몬 짓하는지 한눈에 비디오였다. 주말 저녁이면 밤새 껄껄거리며 게임에 미치느라 이어폰을 꽂고 헤드셋을 장착하고 무슨 이원 생방송을 하는 것 모냥 마이크에 대고 떠드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땐 무슨 전화 상담원이라도 되는 것 같아 하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업무에 집중하는 열혈 텔레마케터, 네 네 고갱님...
옆에서 다 들었는지 그냥 봐 넘기지 않는 남편이 인상쓰며 한마디 하는 걸 역시나 잊지 않았다.
"밤새 게임하느라 미쳐서는...ㅉㅉ ㅉ
나이 들어가며 부부가 가장 손발 척척 맞는 순간이
자식 흉??? 볼 때라고 누군가 그러길래 무슨 그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냐 코옷음을 첬었다.
간혹 애들 얘기로 남편하고 부딪칠 때면 대꾸하기도 싫어 내 .주 .특 .기. 인 입에 대형 지퍼 채우기를 여지없이 가동했다.
신경 곤두섰을 땐 말 안 하는 게 장땡이여 ...
남편 눈치 보랴, 끊긴 전화에 톡으로 회신하랴 손가락이 분주히 움직였다.
'집 다 와 가니 주차장으로 내려와..
알아들어 먹었는지 어쨌는지 확인도 안 하는 상태였고
차는 이미 집 뒷 편에 도착, 1분 대기조였다.
차에서 끄집어 놓은 짐이 뻥 좀 보태서 용달 이삿짐
수준이었다. 50개 묶음 오이지 두 덩이만 햇빛 쏟아지는 주차장에 덩그러니 남겨 놓고는
다른 건 남편과 양손에 최대한으로 봉다리 봉다리
나누어 들었다.
그때까지도 우리 집 작은 아드님께선 코빼기도 안 보였고 양손 가득 짐을 들고 4층까지 오르던 남편님께선 화가 이.빠.이. 머리 끝까지 올랐다.
현관문 들어서는 동시에 2 차 따발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야, 이눔의 새끼야, 잘난 게임하느라고
엄마 아빤 이 고생인데 내려오지도 않냐?
그 김에 쌩~ 하니 오이지 묶음을 가지러 나가는 녀석의 뒷통수에도 꼬라지가 잔뜩 묻어났다.
새끼 소리 젤 싫어 하는 놈한테 걸핏하면 새끼, 새끼..
지 새끼 맞습니다, 맞고요.
내려가 들고 왔으니 그것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껄,
휴일 날, 늦게까지 처 자는 거 아니면 밤새 게임만 한다느니 게덜거리는 거 시끄러워 잠을 못 잔다느니..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는데 암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늘 문제였다. 휴일 날 늦잠이나 취미생활 하며 소질개발이 당연한 거지 뭘 더 바란단 말씀이신지. 원,
어지간해선 이런저런 이유나 핑계도 안 대고 수다스럽지도 않고 딱 지 할 일만. 과묵하고 샤프한 편인 아들 (을): 할 말 다 하고 거슬리는 건 참을성 없이 못 봐 주고 목소리 크고, 우리 집 최고 어른 (갑)의 2차 격돌이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빰빠라빰 빰 빰 빰 빰 빰!
저녁 무렵, 각자 화 난 걸 절제하며 그냥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 인 줄 알았는데 남편이 먼저 선빵을 했다.
문 콩 콩 소리나게 닫고 쿵쿵 걷는 게 거슬린 모양이었다 "야...너 일루 와 봐...방을 향해 냅다 소칠 지르는데
우리 집 교환원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있으니 당연
안 들리는 수밖에.
게임에 푹 빠져 있을 땐 잠시만 스톱해도 흐름이 깨진다나 어쩐다나 오매불망 오빠바라기 멍님 마저도 뒷전인데 부르는 소리에 순순히 나올 낌새가 안보였다.
나 화 많이 났다...는 표시로 남편의 눈썹이 찍 올라 가는 것을 보니 아이구 몬 일 나겠지 싶었는데 아니나
달라, "야...ㅇㅇㅇ. 소리에 마지못해 나오는 녀석의 얼굴도 붉으락 푸르락, 아이구 내가 몬 산다.
애비가 부르는데 그깟 게임이 더 중 하냐를 시작으로 ,.;
전화했음 빨리 내려와야지 늦장 부렸다는 이유로.;
백만 년 전 거 까지 다 끄집어낼 기세였다.
엄마 전화 와서 알았다고, 5분 있다 내려갈테니 그냥 그 자리에 두고 오랬다고...나름 이유가 많았다.
말을 알아듣게 해야지 게임에 미쳐 얼버무리다 툭 끊었으니 뒷 말을 못 알아 먹은 에미 탓 이려나??. 애비는 고래고래, 새끼는 뻑 뻑.. 대며 급기야는 너 같은 거 안키우니 나가라고..
백만돌이 에너자이저. 급 자존심 쎈 요 놈이 나가라 소리에 열 받아서는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더니 현관문을 있는 힘껏 처 닫고 나가버렸다.
그 꼴을 보던 남편은 얼굴이 허얘져 혈압이 오르는지
뒷 목을 잡고 어쩔 줄 몰라하는데 빠르고 급하게
쿵쿵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띠리리띠릭, 문이 열리는 동시에 쇼파위로 뭐가 하나 휙 날아오는데 앗.. !
지 손에 들고 다니며 쓰던 이버님 카드 되시겄다.
나가라 했으니 나가는데 드러워서 카드도 안 쓴다고
내 던져지는 카드가 불쌍했다.
다음 날 촬영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암튼 그 난리를 죽이고는 새벽에 들어와 배낭에 꾸역꾸역 의상을 챙겨 다시 나갔다. 카드까지 내던지고 쫓겨나는 게 안 됐던지 형님이 지갑을 들고 뒤따르는 게 보였다;
다음 날, 아버님 퇴근 전 들어 온 아드님은 새벽까지 피시방에서 시간 보내다 촬영도 거뜬히 해결했노라며 치킨 시켜 먹고 다시 또. 집을 나갔다.
워낙 발 넓은 놈이라 쫒겨나도 갈 곳은 널렸으니 걱정 할 필요도 없었지만 문제는 남편이었다.
괜히 방문 한번 슥 쳐다보고는 ' 이 놈은 뭐해..
집 나갔지 뭐 하긴.. 오늘도 안 들어왔다고?
안 들어오겠지 그 고집에...
자식이 늦게 들어오면 엄마들 입장에서는 얘가 왜 늦나, 왜 안 오나...입으로 안달복달 조바심 내지만
아빠들은 시계 한번 슥, 현관 문 한번 슥...이런다더니
그 표현이 딱 맞는 듯 싶었다.
낮에는 들락거리며 지 할 일 다 하는 줄도 모르고
저녁시간에 안 들어오니 정말 집 나간 줄 알고 있는. 모양인지 가출 3일째 되는 날,
연락은 해 봤어? 근심 걱정 한가득 심각하게 묻길래
납자 새낄 몬 걱정해 지지배도 아니고...
",이 사람아 그래도 며칠씩 안 들어오면 걱정되는 게 당연하지...기가 팍 꺾인 듯 보여 옛다 , 인심 썼다.
요 밑에 축구하는 형네 있대.. 얘기 해 주니
그럼 전화해서 대화 할 기회를 만들어 달란다.
직접 해 봐,.하니 뻘쭘한지 요 밑에 빈대떡 집 가서 얘기 좀 하자고 나를 앞세우길래 눈물을 머금고 부지지간 화해의 장을 만들어 주었다.
둘이 알아 해결하라고 남편만 내 보냈더니 밤 늦게 들어오는 표정들이 한결 밝았다.
그 후,
ㅇㅇㅇ와ㅇㅇㅇ는 한 집안에 살았드래오,.
둘이는 서로서로 조심을 했더래요.!
서로 아끼고 이해하며 감싸주는 게 가족이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