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주정뱅이 아버지의 인생 마침표!
대환장가족입니까. # 5
기운이 딸리면 주정이 더 심해진다더니 나날이 더 해 가는 명숙아비의 주정이 눈뜨고는 못 봐 줄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무데서나 바지를 까고 오줌 싸는 건 기본이고 길바닥에서 거품 물고 쓰러지는 일이 허다 했다. 제 힘으로나마 대학을 가겠다는 명숙에게 위로와 격려는 못 할 망정,기집년이 고등교육 받았으면 최고 학부지 뭐 말라 비틀어진 대학이냐며 퉁박을 주었다.
뛰어난 성적과는 반대로 궁핍한 형편에 명숙의 대학진학은 욕심에 그쳤고 경숙의 중학교 입학이 바턴을 이어받았다.
맏딸이랍시고 고등교육까지 시켜 놨음에도 대학타령을
하느라 취직도 안 하느냐는 닦달에 이어 꼴난 밥상에서 눈치까지 주었다.
끝내는 취직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차비라도 얻어내야 하는 날 이면 거지 동냥주듯이 몆 푼 휙 날아오는 동전 앞에서 이를 갈며 눈물을 삼켰다.
밤새 언 손을 호 호 불며 뜨개질로 뒷바라지한 명숙네의 눈에는 최대한 시킬 만큼 공부시켜 놨음에도 빈둥거리는 꼴이 충분히 구박대상이었다.
덕지덕지 찌든 때로 얼룩진 어미의 인생에 공부 잘 하던
딸은 자랑거리에 희망이었는데 형편상 대학을 못 보내는 것에 누구보다 속마음은 쓰리고 찢어졌다.
동전 몇푼 주워들은 명숙이 보란듯이 취직을 하고 오자
명숙네의 대접이 눈에 뜨이게 확 달라졌다.
푸성귀가 너울대는 밥상이 아닌, 달걀후라이와 김장 속 양념을 삭힌 새콤한 무채를 몰래 감추어 두었다가
명숙에게만 내 주었다.
돈 버는 딸에 대한 일종의 차별대우였다.
부모의 멸시와 무능력에 치를 떨던 명숙은 그런 차별 따위는 무시한 채 오기로 직장을 다녔다.
오로지 인생의 목표가 돈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악착을 떨었다.
결국엔 맘 먹었던 대학을 혼자 힘으로 거뜬히 졸업 하며 반듯한 직장에 제대로 취직을 하자 명숙네는 큰 딸의 말 이라면 벌 벌 떨 정도로 변했다;
퇴근길에 피아노 레슨을 받는 명숙을 기다리던 경숙은
마냥 부러운 마음에 늘 밤길 마중을 자처했다;
집에서도 연습을 해야 까먹지 않는다며 도화지에 그린 건반모양을 두드리는 명숙의 손가락은 섬섬 옥수였다.
경숙이 종이건반을 몰래 두둘기며 이 까짓꺼 난 진짜 건반을 두들겨 패리라 마음먹었다.
주말이면 흰옷에 흰 가방을 둘러메고 테니스장으로
향하던 명숙이 동생들에게는 부러운 대상이었다.
쭈그리고 앉아 구박만 당하는 아비가 불쌍해 가끔
막걸리라도 사 들고 오는 날 이면 명숙네가 쏜살같이 달려가 라면으로 바꿔 오기 일쑤였다.
" 넌 술이 지겹지도 않니?난 술이라면 넌덜머리가 난다, 이가 갈릴 정도야 .다신 저 웬수 같은 인간 술
사다 줄 생각도 말어 얘...
맨 정신일 때는 기가 팍 꺾여 모녀의 대화를 들으며
허허거리던 명숙아비의 입에서 마침내는 니 언니 좀,봐라...하는 자부심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옛날 먼 옛날,
몰락한 양반가의 쥐뿔도 없는 가문까지 들먹이며
정 씨 가문의 자랑스런 맏딸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비의 주정에 쫓겨 다니며 휘엉청 달빛 아래
몸을 숨기던 어린 시절의 명숙은 온데간데 없었다.
일 년을 건너뛰며 늦게 들어간 중학교가 경숙에게는 신세계 그 이상이었다.
달리 더 배우는 것도 없었지만 여러모로 뛰어난 경숙을 젊은 여선생은 마음으로 아끼며 내세워 주었다.
국민학교 때의 밀린 월사금으로 인해 걸핏하면 쫓아내던 늙은 흰 염소나 수 분단을 가 분단으로 둔갑질 해 차별하던 백여시 선생과는 전혀 다른 사랑을 주던 분이었다. 변덕스럽지 않은 묵묵한 사랑을 앞세워 시키던 심부름은 의례히 경숙의 몫이었으나 고아원 아이를 시켜 연탄불이나 갈고 오라는 치사한 심부름이 아니었다. 주말이면 환경미화 하러 학교에 간다며 미꾸라지 처럼 빠져나가는 경숙이 무슨 큰 일을 떠맡아 쉬는 날 까지도 학교에 가는 건가 싶었던지 명숙네는 슬그머니 용돈까지 찔러주었다.
가정환경 조사서를 마음대로 적어 내려가던 경숙이 부모의 직업난에서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내세울
게 없는 아비의 직업이 부끄러운 나머지 기타의 항목에다 제 멋대로 무식을 발휘했다.
이를테면 가수이거나 기타 치는 모 그런 직업도 있는 줄 알고 속으로 그래, 기타보다야 아무래도 바이올린이 더 부티 나고 멋 있어 보이니 난 바이올린이라고 써야지
하는 마음에. 술주정뱅이 아비의 직업을 그림같이 바이올린이라고 써 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대졸 출신의 피아노 레슨을 받던 언니 옆에서 주워 들은 것은 있어서인지 결국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
그런 쪽으로 마음을 굳히면서 가당치도 않은 뻥을 쳤다.
종례시간에. "경숙아, 왜 기타란에다 바이올린이라고 적었니? 웃던 선생님은 장난치지 말고 다시 써 오라는 말을 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머리 굴렸을지에 대해
간단한 장난으로 여기는 것이 황당했으나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보가 터지던 사춘기 소녀들은 한바탕 까르르 웃어댔고 그 날부터 경숙의 별명은
바이올린이 되었다.
덕적덕지 붙은 때로 인해 때박사라는 별명보다는 백번,
천 번 듣기 좋았다. 3층 교실에서 내려다 보이던 주택가의 골목에는 잘 차려 입은 멋진 총각이 가끔씩 휘파람을 불며 소녀들을 유혹했는데 우르르 내다 보는 틈을 타서 재빠르게 바바리 자락을 양 옆으로 홱 들췄다 사라지곤 했다. 쉬는 시간마다 끝나는 종소리에 맞추어 다시 나타나곤 헸는데 누군가가 들이붓던 물
양동이 세례 후, 자취를 감추었다;
스승의 날이 되어 짝꿍과 뿜빠이로 담임에게 반지를 선물했는데 어느 손가락에도 맞지 않는 그것을 끼고는
몹시 좋아했다. 손가락 중간까지 걸쳐진 반지를
기꺼이 바꿔온다며 둘이 장위 시장까지 숨이 차도록 뛰었다. 진짜도 아닌 것을 대충 끼지 뭐 하러 바꾸러 왔느냐며 퉁명 떠는 주인에게 승희는 순경 아버지를 불러오겠다며 겁을 주었다.
어린 시절의 땅콩 훔쳐 먹다 걸린 화려한 가락이 있던 경숙은 순경이라는 소리에 기가 팍 죽어 그냥 가자고 했으나 주인이 오히려 기세등등해서는 큰소리를 쳤다.
",아니,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디서 감히 어른을 협박해? 오냐, 순경 불러다 어디 한번 따져보자, 그 말에 승희는 하마 같은 입을 삐쭉거리벼 불만을 토해 냈다. "아저씨, 금방 후회 하실껄요,우리 아버지가
ㅇㅇ경찰서 수사과장 이거든요. 그러니 얼른 바꿔 주세요, 스승의 날 선생님께 선물한 거란 말이에요...
콧방귀를 뀌던 주인은 갑자기 목청이 커지며 핏대를 세우고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오오냐, 니 애비가 수사과장이면 난 경찰서장이다.
어린것이 씨알도 안 먹히는 공갈 치지 말고 얼른 들
꺼지지 못해? 정말 순경불러다 혼찌검을 내기 전에..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울먹이던
승희는 약방 옆의 공중전화에 매달려 정말 수사과장
아버지를 불러냈는데 반지 주인은 울상이 되어 절절 기었다. "학생들이 겨우 돈 모아 스승의 날 이라고
선울한 모양인데 웬만하면 바꿔주지 그러셨어요?
딸 같은 아이들한테...학생들 성의를 봐서라도 좀...
아무도 범접하지 못할 점잖은 한마디로 거뜬히 반지를 바꾸며 경숙은 뚱뚱하고 작달막한 난쟁이 똥자루라는
별명을 가진 그 애가 다시 보였다.
입은 하마같이 크고 눈은 단추 구멍보다 더 작은 그 애의 어디에 저런 복이 숨어있기에 좋은 아버지를 가질
수 있는 것 인지에 대한 부러움이 한없이 솟구쳤다.
미아삼거리 그 애의 집을 드나들 때마다 매번 느낀 것은 넷씩이나 되는 오빠들이 못 생긴 공주님 시중을 다 들어주던 것이 신기해 보였다.
외갓집 이후,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부러운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커다란 방을 여러 개 거치면 맨 끝이 그집 공주님 방 이었는데 작은 왕국이 존재하는 듯 보였다.
그 집의 교자상에 끼어 앉아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 하고 밥을 먹노라면 외갓집의 하얀 꽃무늬 법랑공기에
밥 먹던 시절이 떠 올랐는데 그곳에서 느꼈던 부잣집
특유의 냄새는 그리 흔치 않았다.
밥그릇을 코에 대고 흠 흠 거리면 승희 어머니가 슬그머니 웃으며 밥 냄새가 그리 좋으냐..물을때마다
경숙의 대답에 온 식구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 밥이라고 다 같은 밥 냄새가 아니에요, 외갓집에서 먹던 것 하고 똑같은 냄새가 나서요...
생김과는 다르게 온갖 까탈을 다 부리며 응석받이로
자란 딸 아이가 마음 씀씀이까지 고약한 탓에
친구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더니만 누구의 눈 에라도
맘에 쏙 들 만한 아이와 어울리는 것을 보며 한없이 기쁘고 고맙더라는 말을 해 주던 그 애의 어머니 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마 입 삐쭉거리며 쌀쌀맞게 굴면서
경숙에게만은 따뜻하고 상냥한 것에 대해
승희 약 먹었니? 하며 장난을 치던 그애 오빠들까지도
좋은 기억이었다.
온 집안 식구들이 경숙의 방문을 쌍수 들며 환영했으나
막상 그곳에 끼어 있다 보면 괜히 주눅이 들어 쥐구멍이라도 찾게 되는 바보 짓에 늘 서러움이 앞을 가렸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끝없는 부러움에 마음의 상처만 깊게 베이던 시절이었다.
눈을 조금만 돌려도 세상에는 온통 욕심나는 일 투성이
였으나 외모로 풍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허상
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생긴 것이 밥 먹여 주느냐며 툭 하면 멀쩡한 허우대
까지도 못 마땅해 타박을 일삼던 명숙네의 거룩한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레고리 팩 능가하는 뺀도롬한 사진에 눈이 멀어 멋 모르고 시집 와 고생을 달고 산다며 지지리 복도 없는
년 이라는 명숙네의 원망 섞인 푸념이 결코 헛소린
아니었다.
딸년들 중 가장 인물이 반반한 정숙이 부모의 눈을 속여가며 연애질을 일삼더니 남자가 줄줄이 사탕처럼
끊이질 않았다. 교복을 짤룩하게 줄여 입은 채, 허리는 다 내 놓고 다니며 여고생의 상징인 양갈래 땋은 머리를 뭉턱뭉턱 잘리면서도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 쓰고 싸돌아 다녔다.
인울 값 한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으면서도 붙잡혀 오면
또 기어 나가기를 쉴 새 없이 반복했다.
어떤 때는 사복을 싸 들고 다니며 갈아입고 노느라
컴컴해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딸에게 저 밤귀신
같은 년, 그래도 집구석이라고 기어 들어오냐며 구박을
했으나 돌아오는 건 왕방울 만한 눈흘김이었다.
좋아서인지, 미쳐서인지 눈이 뻘개 쫓아다니던
대대로 교육자 집안의 귀공자 한 놈이 선물공세를
펼쳐댔다. 그 또래 수준의 하찮은 것 들이었지만
정숙은 선물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는 흥분해 어쩔 줄
몰랐다. 어느 누구에게든 선물이란 걸 받아보는 자체가
처음 어었으니 흥분하고 설레는 것이 당연한 일 이었다.
누군가가 나 하나만을 생각하며 골랐을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살을 앓았다.
선물 중에 가장 많은 것이 가당치도 않은 레코드판 이었는데 명숙네는 그 따위가 모 말라 비틀어진 것 이냐며 못 마땅해 툭 툭 쏘아 댈 뿐이었다.
전축이라는 물건이 있어야만 써먹든 ,구워 먹든 해당되는 선물을 안고 안타까워하는 정숙이 안 됐던지
그런 마음을 헤아려 주는 건 그래도 명숙 밖에 없었다.
큰맘 먹고 거금을 들여 전축이란 걸 장만하던 날,
그것은 집안의 가장 귀하고 비싸고 좋은 물건으로 자리 잡았다. 비틀스에 넋이 나간 정숙에 비해 차이코프스키나 멘델스존 등의 명숙이 사 들이던
클래식 판이 경숙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아슬아슬한 곡예라도 하듯이 난리부루수를 추던 정숙은 어찌어찌 간호학과를 졸업과 동시에 대형병원에 덜컥 취직을 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년이라고 무시 안 당하고 살려면
기를 쓰고 배워 보란 듯이 살라는 1호의 압박과 눈물겨운 희생이 뒷따른 결과였다;
학비 담당은 무능력한 부모가 아닌, 당연히 억순이 1호 차지였다. " 자고로 사람은 인물이 반반하고 볼 일 이여.. 그 큰 병원엘 아무나 취직할 수가 있나, 아니지 아니고 말고. 애비 닮아 인물 값 하다 보니 그 어려운 병원에도 턱 하니 들어가고... 우리 둘째 딸 장하다 장해. 자신의 모습을 쏙 빼 닮은 아비는 눈을 번득이며 몹시 좋아 했다. 학비라곤 단돈 알원 땡전 한 푼도 보태지 않았으면서 누가 보면 생긴 순 으로 취직했단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말 끝마다 떡잎부터 글러 먹은 년 이라며 붙잡아다 썩뚝 머리 잘라 죽일 년, 살릴 년 할 땐 언제고 입에 거품 물고 칭찬하는 것이 더 볼썽 사나웠다.
머리 터지게 공부를 해서 의사나 박사가 된 것은 아니었으나 그야말로 반반한 낯짝 내밀만큼의 성적과 더불어 취직을 했으니 기대감에 들떠 헛소리 핑 핑
하는 것도 들어줄 만 했다.
백옥 같은 피부에 맑고 커다란 눈이며, 거기다 옥수수
알 보다 더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아비를 쏙 빼 닮았으니 어느 자리에 내놓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전형적인 미인이었다.
" 아따따, 반반한 것 좋아하네. 생긴 게 밥 먹여 준답디까? 그리고 입은 삐뚫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내가 낳았지 지가 낳았나.
쓸데없는 공치사는...
곧 죽어도 깨갱이라고, 명숙네의 말 대로라면
자신이 낳은 딸 이니 당연히 어미 닮지 않았겠느냐 소리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
엄격히 따지면 금숙을 제외한 넷이 거의 아비 판박이에
가까웠음에도 억지 부리는 격 이었다.
그런 핀잔이 머쓱했던지 꽁초를 비틀던 남편은 아무리 잘났다고 입으로 백번 떠들어봐야 사람은 자고로 잘 생기고 볼 일이라는 자화자찬을 했다.
생긴 것으로 따지면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다는 말투로 인해 더 한심하고 졸렬해 보였다.
인물값도 못 함서...
교복을 벗어던진 정숙은 날개 돋친 천사가 되어 뭇 남자들의 시선을 온몸에 휘감고 다녔다.
월급이라고 타는 족 족 치장하기 바빴으나 그것도 모자라 명숙에게 아쉬운 소리를 수도 없이 했다.
야무지고, 암팡진 명숙이 군소리 없이 빌려주기는 커녕
퉁명 떨며 아예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으나 그런 것 조차도 아랑곳 않고 속 없는 짓을 일삼았다.
"넌 그지 근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그 모냥이냐
버는 대로 다 써 대지 말고 모으는 것 도 좀 해 봐라.
이렇게 사는 게 지겹지도 않니?
내가 해 주는 건 딱 학비까지야, 더 이상 손 벌리지 말어.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 좋은 정숙은 배시시 웃는 것으로
대신하며 자신의 사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바보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언니, 그러지 말고 이번 달 한번만 더 꿔 줘라 응?
나 화장품도 사야 하고 찍어 놓은 옷도 사고 싶단 말야.
어차피 내가 옷 사면 언니도 같이 입을꺼면서 치사하게
굴지 말고 빌려줘라...
매달 빌릴 때마다 바른말하는 명숙이 치사하고
더러웠던지 , 아니면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염치없는 마음이 들었던지 정숙의 꿈질은 가불로 탈바꿈했다.
그러면서도 그 놈의 남자문제는 끊임없이 불거지며
수 많은 염분을 뿌렸다.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도 아니고 좌우지간 한껏 미모를 뽐내던 정숙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 씨 집안의 딸 들 중에 가장 미인이라는 꼬리표가 늘 함께 따라다녔다.
그런 정숙을 보며 반반한 인물 앞세워 모든 걸 대신하는
철없는 짓에 명숙이 더 불안했으나 잔소리조차도 먹히질 않았다. 오히려 명숙네와 쿵짝이 맞아 속삭거리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려 시선도 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돈에 관한 아쉬운 소리를 꺼내기 무섭게 군소리 한번 없이 선뜻 가불이라도 해다 주는 정숙이 지 어미에게 있어서는 더 살가운 존재였다.
명숙네의 표현대로라면 틀어 쥐고 여우 깍쟁이 짓을
하는 명숙과는 대조적인 것에 무조건 반기를 들며 후하게 굴었다. 만만하고 수더분하니 더 만만하고 이뻐보였던 것 같았다.
한 뱃속에서 나온 것들이 하나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독해 빠진것에 비해 하나는 어리숙하니 순한 것이 어찌 그리 딴 판이냐며 종 종
서운함을 나타냈다.
명숙과의 약속을 지 멋대로 빵꾸내며 늦게 들어 오던
날, 광화문에서 세 시간을 기다렸다는 명숙이 다짜고짜
정숙의 뺨 부터 후려갈겼다.
" 너 어떻게 된 거야,? 사람을 몇 시간씩 길바닥에 세워 놓고 이제나 저제나 나타날까 목 빼고 기다리는 심정이
어떤 줄 알어? 넌 틀려먹은 년이야. 매사가 그 모양이니
어따 써 먹을지 걱정이다...
양손을 허리에 두른 채로 잡아먹을 듯이 표독스럽게 구는 명숙을 뜯어말리던 명숙네가 더 흥분되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얘, 그만해, 그럴 수도 있지 그 까짓꺼 가지고 뺨을 때려? 기다리지 말고 그냥 왔음 될꺼 아니냐.
누가 너 더러 몇시간씩 기다리라고 시키디?
나도 안 때리고 키웠는데 니 까짓게 뭐라고 뺨까지 때리고 난리라니, 차라리 날 패라, 패.,,
정말 그랬다. 지지리 가난한 살림이었으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명숙네의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오거나
손찌검 한 번 없었던 걸 보면 호되게 뺨 한베 갈긴 것에
대해 흥분허는덧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호랑이 할머니의 온갖 구박과 욕설에 이어 주정뱅이 아비의 이유도 모르는 매 타작이 끊 이질 않았으나
명숙네는 욕 한마디, 단 한 번의 손찌검도 없이 키웠다
퉁명스럽고 무뚝뚝해 잔 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어린 시절을 남 부러울 것 없이 귀하게 자란 탓 인지
험한 소리조차도 내 뱉질 않았었다.
그것만은 다 자란 딸 들이 우리 엄만 이랬었지,
고마워하며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통으로. 맞았는지 옆에서 코피를 줄 줄 흘리던
정숙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 놓았다
" 미안해, 언니, 나오려는데 친구가 와서 걔랑 놀았어..
그 말을 듣던 명숙의 표정이 더 사납게 일그러지며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따져물었다.
"친구 누구? 보나 마나 뻔할 뻔 자 겠지만 묻는 내가 미친년이지, 남자새끼에 걸신 들린 년도 아니고 어째 그 따위로 인생을 사냐, 아이고 추잡스런 년...
그 말에 질세라 명숙네가 더 바짝 끼어드는 통에 명숙의
낯 빛이 허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건드려 놓으면 어린 시절 주 특기였던 경끼를 앞세워 거품 물고 쓰러질 판 이었으나 명숙네는 날 잡아 속을 뒤집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더 사납게 쏘아부쳤다.
" 남자를 만나던 무슨 짓을 하던 니가 상관 할. 바가 아니여. 너나 잘 하고 다녀라. 괜히 애꿏은 지 동생 못
잡아먹어 안달 떨지 말고. 지 신상 지가 볶으면서
왜 저 지랄인가 몰라, 베라 처 먹블 년...
명숙을 몰아부치며 무조건 정숙의 편에 서서 손을
번쩍 들어주던 어이없는 판저으로 그 날 싸움은 끝이 났다. 억울하고 분한 것을 혼자 속으로 삭이는
명숙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경숙의 뒤 늦은 중학생활은 없는 집안의 자랑거리가 될 만큼 눈부신 빛을 발했다.
정숙과는 대조적으로 까무잡잡한 피부에 흑진주같은
커다랗고 새까만 눈 이며 바라만 보아도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눈빛은 모든 이의 부러움 대상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교내 사생대회나 백일장은 모조리 휩쓸며 이름 석 자를 두각시켰다.
그런 와중에 영어 선생님을 짝사랑 했었는데 복도에서의 마주침까지도 어린 소녀의 가슴에는 커다란 설레임이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외면하며 그 좋아하는 과목을 낙제로 만드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시험기간 중, 그 날의 시간표대로 감독이 있던 날,
예상치도 않은 짝사랑 선생님이 감독으로 들어 섰다.
사춘기 소녀는 아, 저 선생님이 일부러 날 보기 위해
시간을 바꿔 들어왔나 하는 야무진 착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야무진 착각은 착각이 아니었고, 발 소리도 없이 슬쩍 지나가던 소녀의 짝사랑은 딱지모양의
작게 접은 편지를 책상 귀퉁이에 슬쩍 올려 놓았다.
순간 고개를 번쩍 들고 선생님을 바라 보았으나 아무짓도 안한 사람처럼 지나치는 모습이 눈물 와락 쏟아질 만큼 야속해 오기를 부렸다.
시험을 보는 둥 마는 둥, 가장 먼저 끝내고 보란 듯이
쪽지를 책상에 남겨 놓은 채 당당하고 도도하게 교실 문을 나섰다. 종 치는 소리와 함께 교실로 뛰어가서는 아무도 모르게 얼른 그것을 집어 들고 변소로 냅다 뛰었다. 떨리는 손 으로 펴 보았던 편지에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영특한 소녀로 반듯하게 잘 자라
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이 담에 예쁘고 어엿한 숙녀가
되어서도 노총각 선생님을 좋아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누가 볼까 두려운 마음에 잘게 찢어 버리고 눈을 돌렸던 운동장에는 핸딘볼을 하는 선생님이 보였다.
이 쪽을 의식했던지 한번씩 손을 흔들어 보이는 모습에
넋이 나간 경숙은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럽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고 다시는 좋아하는 선생님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런 생활도 잠시, 1학년도 채 못 마치고 명숙아비의 사촌이 사주로 되어있는 제법 큰 규모의 회사 사택으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오랜만의 보따리 이동이었다.
명숙네가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동시에 명숙아비가
경비 일을 맡아 가는 그곳에는 번듯한 2층 양옥이
남루하고 초라한 이삿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에 식당이 딸려있는 아주 폼 나는 집 이었는데 동화에나 나올 법한 언덕위의 하얀 집이 부럽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들어 들뜬 기분을 감출수가 없었다.
주정으로 쫓겨나다시피 수차례 보따리 이사를. 하면서
리어카에 실은 짐을 뒤에서 밀던 것에 익숙한 식구들은
탈탈거리는 용달에 실려 가며 마치 큰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가지 문제 될 게 있다면 경숙이 낯선 곳으로 전학
한다는 사실이 죽기보다 싫어 몇날 며칠 심한 떼를 쓰며 눈물바람을 일구었다.
혼자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살겠노라 우기는 것도 모자라 새벽에라도 다닐테니 전학만은 하지 않겠노라
했으나 도무지 먹힐 일이 아니었다.
그전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생떼에 욕을 배터지게 먹을 판이았으나 생활이 필 조짐이 보였던지
누구 하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정숙이 빈정대듯이 어찌 못 하는 일이 다 있냐,
신기 할 따름이라며 놀릴 뿐이었다.
" 어쩐다니, 통일도 시켜 줄 만큼 대단하고 잘 난 경숙이
전학 앞에서 눈물을 질질 짜다니, 어머머머 웬 일 이니,웬 일이야... 그렇게 전학이 싫으면 그냥 너 혼자 자취하며 살어, 지 동생들이라고 찍 소리도 안 하는데
유난떨기는. 아무튼 별 스러워...
전학을 가던 날, 짝사랑 노총각 선생님과 노량진의 구석진 빵집에 마주 앉은 경숙은 떨리는 손으로 선물을 받으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멀리 전학을 가 버리면 다시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선생님을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아련함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훌쩍거렸다.
난생 처음 단팥빵과 같이 먹던 둥근 병의 서울류유는
비릿함으로 기억되었고, 한모금도 채 마시지 못한 채
목구멍의 비린내를 애써 참아냈다.
슬그머니 웃던 선생님은 소금을 달라 해 흔들어 주었으나 역시 촌년의 입맛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에 불과했다.
눈물을 닦아 주던 따뜻한 손길을 멀리 하며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펼쳐보았던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는
R.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사람들이 덜 지난 길을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