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발랄 헬리콥터 꼬리를 흔들며 싱글벙글 환한 표정으로 동네 참견을 다하는 어린 멍님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걸까
이 구역 안에 내가 모르는 멍멍이가 있었다니
그날 이후, 내 일상이 하나 더 늘어나 버린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새벽 댓바람부터 냥이들 밥자리를 돌며 물을 갈아주고 사료를 채워주고, 옵션으로 주변 청결은 필수였다. 날 더울 땐 개미나 민달팽이를 비롯해 온갖 벌레가 꼬이니 이 방법, 저 방법 다 해 보다가 물 위에 사료통을 놓자 한방에 해결이 되었다.
굵은소금 깔기, 신기패로 줄 긋기, 박스테이프로 감싸기 등 시도해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았다;
여름 천적인 개미가 젤 큰 골칫거리였는데 사료통에 바글바글 꼬일 땐 그야말로 사료 반, 개미 반 이었다.
개미가 스친 사료는 신 맛이 나기 때문에 냥님들 기피대상 1호였다.
낮은 스티로폼 통에 물을 자작하게 부어 그 위에 사료그릇을 놓으면 개미가 물을 건너지 못하는 것같았다. 깨알보다 작은 개미떼가 물그릇에 첨벙첨벙 빠지며 사료통에 올인하기까지는 멀고 험난한 여정임에 틀림없었다.
사료 접수하기 위해 요단강 건널 일도 아닐 테고
님아/ 그 강물을 건너지 마오..
개미가 못 덤비는 장점이 있었으나 물 위로 사료라도 흘리는 날엔 그것이 퉁 퉁 불어 물도 뿌예지고 냄새도 나기 때문에 아참 저녁 들여다 보며 신경을 썼다.,
누가 등 떠밀며 억지춘향으로 시켜 하는 짓 아니고
내 스스로 길아가들 챙기다 보니 더 바짝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한지랄 하는 성격 상 아마 누가 강압적으로 시키는 거라면 기부니가 나빠 더 뻗대고 일부러 안 할 위인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날부터 냥이 사료를 들고 나가는 손에 멍멍이 간식이 추가되었다. 살금살금 다가가 담벼락안으로 내가 먼저 머리를 들이밀며 까꿍! 하면 널브러져 자던 녀석이 부시시한 눈으로 반겨주었다.
지층 창살 사방에 끈을 묶어 커다란 비닐로 연결된 지붕밑에는 개스트 하우스가 있었는데 절대 그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늘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았거나 졸거나 하다가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자동으로 고개가 쑥 올라왔다
덜렁 집 한 칸 내던진 거에 싫어서 안 들어가나
싶어 우리 코코 담요며 장남감을 가져다 놓아 주었다.
며칠 사이 오가는 사람들마다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요 녀석 모르면 간첩이었다.
이름이 보리.또는 별이라고도 했고 황구라고도 했다. 옆동네 거주하는 며느리가 시골에서 데려 온 강아지 인데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어 시어머니 소유인 빌라 1층 마당에 묶어 놓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또 어떤 할머니는 4층 노인이 집주인인데 시골에서 누가 굶기는. 강아지를 데려다 놓고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둥담벼락 멍멍이에 대한 온갖 소문만 무성했다.
어느 오후엔가 간식을 들고나가니 고딩 서너명이 포리야.. 이름을 부르며 쓰담쓰담 놀아주는 게 보였다
얘 이름이 포리야?. 네
니넨 얘 어떻게 알어? 우리 선생님네 강아지예요
그 중 깡 마른학생이 자기 여친네 강아지라 산책도 지가 시켜준다고 자랑하듯 떠벌렸다.
니네 선생님이 여기 사느냐 물으니 빌라 앞 아파트 사는데 그 학생 집이 거기라 마당에 묶어 키우는거라고 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없다더니 이때껏 주워들은 거의가헛소문에 불과했다는 걸 느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포리에 관한 믿을만한 소식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억세게 비가 퍼붓던 어느 날인가. 포리가 걱정되어
나가 보니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아 그 비를 고스란히 다 맞고 있었다.
어느 집 멍멍이인지 덜렁 데려다 던져만 놓고 방치하는 것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반려하기 위해서는 비바람에 땡볕도 피하게 해 주고 사료나 물도 깨끗이 대령해야 하는데 며칠 들여다본 이후 마음만 상했다.
화단 옆 수도꼭지가 있음에도 먼지 둥둥 바닥에 깔린 물이며 사료는 언제 한번 주는지 늘 빈 그릇에 가까웠다.
비 맞은 미친년. 날궂이 하는 것처럼 혼자 씩씩거리며 집으로 가 캠핑용 비닐을 가져다 처 주었다.
,주인이 던져 놓은 개집 앞에 나무판때기가 있길래
벽돌로 고정해 얇은 이불도 하나 깔았다.
덩치에 비해 집이 작아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아 가엾단 생각이 들었다. 이불 사이사이 간식을 숨겨놓으니 그제서야 자리를 잡고 간식을 찾아 먹기 시작했다.
다음날 ,일과 중 당연한 과제인 것처럼 또 후다닥 가
보니 커트머리에 차림새도 고급진 60대 부부가 포리와 함께 있는 게 보였다.
혹 얘 견주신가요? 물으니 그렇다길래 좋지 않은 말투가 되어 내뱉었다.
어제 비 쫄딱 다 맞고 있드라구요...
길 하나 사이를 두고 바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사는데 집에서 다 보인다나 어쩐다나.
8개월령 암컷이며 시골에 누가 키우다 밥도 안 주길래 데려 온 녀석 이라고도,했다.
여자아이면 더군다나 중성화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니. 너무 이쁘게 생겨 새끼를 한번 뺄 거라는 소리에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뇌 구조길래 같은 말이라도 새끼를 뺀다느니, 그 새끼를 또 나눔 한다느니 하는 소리가 서슴없이 나오는지 선생인지 몬 지 무식이 덕지덕지 보였다. 학습지 교사라는데 빌라주인이 몬 지부장 이라며 아는 사이라 그 집 마당에 묶어 키우기로 양해를 구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비 오는 날이면 집에 데려가려고 베란다를 치웠노라며 주인 따라 좋아서 겅중겅중 뛰는 녀석과 나란히 가는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다음 날 나가 보니 포리가 보이지 않길래 데려간 김에 실내견으로 키우려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퍽이나 그리 하겠냐 하는 마음에. 속으로 나 자신에게 내기를 걸었다.
집에 키운다/ 해 떴으니 데리고 나온다.
맞추면 오백 원!
그날 오후 포리는 다시 원 위치해 있었고 비 맞은 김에
씻겼는지 말끔한 모습이었다.
이틀 만에 다시 동네포리로 돌아온 녀석은 생리를 하느라 마당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다.
저러다 덜렁 임신이라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앞섰으나 견주가 내깔려 놓으니 별 방법은 없었다.
어느 아침엔 목줄이 풀린 채 보이질 않길래 혹 집에 데려간 건가, 어느 놈이 훔쳐갔나..별 생각을 다 하는데 지나던 고물 할머니가 큰 찻길에서 들뛰더라고,했다
.잠시 후, 거기가 집이라고 포리 스스로 돌아왔는데
간식으로 유인해 다시 목줄을 하려니 영 협조를
하지 않았다. 생리 끝난 후 자유를 만끽했으니 발정 나 돌아다닌 건지 심난스러울 뿐이었다.
목줄도 거부하며 사시사철 열려있는 쪽문과 가까우니
다시 가출을 하면 영 영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끌어다 쪽문을 고정시키고 벽돌도 주워다 덧대놓으니 쉽게 나가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가출하면 니 팔자다, 낸들 어쩔..;
눈에 뜨이는 애들마다 맘도 주지 말자, 정도 주지 말자
혼자 다짐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쪼르르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버거웠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은 세상천지에 널리고 넘쳤다. 오후에 다시 본 포리는 목줄에 묶여 화단 귀퉁이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잠시동안의 가출을 꿈꾸는 건 아닌지 담벼락에서 몰래 보는 내내 가엾다는 생각만 한가득이었다.
눈에 보여야 마음만 아프니 덜 봐야지 하는 생각에
3일쯤은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무렵이었던가...
포리가 있는 집의 옆 골목을 지나는데 선생의 남편 되는 사람이 개집을 봉고에 싣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 얘 어디 가느냐 물으니. 남의 마당에
묶어두는 것도 번거롭고 미안해 서산인지 시골동네로 데려갈꺼란다.
생리도 끝났으니 좋은 종자가 있다는 연락이 와 새끼 뺄 거라는 소리를 또 지껄였다.
그럼 포리는 다시 올 거냐 물으니 새끼를 데려온다던가
점잖은 생김과는 다르게 말 뽄새는 최악이었다.
주말에나 부부가 한 번씩 들러볼 텐데 시골에는 혼자 다 묶여 지낸다고도 했다.
그렇게 떠난 포리 자리에는 널빤지 평상에 내가 깔아 준 해변으로 가요 파라솔 그림 담요만 너풀거렸다.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잠시 데려다 묶어놓고는 비싸게 분양받은 거니 , 귀한 종이니 떠들어댔던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