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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N Nov 17. 2024

우당탕탕 에이전시 디자이너

03 어, 잠시만요. 음- (2/2)

안녕하세요. DDON 입니다. 


저녁에 다시 글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그대로 야근으로 이어져서 :) 제대로 끝맺음을 못했네요.. 


해당 이야기의 결말만 정리하자면 '실무자 분이 저에게 '역할'과 보는 '시야'에 대해 지적을 해주셨고, 해당 내용에 대한 저의 입장(이라 쓰고 변명이라 읽습니다.)을 얘기하였습니다. 프로젝트에 관한 피드백 요청 시 이야기가 도돌이표로 돌면서 시간이 낭비되고 체력적으로도 낭비라는 입장의 실무자분과 그럼에도 계속해서 대화를 하고 얘기를 해야 한다는 저의 입장이 부딪치긴 하였으나 결과론적으로 '그럼에도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는 제 입장을 '이해 / 포기 / 납득 (3 중 1가지 입장이시긴 하실 테니..)' 해주셨습니다. 

(많이 답답하실 텐데.. 감사합니다..!)



도대체 저 새끼는 언제까지 떠들 것인가.. 왜 자꾸 다른 소리를 하는 걸까..


이게 사실 많이 피곤하긴 합니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는 제 입장에서도 얘기를 할 때마다 긴장되기도 하고,

사실 겁도 많이 납니다. 무엇보다 일로 팀원분과 감정적으로 부딪치게 될까 봐 그 점이 가장 걱정돼요.

저희는 평일의 3/2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팀원들과 얘기하고- 밥 먹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 분과 불편해지면 떨어지고 싶다고 떨어질 수도 없습니다. 이유 이전에 당연히 좋은 팀원과 멀어지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려면 제가 생각하기에 답은 대화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령 저한테 욕을 하고 화를 내더라도 그런 얘기를 듣고 피드백이라고 들어야 적어도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최악은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나와 의견이 같은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면 그게 무슨 팀이겠어요.


이해가 가긴 합니다. 에이전시 특성상 늘 시간과의 싸움이고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프로 디자이너로서 실격이라고 하니까요. 보고를 해야 하는 시니어는 더 속이 탑니다. 위에서의 피드백을 직접 받는 것도 시니어니까요. 10년 차 이상의 책임 또는 디렉터 분들은 주니어와 시니어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일의 효율을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일을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비즈니스 성과'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네요.


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일의 효율을 위해 실무자 분들과 회의- / 리뷰-  진행하면 빠르면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가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짧은 케이스고 초반에 길어질 경우는 1시간 이상까지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디자인 시안 작업보다 해당 시안을 작업하긴 위한 이유- 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게 메인이다 보니 방향성 확정이나 의견 조율과정에 시간을 많이 쏟게 됩니다.)


그렇게 회의를 하고 실제 작업을 진행하면 또 예상과 달라지며 추가 의견 공유- 그럼 여기에 또 5분, 10분씩 쌓여가며 소요됩니다. 그럼 눈 깜짝할 새 마감시간이 다가오고 있죠. 보통 이런 식입니다.



으아!! 제발!!!!! 으아!!

처음에 내린 답은... 굉장한 오답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다 해버리겠다-!!!!'였습니다.


매일 야근을 하더라도 나 혼자서 이걸 다 끝내버리는 게 차라리 속이라도 편하지!! 팀원과 부딪치지도 않고!! 하는... 매우 무식한 방법이죠. 이 방법의 유혹은 모든 시니어 디자이너 분들이 한 번쯤 느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해가 있을까 봐 한번 더 짚고 넘어갑니다. 저희 팀 디자이너 분들 실력은 다들 뛰어나셔요.. 조율을 못하는 제가 문제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하시는 디자이너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시간이 급박하고 조율도 힘들 것 같으면 정말로 혼자 하는 게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거든요. 문제는 이럴 경우 해당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팀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냥 개인작업의 결과물이죠. 실제로 결과물도 딱 그 정도로 나옵니다. 


오픈패스라는 디자인 교육 플랫폼의 리더십 강의 중 요런 상태와 유사한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 잠깐 나오더라고요. 소위 '대리병'이라고 합니다.


오픈패스 리더쉽 강의 (광고 아닙니다.)

*대리병 :  자신의 (하찮은)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상태




그래도 이렇게 하면 팀원들은 편해질 줄 알았습니다. 내가 일을 최대한 많이- 양을 가져가고 주도하니 적어도 퇴근은 편하게 하겠지.. 했는데, 이게 웬걸? 오히려 팀원들이 집에 가서 피그마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위의 팀원 분과 대화하다가 알았습니다. 


왜 그러고 있냐고 했더니 '선임님이 저희끼리 맞춰놓은 어라인 이나 흐름을 다 흔들어버리니까요- 저희도 다음날 와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해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잖아요!'라고 하는데 '아-' 했습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내 나름대로 배려랍시고 한 행동이 오히려 팀원들을 이러지도 저리도 못하게 만들고 있던 거였어요. 결과는 결과대로 똥이었고요. 이 날 혼자서 집에서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모릅니다. 저 혼자서 더 좋게 할 거야-! 했던 행동이 오히려 팀의 작업 결과는 결과대로 불만은 불만대로 키우고 있던 것이었죠. 결국 이 날 이후, 저 혼자서 남아서 작업을 건드리거나 전체 문서의 내용을 변경해 버리는- 등의 행동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업무에 대해 마이크로 하게 파악해야 해- 하는 것도 조금 내려놓고 있습니다.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된 이후로 보고서의 평가나 결과물이 더 좋다고 실제로 반응이 나오고 있고요. 


돌아서 보니 '나는 팀원들을 믿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부담을 잔뜩 짊어지고, 책임감에 가득 차서 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있던 거죠. 아직 이렇게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많이 어색하긴 하지만..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방향이 저희 팀에게 (이전보다) 좋은 방향의 결과물을 만들어주고 있고, 업무에 대한 집중력도 매우 강해졌습니다. 가장 큰 건 '내 일' 같이 합니다. 책임감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열정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확히 뭐라고 콕 집어서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제가 하는 일은 '요청에 대한 업무 보조' + '전체 흐름 리딩' 정도.

마이크로 한 텍스트 변경이나, 용어 변경, 구성 변경 등의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살짝 내 능력이 떨어져서 지금 까지 별로였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 또한 이번 일의 배움이겠죠. 저 또한 새로운 노력의 국면에 온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또 월요일입니다. 


회사에 가는 길은 늘 무섭습니다. 또 어떤 미션이 떨어지고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내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걱정입니다. 그래서 늘 팀원들에게 미안합니다. 더 좋은 시니어를 만났으면 좀 덜 고생했을까- 하는 마음에서요.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내색하지 않게 노력 중입니다.

음.. 느껴져요. 뭐랄까- 팀원들의 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그래서 부정적인 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자제하려 노력 중입니다. 그것보다 일단 대화가 많이 줄어서..(눈물..) 조금씩 또 시간을 쌓아봐야죠.


다들 한 주 고생하셨고, 또 새로운 한 주. 음- 파이팅이 아닌 별일 없는 하루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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