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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한 자유 Jun 04. 2024

잊고 있었다

투덜이스머프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언제지?"

둘 다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 기억하는 시점이 조금은 달랐다.

그 사람은 군대 제대 후 복학을 해서

3월에  나를 수업시간 처음 보고

'빨간 운동화에 자전거 타고 다니는 애'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는 형들을 졸라 나를 소개해 달라고 했고

처음 도서관 자판기 앞에서 서로 인사를 했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이전까진 못 보던 마르고 키 큰

남자가 눈에 띄어  소개받을 당시 이미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어쩜 서로가 서로를 본 게 비슷한 시기이었을 수도..


인사를 한 이후 매일 지극 정성으로 도서관 내 자리로 음료수가 올라왔다.

풋풋했던   스무 살 성년의 날 꽃다발을 안겨 준 그 사람!

그때는 이 사람이 10년 후 같이 살 게 될 사람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스물한 살 때 만났고 안 지 10년 만에 결혼에 골인을 했고 14년째 같이 살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내 나이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한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 만난 그때를 

그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음을  잊고 있었다.

'내가 더 사랑하지 않았기에..'라는 다소 아이 같고 어이없는 교만이었다.


가난한 대학생 시절  비싸서 자주 못 가던 식당 아이 낳고 세 식구가 함께 찾아가 보았다.

중화요리 집이었는데 메뉴를 시키면 식전에 동그란 옥수수튀김 같은 것을 줬었다.

배고프던 그 시절 그게 그렇게 특별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10년이 훌쩍 지났어도 아직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추억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가게에서 비싼 메뉴도 이제는 고민 없이 

다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비록 20대 때 먹었던 그 맛은 아니어서 실망했지만

일상의 안정됨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고 현재를 감사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시절 둘째 만삭 때까지 매주 친정엄마 간호를 하러 주말에는 광주는 갔었기에 몸도 마음도 힘들고 지쳐서 우울했었다.

그때 내 기분을 풀어주려던 그 사람의 권유로  같이 다닌 대학교 상대 뒤 맛집에 가서 밥을 먹고 교정을 거닐다 내려오곤 했었다.

20대엔 몰랐던 엄마 아빠가 된 우리의 모습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함께 한 날 중 이렇게 소소한 추억이 꽤 많았는데

시간이 흘러 많은 부분이 흐려지고

현재 나는 투덜이 스머프가 된 것 같다.


일은 똑같이 하는데도 육아와 가사와 온갖 경조사는 여자 몫이라는 게 억울함의 시작이었다.

경제적인 부분을 합치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제일 편안한 신랑에게 짜증을 많이 냈다.

못한 부분만 나와 다른 부분만을 콕콕 집어 지적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딱 필요한 이야기 아니면 대화 자체도 부족하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결혼하면 왜 사랑하지 않는 걸까?

일과 육아 살림 등 수많은 현실에

눈이 흐려져 잊고 있었다.

나만 더 힘들고 헌신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관계 개선을 위해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내가 이제는 더 사랑할 차례니..


서로 다른 점이 매력으로 끌려 결혼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다른 점으로 인해 싸우게 되는 것 같다.

큰 아들이라 생각하고 가족한테 드는 측은한 마음이 있어야 싸우지 않을 수 있을 거 같아

장점을 찾아보고자 감사일기와 행복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에 나에게 도전이 되는 사람의 50가지 장점을 찾아 적는란이 있는데

처음에는 "50가지나 있다고?" 하고 생각하며 작성을 하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50가지가 넘게 금세 채워지는 것을 보며

매일을 새롭게 보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확실히 비뚤어지고 좁은 마음을 지닌 나와는

다르게 길게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넉넉한 그 사람이

나를 더 감싸주고 바른 마음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성격 급하고 잘 삐치고 짜증 많은 나의 단점을 보완해 줘서 정말 감사했다.

아직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가 제일 예쁘다 말해주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주는 늘 한결같은 든든한 내 사람!


어른스러운 분 존경스러운 부분을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하니 조금씩 관계 개선이 되는 게 보였다.

관계는 말에서 나오니 '늘 말을 예쁘게 해야지'하는 다짐을 하고 또 해 본다.


이제는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그 사람에 대한 장점을 한 가지씩 그려 보고자 한다.


글을 쓰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하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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