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담다
문득,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이 하나 있다.
"왜 이렇게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까."
'나였으면 이렇게 했을 텐데'—이 말은 거의 내 인생의 명대사처럼 자주 떠오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에 맞춰 행동하고, 누군가 내게 부탁할 일이 있다면 그걸 기다리기 전에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처리한다. 시간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양보와 배려는 습관처럼 몸에 밴 채 살아간다.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늘 경계하면서.
어떤 날은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앞사람이 계속 기침을 한다. 불쾌한 얼굴을 닦으며 '나였으면 입을 가리고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번뜩 스친다. 두 번째, 세 번째 지하철을 보내며 줄을 서 있는데 발이 저릴 때쯤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아주머니, 세상이 무너질 듯 큰소리로 통화하는 아저씨, 자기 덩치만 한 백팩을 등에 메고 공격하듯 지나가는 청년까지. 내 명대사의 대상이 될 만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쯤 되면 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불편함을 너무 잘 느끼는 걸까 싶기도 하다.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MBTI 대문자 N의 성격 탓인지 그 틈에서도 엉뚱한 상상이 자주 떠오른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다 나와 같다면 어떨까?"
듣기만 해도 영양가 없고 허무한 상상이지만,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기침할 때도 재빠르게 긴 팔로 입을 감싸고, 늦더라도 '내가 너무 늦게 나왔나' 반성하며 조용히 줄 서고, 전화가 오면 '지하철이라 내려서 전화할게요'라며 간단히 끊고, 백팩은 발밑이나 가슴팍에 조심스레 메는 그런 세상.
생각만 해도 자극 없이, 아주 편안한 세상이다. 아마 사전 설명 없이도 눈빛 하나로 매끄럽게 소통하고, 모든 일들이 단정하고 스트레스 없이 굴러갈 것이다. 아마 다들 스트레스 없이 살아서, 아픈 곳도 없고, 머리숱 걱정도 없을지도 모른다. 의사는 이제 "스트레스받지 마시고요."라는 강력한 필살기를 잃게 될 세상이다.
물론 뉴스도, 방송도, 경찰서도 없어질지도 모른다. 나는 눈에 띄는 일을 저지를 만큼 대담하지 않고, 범죄를 저질러서도 뻔뻔하게 발 뻗고 잘 자신도 없다. 잘 정돈된 세상에서 얻는 것이 많은 만큼 잃는 것도 분명히 많을 테니까.
모두가 같은 결을 갖는다면 그 결은 점점 옅어지고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고운 모래알처럼 펼쳐진 세상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이 조금은 헝클어져 있기에 그 안에서 내가 색을 갖고 더 뚜렷하게 선명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가끔 나타나는 맞물리지 않는 톱니처럼 삐걱이는 순간들이 오히려 내가 지닌 결을 더 짙고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편함과 불쾌함을 감수하며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내 결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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