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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Nov 21. 2024

사치품 콜렉터

  올해 5월즈음이었다. 나는 값비싼 헤드폰을 갖고 싶었다. 비싼 가격만큼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겠지. 그건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소비자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논리적 오류중 하나일 것이다. 몇몇 사치품은 아무리 경기가 불황이어도 불티나게 팔린다. 어쩌면 비싼 가격 그 자체에 그 제품을 사는 이유가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자본주의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 명의 소비자였기에 사치품에 비합리적일 정도로 많은 배팅을 했다. 나는 종종 가성비는 제쳐두고서라도, 나만의 것, 예쁜 것을 원했다. 미래에 얼마나 많이 쓸지를 차분히 고려한 것이 아니라, 순간의 만족과 기쁨에 많은 걸 걸었다.


  친한 친구의 추천때문이기도 했지만, 보스사가 만든 콰이어트컴포트 헤드폰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익숙한 음악이 어떤 소리로 다가올지 궁금해지는 동시에 헤드폰을 끼고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걷는 듯한 내 모습에서 느껴질 힙하고 멋스러움을 기대하게 되었다. 과하게 무게감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마샬사의 어떤 헤드폰처럼 예쁘기도 하고 동시에 조금 연약한 듯 작지는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각각의 헤드폰 모델이 내가 일시불로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의 가격이 최저가를 기준으로 형성되거나 조금씩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망설였다. 대체 어떤 가격이 헤드폰이라는 사치품에 알맞은 가격인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에 열심히 고심했다. 이 정도보단 높아도 되는데, 이건 너무 비싸고. 생각해보니 이 정도는 내달에 보너스가 들어오면 충당할 수 있겠는데, 하는 자못 경제학에서 ‘합리적’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이는 고민을. 그렇지만 아무리 좋게 보아도 현재의 내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그 가격으로 결국엔 결정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새 제품을 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나는 손쉽게 어플창에서 당근을 검색하여 당근 마켓에 들어갔다. 근무 시간이었지만, 좋은 음향기기를 구하고자 하는 나의 열정은 점점 불이 붙어 있었다. 헤드폰을 판다는 게시글을 올려놓는 판매자는 꽤 많았다. 내가 구하는 모델의 판매자만 5명은 족히 되었다. 나는 퇴근 즈음해서 한 명에게 컨텍을 했다. 바로 답장이 오지 않았기에 두 명에게 더 연락을 돌렸다. 앞선 두 명은 늦게나마 답장을 했지만, 이미 3번째 판매자와 직거래 장소와 시간을 정하게 되었다.


  거래는 구매하기로 약속한 바로 그 당일날 성사가 되었다. 약속 장소였던 지하철 역 앞으로 나아가니, 판매자로 보이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서니 당근이세요, 라고 정중히 묻고는 나에게 검정색 타원형 케이스로 보이는 물건을 건넸다. 지퍼를 열고 열어보니 흑색의 보스 콰이어트컴포트 모델의 헤드폰이 홈에 맞게 맞춰져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순간 도파민이 샘솟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청음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블루투스가 연결된 판매자분의 핸드폰으로 음악을 켰으나, 왜인지 들을 수는 없었다. 판매자분은 배터리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서 집으로 가는 길에 묵직한 부피감과 함께 나를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헤드폰을 종종 가방에서 꺼내 확인해 보았다.


  집에 돌아와서 헤드폰 스마트폰과 연결하기 위한 펌웨어 어플을 깔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체감된 음질은 이미 분비된 도파민의 양을 상회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들었던 것보다는 좋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청음샵에서 음향기기를 청음해볼때 느끼는 애매하고도 무언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미세한 차이는 블루투스 헤드폰의 경우에서도 여전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억지로 분비된 도파민을 활용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이대로 실망하고 끝내기는 무언가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음질만 고려하고 산 것이 아니다. 나는 금방 몇 개 안되는 기능과 조작법을 익히고, 정수리 위로 헤드폰을 걸쳐 귀를 감싸 착용하였다. 특히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서 입은 뒤에 집 밖으로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쓰진 않았지만, 익숙한 기쁨이 나의 마음에 들어와 콧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자기 만족이라는 이름의 기쁨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감정이다. 궁극적으로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걱정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라, 대책 없을 정도로 낙관적인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팔을 앞뒤로 휘휘 저으며 걸었다. 약간의 팔자걸음이었으나, 당당할 정도로 큰 보폭이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여름의 무더위 때문에 헤드폰을 착용할 수 없었다. 땀이 나도 괜찮다고 여기며 한낮에 쓰고 나가 봤지만, 금새 땀으로 젖어 양 쪽 쿠션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헤드폰이 고장이 나지 않을까 신경이 쓰일 정도로 땀을 흠뻑 젖은 이후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헤드폰을 오래 쓰고 싶었기 때문에, 헤드폰 쓰는 것을 겨울이 될 때까지 미뤘다.


   겨울이 된 지금 헤드폰을 쓸 만한 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오늘만 해도 헤드폰을 달고 살아도 될 것 같은 날씨이다. 그런데, 그 전에 어떤 마음으로 헤드폰을 사고 싶었고, 어떤 기쁨을 안겨다 주었는지 모두 잊어버렸다. 나의 흑색의 보스 콰이어트컴포트는 집 구석에 말없이 먼지만 쌓아가고 있다. 오늘 다시 그 먼지를 털어내고, 한번쯤 빛을 보게 해주어야겠다. 본전은 건져 보자는 마음으로 시도하는 건 항상 의외의 수확을 건지기도 하니까.



메인 이미지 출처 : B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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