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시간에 맞추어 불투명한 유리벽으로 이루어진 건물에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하는 환영의 인사가 내 앞에 툭 던져졌다. 나는 바버샵이라는 공간이 처음이었고, 헤어 스타일에 변화를 주려고 큰 마음을 먹고 갔다. 그런 마음을 잘 알기라도 하는듯이, 무척 당찬 마음을 가진 것 같은 바버들이 나를 환영해주었다. 마시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았다. 물 정도면 됐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만 너무나 친사회적인 환경, 이를테면 커트보를 두른 손님들이 의자에 빙 둘러 둥글게 앉아있고, 바버들과 손님이 초 단위로 대화에 열을 올리는 곳에서 퉁명스러워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종이컵에 담긴 물을 조금씩 마셨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직원의 말에 끄덕이면서 앉아있었다.
3명 정도의 손님이 있는 곳에 한 명이 자리를 뜨자, 한 명분의 고요가 찾아왔다. 그 고요를 커트보처럼 두르고 삐걱대는 철제 의자에 앉았다. 노랗게 탈색을 한 여성 바버가 인사를 하고 내 어깨 너머로 말을 건네 왔다.
"처음이시죠?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는 기다리라고 말끝을 조금 흐리고 사진을 보여줬다. 대략 배우 정해인이 이마를 훤히 드러낸 짧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코트를 입은 사진이었다. 아이비리그컷이라는 헤어 스타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바버는 알아듣고는 스타일에 대한 조언과 앞머리 길이, 옆머리가 뜰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이비리그컷은 완전 처음이세요?"
처음이라고 했으며, 나는 아예 바버샵이라는 공간이 처음이었다. 실제로 끊임없이 말을 걸고 대화를 주도하는 모습이 동네 미용실과는 조금 달라보였다. 내 등 뒤에서는 아직도 두 명의 손님이 바버들과 끊임없이 스몰토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지극히 소셜한 분위기에 매력보다는 이질감을 느끼며 멀뚱히 거울을 보고 앉아있었다. 노란 머리의 바버는 처음이라니 손을 모으며 영광으로 여긴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볼멘소리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아, 그러세요 같은 최소한의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가위를 사각거리며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열중하면서도 끊임없이 바버는 말을 걸었다. 옆머리는 아마 이렇게 돼서 뜰 것 같다며 다운펌을 권했다. 처음이라시니까 다운펌도 무료로 해주겠다며. 서비스가 참 좋다는 느낌이 들어서 잠시 거울에 비친 내 흐린 눈이 약간 커졌다. 다만 다음 번에도 와주신다고 하면 그렇게 해드릴게요, 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만족스럽긴 했다.
마음이 조금 안정이 되니 크게 틀어놓은 음악도 귀에 들어왔다. 잘은 모르지만 흑인들이 만든 정통 힙합 음악인 것 같았고 빠른 랩핑, 단순하지만 중독성있는 비트를 특징으로 했다. 좋은 지 모르겠지만 바버는 머리를 자르며 계속해서 흥얼거렸다. 나는 노란 머리의 바버가 가끔씩 조용히 리듬에 맞춰 허밍하는 것을 보고 왠지 말 없는 내 모습이 송구스러웠다. 말이라도 걸어야 조금 집중이 잘 되지 않으실까? 만날 하는 일인데 말없이 하려니 지루하지 않을까? 이런 자격지심과 공상과 망상의 콜라보가 끝날 즈음에는 커트와 다운펌이 마무리되었다.
"와 다시 봐도 스타일이 변하셨어요"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며 바버가 재차 칭찬해주었다. 자신이 했지만 역시 뿌듯하다는 느낌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확실히 예전보다 더 괜찮아진 것 같다. 나는 마치 냉탕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의 심정이 들었다. 매우 껄끄러운 무언가를 해냈지만 그것을 통해 그것만이 줄 수 있는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머릿속 도파민이 감도는 느낌이었고, 새로운 스타일을 얻었다는 만족감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무척이나 좋았지만 이걸 다음에 다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점도 냉탕과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