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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25. 2024

달리기 3.5km

  동네 구청 옆에 있는 종합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했다. 약 9바퀴 정도 뛰었고 스마트 워치로 측정되는 거리는 3.5km이다. 같이 간 사람이 있는데 나의 엄마이고 나이는 50대 중반이다. 우리 엄마인 h씨는 며칠 전에 오래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h씨가 다닌 회사는 h씨가 10년 정도 근무한 회사로 빵을 생산하는 큰 공장을 소유한 회사이다. h씨가 일하던 공장은 업무 강도가 워낙 세고, 직장 동료들의 성격들도 괄괄하고 드세서 항상 집에 돌아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소연을 하셨었다. 정신없는 기계의 소음 속에서 h씨가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머리와 턱을 감싸는 하얀 작업용 모자를 쓰고, 역시 하얀 작업복을 걸쳤다. 새하얀 밀가루 반죽이 튀어도 알아채지 못할 것 같다. 쉬지 않고 열심히 팔과 허리와 어깨를 움직여 가며 반복적인 작업을 한다. 민첩한 몸동작으로 바쁘게 케익의 생크림을 펴바르기도 하고, 생크림으로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장식을 올려놓기도 한다. 나는 케익의 빵을 만드는 과정들을 세분화 해서 여럿이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h씨의 옆 동료직원은 기계의 큰 소음에 의해 사소한 정보도 고함을 쳐서 전달한다. h씨는 쉴 틈 없는 작업에 어깨가 결리기도 하고, 한겨울에도 진땀이 나기도 한다고 했다. 화장실조차도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갈 수 없다. 하루에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3번 정도의 기회가 주어질 뿐이었다.


  이제야 그 고된 노동의 시간을 조기 퇴직으로 마무리한 h씨는 가끔 감출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한다. 웃으면서 한다는 말씀이 "이제 아빠가 집에서 논다고 뭐라고 하면 우리 쿼카가 도와줘야겠네" 였다. 아직도 직장에서 벗어난 생활이 익숙지 않은지 다른 일자리를 빨리 찾아보려고도 하신다. 그러다가 퇴직금을 계산해보고 내심 흐뭇한 표정을 짓다가, 액수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어떻게 굴릴지 고민하는 듯 뜸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한 모습들 가운데서도 확실히 느껴지는 건 아직 전업 주부로써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일에 묘한 낯설음을 경험하신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모습에 평소 h씨와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h씨가 좀 더 현재 생활에 익숙해져서 결국 지금에 만족하고 즐거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마음의 일환으로 오늘도 오랜만에 혼자 러닝을 나가려는 것을 h씨를 붙들고 같이 나갔다. h씨도 오랜만에 하는 달리기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간 묵었던 체증마저 모두 가시는 기분이었다. 마음도 상쾌하고 몸도 이완되어 가뿐해지는 것이 참 좋았다. h씨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꼭 매일 러닝슈즈의 끈을 묶고 달리기를 하러 나가야겠다고 다짐하는 h씨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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