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쿼카의 하루 Feb 03. 2024

풀코스 집들이

2023. 9. 16. 추억 기록

  어느 여름날의 모임 시간.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누군가 이사를 했으니 집들이에 우리 모두를 초대해 줄 거냐는 말을 꺼냈다. 집들이만큼은 부탁이나 제안보다는 당연해 보이는 요구에 가까워 보이도록 말을 꺼내는 게 우리들의 방식이었지만, 이사한 동원이형의 반응은 장난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러면 나중에 언제 날을 잡아보자"


  주저하지 않고 대답해 준 것만 해도 모두 내심 고마웠지만 그러한 반응에는 또한 다큐로 받아치는 것 또한 우리들의 방식이었기에


  "그럼 동우형이 요리하는 건가?"


  재치 있었던 선재형의 말로 모두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동우형 직업이 요리사니까, 그러면 다들 어떤 거 먹고 싶어? 동우형 다 되죠?"


  이 말을 끝으로, 다들 재미있어하며 고심하는 표정으로 메뉴를 생각해 내기를 시작했다. 수육, 잡채, 파스타, 오리고기 등에서는 동우형의 반응은 잔잔한 물결과도 같이 평온하였으나, 누군가 스테이크를 말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입에서 불평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스테이크는 아니지 않느냐, 고기는 누가 계산하느냐는 문제를 토로하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의견 제시자인 선재형에게


  "그럼 의견을 낸 사람이 부담하기로 해야지"라는 말로 선재형을 궁지로 몰아감으로써 마무리지으려는 동원이형을 비롯한 우리들이었다.


  우리들은 이사를 가서 짐 정리를 마친 동원이형의 집에 초대되어 집들이를 나서게 되었다. 6명이나 되는 사람이 2명이 사는 집으로 가게 되었지만 사진으로 본 집은 생각보다 꽤 넓어 보였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2대의 자동차가 필요하였으며, 2시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파주로 가는 길이 꽤나 멀고 막혀서 카오디오로 각자가 음악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자며 이동하기에도 꽤 긴 시간이었던 것이다. 파주에 도착해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으로 집들이 선물을 각자 바리바리 챙기고 아파트로 입성하게 되는 우리 6명이었다. 집에서는 동원이형과 형의 여자친구분이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동원이형의 여자친구분은 대만 사람이셨다. 대만 사람이지만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한국어를 잘 못한다. 동원이형 역시 대만어보다는 일본어에 능통하였기에, 둘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는 일본어였다. 둘은 일본에서 만났으며 일본어로 이야기하며 연애를 했다. 집들이에 온 그날도 두 사람이 자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아주 친밀하고 정감 있게 대화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리 6명이 꽤나 바보 같지만 화기애애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노라면 동원이형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주 웃음 포인트들에 대한 통역을 여자친구분에게 해주었다. 신기하지만 보기 좋고 행복한 풍경이라고 생각이 들 때쯤, 그 자리에 외국인이 또 한 사람 있음을 상기할 수 있었다. 그 외국인은 우리 목장(교회 안의 소모임)의 막내 성우였다. 성우는 중국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 오랜 기간 체류하고 있어 한국 사람으로 보이지만 엄연한 중국 국적의 중국인이었다. 갑자기 여자친구분과 성우가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주 자연스럽고도 친근감 있게 프리토킹을 하는 광경이 펼쳐졌고, 이 공간은 매우 유창한 동북아 3개 국어가 번갈아가며 들리는 이상한 곳이 되어버렸다. 실제로는, 일본어로만 대화하는 누군가들과 중국어로만 대화하는 누군가들 그리고 한국어밖에 할 줄 몰라 영문을 몰라하고 있는 한국인 6명이 머쓱한 표정으로 앉아있거나 서있는 진풍경이라고도 해야겠다.


  풀코스로 집들이 음식을 혼자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겠다는 동우형의 큰소리가 약간 걱정되다시피 했으나, 재료가 부족하거나, 양이 모자라면 배달을 시키면 되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다들 머그컵, 전병과자, 디퓨저, 두루마리휴지 등 집들이 선물들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아닌 게 아니라 모두가 감탄할 정도로 집은 넓고, 깨끗했다. 꽤 넓은 화장실이 2개, 침실도 3개, 드레스룸까지 딸려있었다. 구경이 끝나고 음식을 하기 전 본격적으로 준비를 하려고 하는 와중이었다. 성우가 소파에 대자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모두가 곁눈으로 혹은, 정면에서 대놓고 보고는, 한마디 하기 시작했다. 모임의 장이었던 선재형은 자꾸 복식호흡을 한 목소리로 너 몇 살이냐고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랑곳 않고 자고 있는 성우. 성우를 보며 우리들은 셔터음을 내며 각자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나중에도 종종 볼 사이니 이런 모습은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좋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형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이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성우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다.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플라스틱 용기의 쓰레기가 생기게 됐는데 그걸 버리는 분리수거통이 거실 옆 베란다에 있었다. 분리수거통에 쓰레기를 넣는 입구가 어디인지 몰라 아예 통 윗부분(분리수거통을 비울 때 사용하는 뚜껑같다) 자체를 열고 버리는 내 모습을 동원이형이 목격하게 됐다. "바보야 그걸 그렇게 넣는 사람이 어딨어어. 하하"라며 정말 우습다는 듯이 뚜껑 아래 입구를 열고 넣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원이형. 원숭이 그 이하의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에 그만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못내 억울하였고 거실에서 풀코스 요리를 기다리던 모두에게 한마디 했다. "이거 한번 버려봐요" 그러자 모두가 떠들썩했던 우리를 엿듣다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것'을 하기 시작했다. 각각의 행동양식이 다르게 펼쳐졌다. 윗뚜껑을 만지작 거리다가 이내 입구를 여는 사람, 순식간에 돌격해서 윗뚜껑을 여는 사람, 신중하지만 빠르게 입구 손잡이를 찾아 여는 사람. 6명 중에 3명은 플라스틱 용기를 정확한 입구를 열고 버리는 데 성공하였으나, 나머지 3명은 쓰레기통 윗부분 자체를 열고 버리는 나와 같은, 웃지만은 못할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국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나와 같이 하는 걸 보고 바보는 나뿐만이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는 나였다.


  본격적으로 준비가 되자 동우형은 정말로 '각을 잡고' 말 한마디 안 하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집중하며 칼을 썰고 재료를 손질하고, 면을 삶고, 기름을 두르고, 채소를 데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옆에서 보조해 주었다. 눈이 번쩍 뜨일만한 수육과 파스타, 오리고기 메뉴가 비워질 때마다 식탁으로 대접되었다. 채끝살 스테이크를 마지막으로 풀코스의 대미가 장식되었던 그날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던 동우형의 헌신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한 접시도 먹지 못하고 요리를 할 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의 섬김이었으나, 정작 쿨하게 접시를 비워버린 우리들에게 '너네들이 잘 먹는 걸로 성공이다'라고 말하는 동우형. 직업의식일지, 우리들에 대한 사랑일지, 아니면 의리이고 책임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넉살 좋고 듬직한 성품을 가졌으며, 모두를 기분 좋고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을 요리 실력의 소유자임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둥우형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회심의 채끝살 스테이크



작가의 이전글 퇴근길, 버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