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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Feb 03. 2024

퇴근길, 버스

직장인 레미제라블 下

  나는 버스에 승차하며 지갑을 꺼낸다. 앞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후불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태그한다. 자리는 아직 충분히 많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왼편 자리에 앉아서 몸을 편안하게 이완하고 추위에 떨던 몸을 녹여본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고, 카톡에 답장을 간단하고 짧게 하고, 인스타그램을 켠다. 피드에 뜬 지인들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긴장했던 하루의 정신이 누그러지는 듯하다. 잠시 따뜻한 눈길로 사진들을 바라본다. 결혼을 한다고 결혼 전에 마지막으로 모인 사람들, 방콕, 인도네시아 유명 해외 여행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 매주 참석하는 동호회 사진을 올리는 사람까지 참 다양하다. 오늘도 직장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 나지만,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행복하고 힘을 얻는다.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한다. 과장님이 말했던 업무에 관련된 내용을 집에 돌아가서 한번 검색해보고 제대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문성이 있어야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경력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에 부장님이 했던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쿼카씨, 이런 경우에는 나한테 일단 보고를 해야돼. 그런 식으로 하면 다른 데 가서도 좋은 소리 못들을거야. 훈계를 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려니 생각한다. 부장님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조언도 아끼지 않으시는 거겠지.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오늘을 잘 마무리하려면 긴장되고 각성된 몸을 풀고, 운동을 해서 뿌듯한 기운이 넘치게 하자. 그런 생각으로 오늘은 한강으로 러닝을 나가려고 한다. 스마트폰을 보던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린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있다. 버스는 멈춰있고, 대로에서 초록색 신호에 사람들이 각자 맞은편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인도 보이고, 노인도 보이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키 큰 여성도 보인다. 각자가 느리지만 부지런한 걸음으로 녹색 신호의 초가 다 지나가기 전에 모두 반대편으로 간다. 이윽고, 버스는 자동차 신호를 받고 소란스러운 엔진소리를 내며 앞으로 전진한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버스는 덜컹하는 소리를 내며 위로 조금 떴다가 내려간다. 집으로 가서 멍하니 tv를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꾸벅꾸벅 졸음이 오는 것 같다. 정지 신호에 잠깐 고개를 숙이고 눈을 붙인다. 요즘 보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생각한다. 그 드라마 다음 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자주 보는 예능의 이번 화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조금 제 멋대로 상상하다가, 고개를 든다. 감았다 뜨게 된 눈꺼풀은 고집스럽게도 제 위치에 유지하고 있다. 새삼스레 눈이 참 피로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를 잘 마무리하려면, 감사한 일들을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던데... 감사한 내용들을 죽 써볼까 생각도 든다. 사실 굉장히 거창한 생각이라 들어서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떠올리기라도 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점심 시간에 먹었던 순두부 찌개가 참 맛있었지. 그것도 감사하고, 오늘 이렇게 건강하게 지낸다는 것에도 감사하고, 그리고 이렇게 버스에 몸을 싣고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집 앞이다. 집 앞에 도착한 버스에서 나는 내린다. 그리고 홀가분해진 마음에 휘파람을 불며, 집까지 걸어가는 길로 가볍게 발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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