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쿼카의 하루 Mar 01. 2024

자취 대신 가구 바꾸기

2024. 03. 01. 金 일상기록

  열흘 전에 나의 엄마인 숙씨가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 올 즈음해서 찍은 사진이 9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가구점에서 새 가구를 장만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 찍은 가구 사진인데, 옛날 사진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9년을 살았다는 뜻이 된다. 사실 내 마음으로는 9년 동안 살았던 집과 이제는 이별하고, 이사를 가거나 자취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일단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취를 하는 것은 여의치가 않다. 그리고 나의 엄마인 숙씨와 아빠인 진씨에게 이사를 가고 싶다고 설득을 해도, 둘은 우리 집이 재개발 부지로 선정되어, 아파트 입주권을 취득할 때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재개발 부지로 선정되기도 전에 이사를 가는 것은 두 분의 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둘의 말씀대로라면 어차피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 다른 곳으로 이주를 가야 하는데, 입주권을 포기하면서 빨리 이사를 갈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꿩대신 닭이라고, 지금은 내 방에서 9년을 함께 같이 했던 가구들을 조금씩 재배치하거나, 새로 장만하려고 하는 기간 중에 있다. 자취를 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이면서, 동시에 나의 로망 중에 하나는 넓은 개인 공간에 있다. 내 방을 살펴보니, 잘 쓰지도 않는 쓸데없는 것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 있어서, 작업 공간인 원래 넓은 책상 위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큼지막한 프린터 겸 복합기를 거실로 뺐고, 책꽂이에 잘 쓰지 않는 것들을 정리하고, 영양제, 스킨로션, 약 등을 잘 보이지 않는 가장자리로 밀어버렸다. 그랬더니 원래 활용할 수 있었던 책상의 큰 면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활용도는 꽤 높지만 자리를 그보다 많이 차지하는 서랍장을 바깥으로 치워버렸다. 이 과정 중에는 숙씨의 중요한 도움이 있었다. 서랍 위에 책꽂이와 잡동사니부터, 다섯 칸이나 되는 커다란 서랍의 모든 물건을 비우고, 서랍장을 집에서 꺼내서 원래 자리에 쌓여 있던 먼지를 청소하는 일까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서랍장을 치우니, 자리를 여유 공간 없이 꽉꽉 들어찼던 느낌이 한층 널널하고 한가해졌다. 원래 나는 산이나 숲보다는 탁 트인 평지를 좋아하는 성향이라서, 더욱 넓어진 내 방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나의 로망이자, 자취를 하게 된다면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침실에 tv를 장만하는 것이었다. 방이 여러 개이거나, 거실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산다면, 필요할 때마다 거실로 나와서 tv를 보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원룸일 경우에는 침대에 누워서 tv를 있게끔 공간을 활용하는 집의 모습을 미디어에서도 나는 많이 보았기 때문에 내 기억에 깊이 남았다. 불을 끄고 tv에서 나오는 잔잔한 불빛에 집중해면서 과자를 까먹는 드라마 속 배우의 모습들이 등장할 눈을 반짝이곤 했다. '장기하의 얼굴들'의 <tv를 봤네>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도 나오지 않는가. 물론 영상 장기하는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지만, 침실 같은 특유의 잔잔하고 아늑한 느낌이 나의 인상 속에 남아, 그런 혹은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에 나는 tv를 장만하게 되었고, tv를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서랍장도 집안 어디에선가 공수하여 tv를 볼 수 있는 위치를 마련하였다. 이제는 침대에 누워서 리모컨 위에 엄지를 굴릴 수 있다니 꿈만 같다. tv의 잔잔한 불빛에 멍을 때리며 잠들 수도 있다. 생각을 비울 수 있는 도구는 많겠지만, 그 옛날 tv가 없던 시절에는 장작 위에 피운 모닥불이 사람들이 낮 동안 경험한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중요한 도구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그렇게 모닥불 위에 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완하며, 하루 동안 묵은 스트레스를 풀었다. 나중에는 그 자리를 브라운관이 대체를 했고, 그보다 최신에는 유튜브와 ott서비스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tv의 수동적이고 한정적으로 주어진 선택지를 제공하는 매체가 마음에 든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광고 카피가 의미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온전히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활동이 더없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내 방에 9년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옷장과 서랍장이 딸린 책상인데, 두 가구를 단출한 행거와 다리만 있는 책상으로 바꾸고 싶다. 하지만 이는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숙씨의 반대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 되었지만, 큰 것들을 이미 끝냈으니, 작은 것들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달리기 3.5k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