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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ean in the usa Jun 10. 2024

책상이 가져다 주는 선물

   



   책상이 생겼다.


   우리가 사는 집이 별로 크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줄곧 식탁에 앉아서 무엇이든 했었기 때문에 책상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책상이란 걸 아예 까먹고 지냈다는 것이 옳겠다. 그러다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먹은 것은 몇 개월이나 지나도 가시지 않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어딘가 단단히 틀여 막힌 것처럼 이상하게 모든 것이 따분하고 금방 피곤해졌다.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지는 일도, 집중을 하기도 힘들어졌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면 대꾸하는 것까지 귀찮아지기 시작한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습관처럼 늘 식탁에 앉아서 무언가 끄적거리거나 책을 읽으며 소일거리를 하던 것조차 싫어지기 하자, 내가 느끼는 이 권태는 금방 끝날 일상의 무기력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를 찾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변한 것은 별로 많지 않은데 왜 나는 갑자기 온갖 것이 시시하고 귀찮아졌을까. 미국의 크고 화려한 도시들을 다 놔두고 이런 시골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 아직 불만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괜찮아진 지 오래되었다. 남편의 생활과 나의 생활은 이미 예전부터 잘 맞추어져 있고 우리의 일상엔 큰 변화는 없다. 어쩌면 너무 변화가 없는 것이 탈일지도 모를 정도로 늘 같은 하루가 지나고 시작된다. 그럼 무엇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을까. 문득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식탁에는 내가 먹다가 남긴 쿠키 몇 조각이 디저트 접시 위에 올려져 있고, 빨래를 개키느라 소파 위엔 옷가지들이 늘어져 있다. 남편이 커피를 마시고 올려놓은 머그잔 하나와 내가 마시던 물이 담긴 유리컵 하나가 티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그 어디에도 내 공간이 없다.

내가 머무는 공간은 있을지 언정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어떤 것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는 없는 것이다. 우리 집 살림살이들과 일상의 무더기들이 넘실거리는 한가운데 나는 앉아 있고,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해야만 비로소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그건 깔끔하게 집안을 정리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정돈을 하고 애써 마련해야만 생기는 공간, 오롯하게 나만의 것이지 못한 부엌의 식탁에서 나는 언제나 반쯤은 생각하고 반쯤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쓰면서 지내는 것이 익숙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나는 한꺼번에 여러 군데에 신경을 쓰느라 어느 곳에도 집중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보장된 나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를 간다거나 하는 거창하고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 그저 작은 변화가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것은 바로 책상이었다.

어릴 적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멋진 책상을 가지고 있었다. 크고 단단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내 책상은 커다란 책장까지 함께 달려 있었는데, 나는 그 책상을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고 미국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썼다. 내가 어떻게 자라났고 나의 취향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한눈에 보이는 그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고, 일기를 쓰거나 좋아하던 팝송이며 가요며 소중히 모으던 음악 테이프를 꺼내서 듣거나,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느라 새벽까지 깨어 있는 일도 많았다.  그 시절엔 난 좋아하는 것이 정말 많았고 늘 푹 빠져 있었다.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좋아하며 집중하던 그 순간들이 그렇게 귀한 것인지 그땐 몰랐었다. 언제나 좋아하던 것들을 하던 곳. 나에겐 책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뭘 그렇게까지 해야 해. 막상 새로 책상을 마련하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편에서 그런 불만이 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 사람이다. 지지부진한 피로감을 견디며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되었으니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이곳은 한국처럼 깔끔하고 예쁜 가구를 많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별로 없을뿐더러 대체로 일처리도 매끄럽지 못해서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도 있으리라 미리 마음먹었지만, 남편과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고약스러웠다. 한 번은 책상 보드가 부서진 채로 배달되어서 오랜 통화 끝에 결국 환불을 해야 했고, 또 한 번은 가구를 싣고 온 트럭이 우리 주소를 찾지 못해 엉뚱한 곳에서 자신들을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요즘 세상에 구글맵만 켜면 못 찾아올 이유는 없을 텐데 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우리가 그 트럭을 찾아 나서서 직접 책상을 받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이리저리 조립을 해서 완성한 책상은 그런 고난과 수고로움을 잊게 만들 만큼 꼭 내 마음에 들었다. 나는 큰 창문 앞에 책상을 두기로 했다.


   햇빛이 쏟아지는 큰 창문 밖으론 풀이 성성하게 자란 야트막한 동산이 보이고 황색 소들이 한가롭게 걸어 다닌다. 나는 자그마한 화분을 놓고 의자에 앉아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온다. 그러면 한눈에 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느샌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종알종알 거리는 새들의 소리는 황홀하리 만큼 예쁘고 앙증맞다. 외따로 떨어진 시골마을에 차가 없으면 어딘가 걸어 다니기도 힘들고 지루하지만, 차 소리 사람 소리보다 새소리가 더 크고 풍성하게 들리는 것은 도시에서 누리지 못할 호사스러운 사치임이 틀림없다. 책상 하나 놓았을 뿐인데 어느새 내 생각은 거기까지 훌쩍 떠나 있다. 오늘도 이렇게 책상에 앉아 아주 오랜만에 끄적일 궁리가 생긴 것도 반가운 일이다. 책상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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