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세상 공부 #1 : 바스크의 언어 Euskera
그들에게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분 짓는 기준이자 삶의 방식이다.
바스크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간판 하나하나가 눈에 걸린다.
‘Euskaltegi’, ‘Sagardotegi’, ‘Ikastola’... 어디서 본 적도 없는 단어들인데, 묘하게 질서가 있다. 이 언어는 라틴계 언어도, 게르만계 언어도 아니다. 학자들조차 그 계통을 정확히 밝히지 못해, 고립어(isolate language)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럽에서 그 어느 언어와도 연결되지 않은 유일한 언어, 바스크 지방의 언어인 에우스케라(Euskera)다.
에우스케라는 기이할 만큼 오래되었고, 이상하리만치 버텨왔다. 로마도, 무어도, 프랑코 정권도 이 언어를 지우지 못했다. 사용 인구는 적지만, 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의 공간을 지켜낸 언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특히 프랑스 바스크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이 언어를 ‘집 안에서만 쓰는 말’로 가두어야 했고, 스페인 쪽에서는 전면 금지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서 온 건지, 왜 이렇게 생긴 건지 아무도 모르는 이 단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이고 지도이며 저항의 방식이었다.
언어는 대개 바깥을 향한다. 더 넓은 세상과 통하고,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바스크어는 그 반대였다. 이 언어는 공동체 바깥으로 뻗어나가기보다, 안쪽을 단단히 묶는 데 힘을 쏟아왔다. 외부와의 소통보다 내부의 연결을 중시해온 언어. 그래서일까, 바스크어는 말이라기보단 하나의 방어막, 공동체를 감싸는 구조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Euskaldunak ez du bere etxera sartzen euskara ez dakienik."
(바스크인은 모국어를 하지 않는 사람을 집에 들이지 않는다.)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에게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분 짓는 기준이자 삶의 방식이다.
언어가 널리 쓰인다는 건 분명 장점이다. 많은 사람과 빠르게 연결되고, 자원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기능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범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잊히기엔, 어떤 언어들은 너무도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에우스케라는 그런 언어였다. 언어가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치기보다, 사용자가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게 되는 경우. 그 안에 담긴 세계관, 관계 맺는 방식, 말의 호흡마저도 삶의 태도를 형성한다.
개발자로서 나는 때때로 독특한 철학을 가진 프로그래밍 언어를 마주한다. 범용성은 떨어지고, 익숙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주지만, 그 언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시선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자연어는 기계어보다 훨씬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한다. 문법을 어기거나 단어를 틀리더라도, 인간은 의미를 유추하고 감정을 덧입히며 소통을 이어간다. 이런 유연함 덕분에 언어는 단순한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문화와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 된다. 그리고 그 그릇이 유난히 낯설고 독립적인 형태를 가질 때, 우리는 오히려 더 강한 인상을 받는다. 바스크어가 그랬다. 틀에 맞지 않기에 더 선명한 존재감, 익숙하지 않기에 더 오래 남는 감정. 이 세계에 다양한 언어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고, 가능하다면 새로운 언어가 태어나는 모습도 보고 싶다.
그리고 어쩌면, 같은 고립어(한국어) 사용자로서 그런 감정이 조금 더 익숙한지도 모르겠다. 언어 하나를 공유한다는 건 단순한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연결하느냐의 문제다. 바스크어를 보며, 나는 우리가 ‘같은 말을 한다’는 사실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