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나를 막을 순 업쒀.
홀로 사는 프리랜서 쫌쫌다리 인생이다. 혼자 벌어 쓰고 사는 1인 가구 프로 엔잡러이올시다.
프리랜서라도 크게 걱정하고 살진 않았다. 열심히 하고 또 알아주셔서 재계약이 수월하거나 어렵지 않게 다른 에이전시와 또 일을 하고. 그렇게 스무 살 중반부터 프리랜서 인생을 살아왔다. 중간중간 정규직 회사 생활도 했지만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와 끝이 없는 업무의 굴레가 4대 보험과 퇴직금, 상여금, 높은 직급의 유혹으로도 버티질 못하겠더라. 다들 아시다시피 프리랜서는 급여가 불안정할 수도 있고 갑자기 프로젝트의 기간으로 인해 잠시 쉬게 되는 경우도 흔하기에 나는 정규직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대신 프리랜서 삶에서 쿠션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심한 경제적 타격을 입고 한 순간에 백수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에 들어오는 다른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또 스스로 내 주 업무 근무 시간에 겹치지 않는 알바를 찾아 하기도 했다.
원체 루틴이 새로 한 번 잡히면 힘들지 않게 그냥 하는 스타일이고.(운동의 루틴은 평생 실패 중이다..) 사람으로 인해 힘든 케이스거나 일이 체계적이지 않고 엉망이라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아니면 웬만하면 버티는 성향이라 파트타임으로 하는 일 2개도 5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하나는 영어 과외이고 하나는 재택으로 저녁에 할 수 있는 평일 야간 알바였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힘든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파트타임이다 보니 내 주업무의 훌륭한 쿠션 정도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난주까지는 이렇게 3잡을 뛰면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두둥.
현재 하고 있는 메인 직업을 정확히 오픈하기는 힘들지만 특성상 2월 중순이나 말에 마무리를 하고 3월 중순에 다시 일을 시작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큰 의심의 여지없이 3월 중순 같은 프로젝트를 하겠구나 생각했다. 출근의 마지막 날이었고 동료와 3월의 계획을 세우며 건설적인 프리랜서의 자세로 그날도 직장엘 갔다. 업무 담당 매니저님이 나를 보고 곤란한 얼굴을 보였다. 아니 곤란한 얼굴보다는 당신에게 큰 죄를 지어서 도저히 쳐다볼 수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쎄함은 언제나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왜요? 왜 그래요? 무슨 일 있는 얼굴인데??? “
“아니 그게…아..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회사에서 우리가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뭐겠는가... 냅다 사랑고백도 아닐 거고.
“… 혹시 저 계약 만료인가요….?”
“…네.. 어떻게 해요. ㅇㅇ씨 말고도 6,7명이 이유도 없이 계약 해지래요.”
하아.. 이것이 바로 갑의 결정인가. 마른하늘의 날벼락 or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 그게 나한테 떨어진 거고 날 잡은 거야..?
근무 평가서에도 이상이 없었고 다른 계약 해지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적으로 1인자의 단독 결정이었고 임원진들과 담당자분들이 전날까지도 이 사태를 막아보려 했다고 후에 듣게 되었다. 3년간 일했던 동료와도 그날로 헤어지게 된 이 상황. 황망하다는 말로도 부족했고 이런 일은 프리랜서 인생에서도 처음이라 부당했지만 그걸 마음에 두고 있어 봐야 그저 내 마음만 더 다칠 뿐이란 걸 알고 있어서 5년 간 이 직장에 있으면서 알게 된 분들은 나 대신 분노해 주고 위로를 해 주었다. 알고 있다. 나가는 사람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단 걸. 지난 가을에 새로 온 1인자가 이렇게 결정한 걸 옆에서 본 이상 살아남은 자들도 매일 편치 못할 것이다. 뚜렷한 사유가 없는 마지막 날 계약 해지라니. 치사하네. 실업급여도 못 받게. 오.. 정말 별로야. 그날이 지난 금요일이었는데 금요일에 업무가 없어 출근을 하지 못한 분들은 다음 주에 일부러 와서 짐 정리를 하고 주차패스 및 사원증을 반납하고 짐을 빼러 와야 했다. 이게 요즘 세상에 있을 법한 일인가 싶었다. 주말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최대한 담백하고 멋지게 나와 엮인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감사 인사를 문자로 보냈다. 월요일, 응원과 놀람과 슬픔의 메시지들이 쌓여갔다.
일은 언제든 만료될 수 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수긍하고 피드백을 받고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그 사이엔 예의와 기본이란 것이 존재하는데 그게 생략된 이런 절차는 무엇보다 나에게서 나의 사랑하는 일과 사람들을 단번에 앗아가고 문을 닫아 버리는 가혹함이었다. 가혹했다. 이 일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헤어짐의 징후조차 못 느끼고 안녕. 현실이라니.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고 한다. 나는 뒤돌아보면 참 밋밋하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했다. 그래. 이만큼 나이가 먹고 일을 했으면 이런 일도 겪을 수 있다. 그 흔한 말로 나는 나를 그렇게 어르고 달래고 있다.
월요일 오후, 내 분야의 지인들에게 내가 FA 물고기가 되었단 소식을 알렸다. 3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모두 나에게 내가 맡을 수 있는 업무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려주었다. 3월 새 업무들을 잘 맡을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업계의 헌터님들은 다행히 나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나의 갑작스런 계약해지를 들었음에도 감사하게도 누구 하나 의심 없이 내게 잘못이 없다는 판단하에 각자 최선의 오퍼를 주었다. 열심히 한 우물에서 일한 보람을 격하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 바로 이렇게 초스피드로 이직할 때가 아닐런지? 두 군데의 오퍼 중 고심 끝에 전에 같이 일을 해 본 적이 있는 담당자님이 있는 새로운 에이전시로 옮기기로 결정을 했다. 문제는 보통 3월 중순에 시작될 업무가 이번 건은 3월 말에 시작된다는 소식. 이로써 3월 월급이 날아감 확정. 2월도 반 날아갔는데요. 곤란하지만 그래도 파트타임으로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있으니 최악은 아니니 이걸로 고정비용을 해결하고 단기로 할 수 있는 알바를 하나 더 찾아서 생활비를 빠듯하게라도 채워보자고 결심을 했다. 잠깐만요. 본체야.. 너 지금 뭐 하는??? 너 지금 3잡 중인데…또요.ㅜㅜ 인생아… 얼마나 날 부려먹으려고 하니.
아니 이 사람은 1,2개월 놀 여윳돈도 없나 싶겠지만, 전에도 모아놓은 돈을 푸슬푸슬 쓰면서 잠깐 쉬어본 적도 있다. 그런데 다시 모으기가 이제 아주 힘든.. 쓰는 건 참 쉽고 모으는 건 왜 100배 힘들죠??? 그리고 원래 성격상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지금 해결해 보자는 주의이다. 말하자면 성격이 급한 편이고 닥친 일은 당장 해결을 해야 하고 뒤의 계획이 틀어지는 걸 싫어하는 극 J인간이라는 말씀. 안 그래도 없는 돈 딱 지켜.. 제발.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호기심도 한창 많을 나이.(어린 나이 아님)
그렇게 화요일 새로 갈 직장이 정해지고 내 “댕강짤림“보다 마음의 상처를 걱정해 준 모든 가족과 친구들, 예전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속전속결. 내상을 입어도 나는 털고 다시 투지를 불태우고 불도저처럼 해결해 버릴 것이다. 1인자님. 남의 밥줄을 당신의 간단한 말 한마디로 쉽게 끊어 놓으셨지만 제가 다시 밥줄 연결해서 살아났습니다만 그게 얼마나 사람으로서 예의 없었던 절차의 생략이었는지 아실지. 아마 영원히 모르겠죠. 나만이 옳다, 나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시다니. 궁예의 화신이신가.. 허허.. 세상이 이렇게 나에게 시련을 주고 나는 또 레벨업을 해 봅니다. 심심한 감사드리고요.. 일단 다시 본업 재취업은 확정이 됐는데 그.. 다만 기간이 많이 밀린… 3월 급여가 홀랑 날아간 상황이니 나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고심을 했다. 그러다 생각한 당근알바와 알바몬! 검색의 노예가 되어 3,4일 동안 잠도 거의 못 자고 내가 체력적, 물리적으로 할 수 있고 시급이 그래도 어느 정도 높으며, 꾸준히 할 수 있는 일들 모조리 찾기 시작했다. 서울, 경기 어서 오고. 시간과 시급, 조건만 맞다면 어디든 갈 생각이었다. 네.. 저는 “광기의 엔잡러 “에서 ”광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알바 사장님이 연락 주실 때까지 네버 스탑할 것이다. 너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너로 돈을 벌 것이다. 그러니 부디 검색과 지원을 반복하고 있는 한 달 +2주의 월급이 사라진 이 인간을 가여이 여겨주시고 연락을 주소서.
금요일은 친한 언니의 업무를 도와주기로 하고 외출을 하려는 찰나였다. 당근에서 푸시 알림이 왔다! 듀근~! 동네알바에선 2개를 지원했었는데 그중에 더 가고 싶었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실제로 일하신 알바분들의 알바 후기가 좋았고 무엇보다 사장님이 좋으시다고 했다. 일요일, 바로 오늘. 11시 면접이 잡혔다. 다른 데서는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아 초조한 상황인데 이렇게 연락이 오니 전날 통 잠을 이룰 수도 없었고 꿈만 5개는 꾼 거 같은. 다행히 집에서 차로 12분 정도 걸리는 가게였다. 지나가면서 봤던 곳인데 일하러 들어간다는 게 신기했다. 오.. 사장님 나보다 젊어. 제발 나이 많다고 내치지 마시고 뽑아주시길 간절히 원하는 눈으로 최대한 또랑하고 맑은 광기의 눈으로 면접에 임하고 시키시는 일을 씩씩하게 했다. 그렇게 내게 주어진 합격의 목걸이.
“다음 주 주말부터 출근하세요~다음 주에 봐요.”
알바 합격 후 다시 주변에 소식을 알렸다. 여러분들 앞으로 주말에 저 만나기 힘드실 거예요. 주 7일 돈 벌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들 적잖이 놀랐다. 난 대학시절에 정기적으로 알바를 해본 적은 없다. 부유하고 곱게 자라서는 아니고 그저 운이 좋아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서 성적 유지하면서 장학금을 계속 타는 게 알바해서 용돈 버는 거보다 훨씬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신 부모님 때문이다. 종종 대학시절 친구들 알바 땜빵정도, 엄마가 하신 가게에 주말이나 방학 때 가서 무급으로 소처럼 일한 정도다. 나에겐 그것 또한 아예 경험 없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런 경험이 지금의 상황에서 크게 일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들 내가 그런 일을 견딜 수 있겠냐고 한다. 허리 조심, 발목 조심. 쿠팡 알바 매일 가는 사람처럼 이야길 한다. 쿠팡 알바도 매일 있다면 갔을 것이다. 아마 매일 나가다 내가 소멸되겠지만 매일 나가시는 정규직 분들도 있지 않은가. 사람은 하기 나름이다. 다행이다. 내가 나를 굶기지 않아서.
그래서 오늘 공식적으로 내가 자유롭게 카페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주말날이 되겠다. 당분간 나는 소처럼 일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버틸지 솔직히 모르겠다. 곧 그만둘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 성격으로 보아.. 5월에 제대로 된 급여가 들어와도 새로 생긴 알바를 놓치는 않을 것 같다. 주말 하루라도 나가지 않을지. 아니면 새로운 주말 알바를 다시 찾아 건강할 때 돈을 더 벌고 경험을 더 하자라고 스스로를 꼬실지도 모르겠다. 이상 프로 엔잡러의 다사다난했던(나만 그렇게 느끼는) 한 주의 기록을 공유해 봅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