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렙 알바몬 1의 고군분투기
반백수 알바몬, 드디어 알바를 시작하다.
지난 글에 언급한 것처럼 당장 한 달 동안 강제로 본업을 쉬면서 알바를 시작했다. 면접을 보고 바로 고용이 되었고 목요일에 급한 연락이 왔다. 사장님은 혹시 가능하면 삼일절부터 금토일 3일 근무가 가능한 지 물어보셨고 의욕만 100인 레벨 0의 머글은 흔쾌히(?) 퀘스트를 수락했다. 아이템도 없고 스킬도 없는 녀석이 적당히 차 있는 HP만 믿고 거인을 깨려고 한 것이다. 구구절절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재미도 없으니 간단히 일의 강도에 대한 나의 신체의 상태를 이야기하자면,
1. 하루 사이에 손이 사포면처럼 되었다. 수도 없이 맨손으로 그릇을 치우고 손을 씻고 로션을 바르지 않으니 손이 불어 터지다 마르다를 반복하다 건조해져 버리더라.
2.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인어공주처럼 발자국마다 고통이 밀려오고 허리를 제대로 펼 수도 굽힐 수도 없게 됨.
3. 입맛이 싹 달아났다.
4. 설거지는커녕 빨랫감 하나도 못 개겠더라.
5. 첫날부터 파스 부착 시작.. 거인을 상대로 내가 가진 유일한 아이템은 파스 뿐이었다.ㅠㅠ
6. 실시간으로 바지가 헐렁해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왜 내가 3일을 한다고 했을까? 금요일부터 컨디션 난조였는데 일까지 시작해 긴장은 max요, 몸에 붙지 않은 일을 어리버리 힘으로만 하다 보니 몸은 더 고생하고 멘탈은 초단위로 탈곡이 되었다. 다행히 사수님이 좋으신 분이라 빠른 손으로 하나하나 잘 가르쳐 주셔서 큰 실수 없이 했지만 나름 고르고 고른 알바인데 망삘이었다. 12시부터 8시 30분까지 근무였는데 점심 피크 시간 3시간을 지난 후 나의 머릿속엔 온통 ‘아.. 계속은 못 하겠구나. 체력도 안 되고 일머리도 없는 거 같아. 그리고 이 정도의 스케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루 만에 그만둔다고 하지?’였다. 여보세요… 너님이 그만둔다고 하기 전에 잘릴지도 몰라요. 도저히 우리랑은 안 맞다고 죄송하다고 오늘까지만 하라고 할 수도 있다고. 그 정도로 나의 몸과 정신은 뚝딱이 로봇이었다. 뭘 할지 몰라 우왕좌왕. 동공지진을 이렇게 오래 한 적이 있었던가.. 테이블 하나를 치울 때마다 백 번의 후회가 밀려왔다. 그릇들은 너무 무겁고 손님들은 한꺼번에 밀물처럼 밀려오셨다. 그 물속에 방향 없이 속절없이 부유하며 떠가는 튜브 같은 나.. 민폐캐릭터구나라고 느낀 첫날의 자괴감이란!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의 하루. 차라리 페이가 적어도 좀 더 쉬운 일을 택할 걸 그랬나 싶고. 주제넘게 너무 센 일을 페이만 보고 덥석 문 나를 원망했다. 페이가 높다=일이 그만큼 빡세집니다. 몸에서 끼기긱소리가 나는 듯했다. 오즈의 마법사 양철 나무꾼으로 레벨업 되어 퇴근 완료..
둘째 날이 왔다.(오지 마…)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딛는 순간 또 인어공주가 되는 동화 같은 아침. 이 상태로 일을 나갈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과 달리 강려크한 J의 진행력으로 몸은 이미 준비를 하고 가게로 가고 있었다. 양철 나무꾼의 기술이 조금 늘고 등짝 고통은 더욱 배가 되었습니다. 레벨 1 업글 완료. 조금씩 잡무들을 배워나가고 사람들과도 조금씩 친해지고 일도 적당히는 따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퇴근 후 몸은 더욱 뻣뻣하고 아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왜…3일은 한다고 했을까. 그냥 처음이니까 우선 토일로 갈게요 할걸. 몽총아…. 돈에 눈이 멀어 네 미래를 보지 못했구나. 파스를 붙이고 취침에 들어갔다. 내일도 일을 해야 하니까!!! ㅠㅠ
셋째 날. 드디어 제일 일이 느린 사람에서 벗어나고 잡무의 80프로는 기억하고 스스로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일 중 마지막 날이라고 희망 회로를 돌리며 파스 투혼으로 마지막 날을 불태웠다.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다들 월요일을 위해 집에서 쉬시느라 그런지 일요일 저녁은 그래도 다른 날에 비해 한산했다. 그렇다고 할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쉬는 시간이 생기니 버티게 되더라. 여기서 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또! 하게 된다. 본업을 쉰다고 했지 그렇다고 업무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3월 중순에 시작하기 전 해야 할 일들은 있으니까. 미리 준비할 업무도 꽤 있었고 외부 미팅도 2개나 잡혀 있었다. 여기서 놀랍도록 멍청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유가 뭘까? 설마 나 이 글 좀 더 길게 쓰려고?? 도대체 왜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으나 평일 퀘스트를 받아들여 하루 추가 근무를 허락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머리가 나쁜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인가? 아직 일하다 졸도는 안 했다는 근자감인가? 내 속을 나조차도 알 길은 없지만 좋은 말로 일이 좀 익숙해졌다고 하자. 내게 일을 부탁하는 것도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일꾼은 아니란 말일 걸고 누군가의 휴무를 위해 나의 일정 없는 하루는 괜찮다는 인도주의적인 생각을 했고 또 평일 하루 그리고 주말 근무면 금토일 연달아 근무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3일 연속으로도 했는데. 이런 생각으로 그만 또 하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 이것도 도파민 중독인가. 내 몸을 갈아서 퀘스트를 깨는 묘미에 빠진, 고통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중독자가 되어 버린 걸까. 그런데 왜 니 몸을 갈아서 도파민 파티를 열죠…
정말 간만에 힘과 스피드를 부스트 해서 사용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또 이런 게 인간의 무한한 능력이구나 싶었다. 이걸 본업으로 하시는 분들도 많고 나보다 체력이 안 좋으신 분들 중에도 일을 하시는 경우가 많을 텐데 나라고 못 하겠는가 싶었고 아직도 몸 여기저기 쑤시지만 그만둘 생각은 아직까진 들지 않는다. 가게 선배님들이 지금 갖고 있는 허리나 등의 고통은 익숙해져서 사라지거나 덜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있을 거라고 경고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첫날의 고통과 셋째 날의 고통은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아마 셋째 날의 고통이 그분들이 말하는 지속적 고통의 실체 같다. 첫날처럼 강렬하고 극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후에도 꽤 큰 통증이 계속 느껴진다. 결국 월요일에 물리치료를 받았다. 물리치료가 이렇게 달콤하다니. 정말 달디달디 달달했다. 당분간은 이런 루트로 몸을 달래며 몸을 갈아낼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알바생들과 한 끼를 준비해 주시는 식당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이 경험 또한 값비싼 인생 스킬이 될 것이다. 일의 고귀함. 돈의 가치. 무엇보다 사람의 귀함. 그것을 배우러 내일도 나는 알바를 갈 것이다. 일할 때 쓸 장갑도 구매했다. 파스에 이어 두 번째 아이템을 획득하였다.
고통스럽게 일하고 달콤한 힐러로 치유하고 더 달콤한 입금내역을 바라보다.
이상 쪼렙 알바몬의 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