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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Sep 01. 2021

마지막 사주풀이

사주를 보았다.

엄마가 몇번 보신 뒤 전해받은 대략의 내 사주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 내 귀로 듣고자 찾아

간 것은 처음이었다.


신상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거나, 마음이 소란할때는 주변사람들의 위로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노력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콸콸 새어나간다.


대부분은 이또한 지나가리, 어쩔도리가 있겠나 하며, 내버려두는 편이지만 잠시 잠깐의 시간에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면, 인과 관계를 확인받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내 노력에 대한 보상, 내 잘못에 대한 벌 업보의 순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건, ‘사주에 그렇게 나와

있다’ 가 되려나?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읽혀지고 게중 극히 일부분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고통의 순간과 원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살이는 사주가 그렇다면야 체념할 수 있을것 같았다.


먼저 다녀온 지인의 소개를 받아 예약을 했다.


지인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추려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선택안을 받아본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당연히 그정도의 사주풀이를 받아볼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아니면 잘 보이는 사주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주가 있는건지 모르겠다만 내가 들은 말은 통속적이고 누구에게나 적용시켜도 나쁠게 없는 먼저 살아본 사람의 충고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생년월일 시를 물어본건, 이렇게 해야 사주를 봤다는 증빙이 되지 않겠냐의 흉내내기식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만큼, 돈과 시간이 아까웠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쌀쌀한 겨울이었다면 내년부터는 이른 초봄 정도의 온기를 가지고 필 수 있다로 시작하여 결론은 내년부터 조금씩 다 좋아진다였다.


재산은 버는만큼 새는 곳도 많기 때문에 직장생활로는 큰 돈을 만지기 어렵고 부동산,주식을 통해 새는돈을 채울만한 소득을 만들수 있다고 한다.


현재 하는 자신의 업무분야외 다른 일들이 들어온다면 힘들고 짜증날 수 있겠지만 배우고 익히면 2인자의 역할로는 인정받으며 살 수 있다고 한다.


연하 남자친구에 대해 물으니, 연상연하 커플의 일반적인 편견 (연상 여자가 잘 챙겨주다보니 속앓이를 많이 할거라는)에서 달라지지 않는, 조언이랄것도 없는 조언이었다.


어쩌면 나는 정말 연하 남자랑은 잘 지낼수 없고, 이것저것 일을 배우다보면 자기사업은 못하더


라도 직장안에서 필요한 인력 정도는 될 수 있으며, 부동산과 주식으로 재산을 증식할수도, 정말 내년부터 모든 소란이 잠잠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만한 풀이를 아무에게나 들어밀었을때, 위화감 없이 녹아들어가도 이상할것 없었다.


사주풀이는 맹신하지 말되, 자기 인생의 큰 기류를 참고하는 정도로 인지하지만 숙제를 풀다가 너무 어렵고 , 짜증이 나서 해답지가 슬쩍 생각이 났던거다ㆍ


한참 열심히 공부했었을적엔 도저히 풀지 못할것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동안, 뜻하지 않게 번뜩 답이 떠오른다거나 앞 뒤 문장을 찬찬히 읽다보니 반절의 점수는 건질만한 비슷한 답을 적기도 했다.


무채색의 개성없는 내 사주에 실망하고, 도사님의 역학공부 실력을 의심하고 분노하면서 다시는

사주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속이 개운했다.


특수하게 나쁜 상황도, 이겨내지못할 것 같은 시련도 없었다.


그 도사의 말을 조금도 신뢰할 수 없게 되면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내 사주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년부터는 조금씩 좋아질거야 라는 희망으로 살면되고, 부동산과 주식을 공부하고, 회사에서 내 업무가 아닌 일에도 호의적으로 받아보자는 노력을 할 것이다.


나중의 내가 힘들어질 것을 걱정하여 지금의 사랑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호두와 내가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인내하는 시간들이 우리를 더 성장시켜줄것이라 믿고 싶다.


나는 더이상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다.


그게 내가 정한 나의 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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