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상게임 2. 헬로 마이네임 이즈 도리스
최근에 본 영화 두편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1주일에 한번 무료영화가 오픈하는데, 쏠쏠히 볼 만한 영화들이 올라온다.
넷플릭스 정기 결제 전에는 시리즈온 오픈일에 맞춰 어떤영화가 올라왔는지 훑어보곤 했었는데 컨텐츠 대홍수 시대에선 결국 즐겨찾는 채널이 굳어진 습성을 벗어나기 어려워지고 있다.
아무튼, 상상게임이라는 일본영화를 보았다.
전업주부 아오이는 남편에게 무시받는 기분과 사건이 쌓이면서 남편에게 복수하기 사이트에 가입해, 남편을 괴롭히는 만행을 사람들과 주고 받으며 스트레스를 푼다.
유통기한 지난 카레 먹이기와 같은 그나마 소소한(?) 괴롭힘 부터 변기를 청소한 칫솔을 다시 제자리에 놓거나, 락스를 조금씩 음식에 타는 괴랄한 짓까지 저지르게 되고 사이트내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서 해방감을 느낀다.
아내의 행동에 의심을 품던 남편이 CCTV를 설치해 그동안 아내의 행적을 알게 되었고 당연하게도 이혼의 수순을 밟게 된다.
대체 나에게 왜그랬냐며 추궁하기 시작한 날에 아내는 그 길로 집을 나와, 팬티여신을 만나게 된다.
팬티여신 마키코는 대기업 중년 여성으로 주변 동료들과 원활히 교류하진 않지만 업무성과는 확실히 인정받아 회사내에서 탄탄대로를 이어가는 사람이다.
얼굴을 숨긴채 거리를 배회하다 자신의 팬티를 숨기고, 팬티 성애자 혹은 추종자들에게 찾아보라는 동영상 미션을 던지는 팬티여신 마키코는 아오이를 만나, 함께 일탈을 이어가자고 제안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익명의 가면을 쓰고, 한명은 남편 암살계획을 차근 차근 실행하는 전사가 되어 있었고, 한명은 음지의 성적 악취미를 가진 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여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아오이의 실제 삶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봐주지 않는 무심한 남편과 살갑지 않은 동네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건조한 나날이었고 마키코는 동료 여자 후배의 눈엔 여성의 매력을 어필할 줄 모르며 일본사회에서 여성이라 함은 디폴트 값으로 장착한 친절, 상냥함 따윈 없는 독불장군 같은 사람이었다.
이 둘의 기묘한 동거가 되는 마키코의 집은 가상과 현생의 삶 그 중간지대에서 한 숨 돌리며, 각자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회고점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질러온 일에 대한 수습, 현생에서 미약하게나마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연결점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찾는다.
남편에게 학벌도, 집안도 속이고 결혼한 삶에서 어떤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일탈의 시발점이 된 ' 무시 ' 가 아오이 캐릭터에겐 얄미운 사치처럼 보였다.
반면, 마키코가 잘 대해주진 못했지만 마키코의 직장 여성 후배는 그동안 신물났던 일본 여성에 대한 틀을 깨주는 캐릭터였다.
어쨌든 그녀는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공 욕심이 있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상사 마키코에 대한 불만은, 같은 여자였기 때문에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거라는 동질성을 깔고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감이 커졌던거라 생각한다.
팬티여신의 정체가 대기업 중년간부 여성이라는 신분이 들통났을 때 인터넷 속 남성들은 그녀를 조롱하고, 깔보고, 업신여긴다.
마키코는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마지막 팬티를 찾으러 와달라는 방송을 했고, 그 마지막 추락하는 자존심을 건져 올려준건 직장여성 후배였다.
마키코의 팬티는 신분을 숨긴채 감춰지고, 남성들의 손에 의해 발견되어질 때 쾌락을 발휘하는 여성의 본능, 욕구, 사회적 힘에 대한 매개체를 상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직장동료 여성이 그녀의 팬티를 찾으러 와서 다행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마키코는 팬티여신이 아닌 자신만의 팬티를 만들 수 있는 사업가로 새출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주일 뒤엔 넷플릭스로 돌아와, 헬로 마이네임 이즈 도리스를 보았다.
이 영화는 한 줄로도 충분히 줄거리가 요약된다.
60대 할머니가 젊은 남자 직장동료와의 사랑을 꿈꾸며 인생의 활력을 찾고, 꿈에서 깨어나는 이야기.
동생이 제 살길을 찾아 떠난 이후에도 도리스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머물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그녀에게 남은건, 어머니와 같이 있던 집과, 물건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그녀를 동생 부부는 답답하게 생각하고, 심리 상담을 권하지만 상담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생이 재밌어지기 시작한건 그녀의 직장으로 이직해온 젊은 남성을 보고 나서부터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과, 온갖 시나리오 회로를 돌리는 상상력의 소멸은 나이와 비례하여 깎여 나간다는 일반적인 생각은 도리스 할머니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의 전부가 알고 싶어지고, 공통점을 만들어가고 싶은 그저 사랑에 빠진 여자였을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일정 나이가 되면 생체 노화가 멈추고, 100살이 되던, 200살이 되던, 노화가 멈춘 30초반의 나이로 모두 보이게 된다면 성별, 신분, 나이 등 사랑에 빠지기 어려운 장애물 한가지 정도는 제거되지 않을까 ? 사람 하나만이 보이는 순결 무구한 사랑이 일반적인 세상을 꿈꾼다.
현실이었다면 나이많은 여자 직장동료가 젊은 남성에게 집적대는 호러가 되었겠지만 영화였기 때문에 도리스는 조금 엉뚱하고, 괴짜스럽지만 약간은 귀여운 할머니로 보여질 수 있었다.
어머니한테 매여 있었던 젊은날의 청춘, 꿈, 사랑이 모두 떠나간 뒤 그녀에게는 추억의 물건만이 남아 있었다.
저장강박증, 호더의 시작은 마음의 짐과 상처 틈바구니에서 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
나의 마음이 상대방과 같지 않다는 걸 받아들인 도리스는 그때부터 정리를 시작한다.
젊은 남자에게 정중하게 사과했고, 어머니의 짐을 정리하고, 도리스만의 인생을 살기로.
어쩐지 도리스는 그전보다 훨씬 더 산뜻하게 살 수 있을것 같았다.
언제든, 누구든 출발의 기로에 다시 서게 될 수도 있다.
길은, 인생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경로 우대도 없다.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 있고 또 어떤 관계나 사건들은 다시 시작해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