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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Jul 04. 2023

건강한 이별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을 보고


' 나는 나쁜 딸인가봐 '


엄마 아빠의 희생을 보며 마음의 부채감을 쌓고 자란 자녀들의 마음이 잘 투영된 애니메이션이었다.

자기욕구에 솔직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사고방식과 양육관에 어긋나는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날에는 내 자신이 그렇게 혐오스러워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유순하고 고분고분 말 잘듣는 딸이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애매하게 이기적이었고, 멍청하게 모질었다.


열에 네 다섯번은 엄마가 원하는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그런 날이면 찬바람이 부는 겨울 문 앞에 엄마를 세워둔것마냥 불편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엄마가 웃고, 좋아하는 것이 내가 잘해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었다.

엠버가 자꾸 화가 나고, 손님들과 트러블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은 자기 인생이지만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는 내면의 욕구 불만이 터져나오는 순간들처럼 보여졌다.


엠버의 가정환경을 알지 못한다면 그저 분노가 많은 소녀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크고 작은 화를 제때 내지 못해 바르게 화내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함이 쌓이고 쌓여 화산처럼 터져버리기 전에 단호하고 분명하게 불편하고 언짢은 마음을 내뱉는 상상을 한다.


상상속의 내모습은 누구도 상처주지 않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지만 엠버를 통해 들여다본 나는 누군가의 기대에 자라주지 못해 미안하고, 주눅이 들어있는 쭈구리였다.

그에 반해 웨이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확고하게 알고 있고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웨이드의 가족들은 가족의 구성원에게 자신의 욕망과 희망을 담지 않는다.

눈물이 많은 물 원자 웨이드의 가족들은 물 흐르듯이 유연하고, 시시때때로 눈물을 흘려도 나약하다 타박받지 않는다.


누가 더 오래 울음을 참을 수 있는지 게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슬픔에 헤프도록 관대한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면서도, 남자는 울면 안돼 라는 경직된 현대 사회의 터부를 깨뜨리는 장면 같아서 속이 후련했다.

자라온 환경, 정체성 마저 판이하게 다른 엠버와 웨이드지만 둘은 서로를 알아가고,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꿈을 격려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건강한 연애의 초석을 보는 느낌.

물,공기,불,의 원소들이 구성한 사회, 의인화 시킨 그 속성을 닮아있는 인물 표현들도 신비롭고 놀라웠지만 2시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애니메이션 한편에 나의 방어기제를 돌아보며 위로를 받았다.


그때에 풀지 못한 선택과 갈등을 후회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해주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그때에 맞서야 하는 문제들도 분명 있었던 것이다.


엠버는 웨이드를 만나, 자신을 용서하고 가족 구성원안에서 사랑으로 따로 또 같이 살 수 있는 홀로서기를 성공한다.


부모의 품안, 요람에서 스스로 돛을 올릴 배로 갈아타기까지의 여정이 따스하게 표현된 애니메이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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