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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Feb 09. 2023

이해의 관계 이해의 사랑

사랑의 이해를 보고 읽고

사랑의 이해 드라마를 보다가 계약직 여직원 수영에게 열병을 앓았다.

수영을 감싸고 있는 직장내 계급, 신분 차이의 뼈아픈 기억이 감정이입의 시작이었다.


지난했던 회사 생활의 팔할은 입사조건의 차등에서 오는 열등감, 패배감, 우울감이었고 그런 감정들이 회사안에서의 나의 얼굴을 만들어 주었다.


학력차이, 집안차이, 외모차이, 성별차이, 노오력의 차이는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더라도 출발점과 도착지가 달랐고, 열심히 일함과는 별개로 오를 수 있는 직급과 받을 수 있는 업무 영역이 달랐다.


어쩌다 사내 연애가 술자리의 화제거리로 오르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위선을 떨면서 정직원은 정직원끼리, 계약직은 계약직끼리의 사랑을 지향했고 그 경계심은 마른 안주를 질겅 질겅 씹듯 입안에서만 굴릴뿐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다.


내가 다닌 회사만의 특수성은 아니었다.

그 회사가 1층에서 4층으로 올라갈수록 고용조건이 달라지고, 연봉이 달라지는 물리적으로도 피라미드 구조를 갖추고 있긴 했지만 머리가 크고 세상을 보니 사회적 통념일 뿐, 나만의 비애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이 드라마가 애틋했다.

애틋해서, 이혁진 작가의 원작 소설 사랑의 이해도 궁금해졌다.


은행 안에서의 사내연애, 은행 안에서의 권력구조, 직장인의 비애가 현실감 있게 그려지면서도 현실속의 차별을 꽤 냉철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나라면,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지를 고를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처세를 발휘할 것이며, 어떤 위로와 진심을 전달 할 수 있을지 매회 짧은 단상을 묵직한 숙제를 받아든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는 영상으로, 소설은 글로 이야기를 서술하는 표현의 차이는 시와 수필처럼 느껴졌다.


음악과, 배우들의 감정이 담긴 시선을 느낄 수 있는 호흡이 느린 드라마는 사랑의 질감을 아련하게 흐트려 놓는 수채화였다.


이상하게 유연석의 눈썹 연기가 좋았다.

마음에 돌이 올라갈때, 그 무게가 눈썹 끝에도 같이 매달리는듯 날카롭게 상승하다가 떨어지는 눈썹, 미간, 눈은 예민하고 섬세했다.


차분하고 내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문가영의 대사톤, 목소리, 분위기는 이전 드라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매력과 기품을 느끼게 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대부분의 설정은 드라마속에도 그대로 유지되지만 상수와 수영의 성격과 관계의 깊이는 많이 달랐다.


평행세계 속 이쪽의 수영과, 저쪽의 수영 이쪽의 상수와 저쪽의 상수처럼.


당차고, 명랑한 소리도 곧 잘 건네는 수영, 어느 쪽이 더 편한 상대인가를 저울질하는 상수 여느 여자와 여느 남자와 다를 것 같지 않은 소설 속 수영과 상수가 더 현실적이지만

모두가 가볍게 말하고 흘려보내는 세상에서, 진중하고 조심스러운 드라마 속 수영과 상수는 현실이라는 지면 위 두뼘은 둥둥 떠 있는것 같아서, 그래서 쓰다듬어 보고픈 사람들이었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고 착각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점을 던져준 책, 드라마였다.

운명처럼 인연이 닿았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곳이던, 그렇지 않은 곳이던 만남을 지속하기까지 재고, 망설이고, 손익관계를 계산한다.


어떤 상대가 앞으로의 생을 윤택하게 해줄지 알고 있으면서 머리와 마음이 같이 따라주지 않아서, 알아채버린 시기가 애매해서 사랑사의 교통정리가 혼란해지기도 한다.


사랑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언제나 약자다.

내가 준 만큼,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마음도, 화폐도 똑같이 되돌아 온다면 좋겠지만 약자의 위치를 들켜버린 순간 두사람은 절대 대등해질 수 없다.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조건과 환경들도 결국 그 사람이 된다.

그러니, 의심없이 명명백백하게 ' 사랑한다 ' 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기적적인가를 또 한번 좌절하고 염치 없이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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