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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Sep 29. 2020

[책]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유드 세메리아 지음)


가족을 떠올리면 나의 치부와 문제점들이 함께 따라 올라온다.
깊은 수면 아래에서 건져 올려지는 그물망 안에 때로는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아 그물망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일때도 있지만, 때로는 한줌의 말도 보태기 어려워 텅 빈 어망일 때도 있다.

생의 절반 이상을 숨을 섞으며 붙어 지내는 존재들끼리 어찌 문제가 없겠냐만은, 나는 가족이라는 화제가 올려질때면 예민해지고 숨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그들은 나를 보듬어주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맞지만 때로는 내 영혼을 가장 쉽게 파괴시키는 잔인함도 서슴치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 울타리 안에 엄마만을 두게 되었을 때 한편으론 홀가분 했고, 안정감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양분되어야 할 교류의 잔재들이 엄마만을 향하면서 억눌린 느낌이 들때도 있었다.

책에선 이런 문제들을 의존적 갈등, 괴롭힘, 서로를 부모화(부모처럼 행동하도록 강요된 역할 역전) 시키는 피해 사례 등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책 속의 내담자들의 사연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 답답해졌다.
내 삶이 전부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과거,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채 끝난 헤어짐들 속엔 그저 나쁜 사람들을 만났었고,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문제점들이 분명하게 있었던 것이다.

다행인건, 나를 지우고 상대방의 시간안에서만 살아있던 모습은 이젠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몰입이 불가능해졌다.

내가 우선인 삶을 소중히 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는 충분히 고갈된다.

불온한 정서 결핍을 확정된 심리학으로 풀어주는 연구 사례는 꽤 후련했다.

그 속에서 객관화된 내 모습을 담담히 찾아낼 수 있었고 몰이해 영역인 사람들이 조금씩 설명되기 시작했다.

나는 확실한 회피성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자기 파괴적인 성향도 컸다.

그리고 나보다는 주 조력자로서 고통받고 있을 엄마가 이 책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고 고결한 인격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1%도 무해하지 않을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서로가 아픔이었던 지옥불에서 발 한짝씩만 빼보자는 마음이라도 함께 가진다면, 노력해본다면 희망은 있다.

솔솔치 않게 나오는 여담으론,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정작 자신의 문제를 모르고, 피해를 본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가까운 가족에게, 연인에게, 친구들에게, 직장 동료에게 어떤 괴롭힘을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성하는 계기를 가지기를, 그 누군가는 그토록 바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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