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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Aug 10. 2023

다시 배우는 수영 그리고 영화 밀수 이야기

필라테스를 끝내고 일주일에 두번씩 수영을 배우고 있다.


남들은 다들 좋다 좋다를 하는 필라테스였지만 거북목, 목디스크가 있는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 운동이라는 결론이 얻었다.


목과 어깨에 힘을 빼면서 어떻게 복근과 흉곽을 조이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존재 여부가 의문인 나의 복근은 어깨 근육과 한 심줄로 이어진것처럼 같이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목과 어깨가 더 아프고, 아프다보니 하기 싫고 고통의 중첩은 필라테스 운동에 흥미가 떨어짐은 물론, 다시는 쳐다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질려버렸다.


도대체 잘할 수 있는 운동이란게 있긴 한걸까.


능숙까진 아니어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날은 푹푹찌겠다, 시원한 물로 도망치면 흥미를 붙일수 있을까 싶어 15년전에 배우다 그만둔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자유형,배영 발차기까지 했던거 같은데 기초반과 초급반 중 어떤 반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무색할 만큼 처음 수영을 시작한 다른 회원들과 다르지 않다는 현실을 마주했다. 


엄마는 중급반으로 등록했다. 


자유형, 접형, 평형, 배영을 전부 마스터한 엄마는 강습이 없는 날에도 자유수영을 하러 갈 수 있었다.


물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수영장의 깊은 물 레인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몸으로 배운건 잊혀지지 않는다는것도 찔끔 배우다 만 나같은 초심자들에겐 해당없는 얘기였다.


엄마도 꽤 늦은 나이에 수영을 배웠던것 같아 문득 배운 시기가 궁금해졌다.


내가 고등학생 때,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쉴 때가 있었다. 


그때 여성회관을 다니면서 배우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과는 다르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쯤, 동남아로 여행을 갔다가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도 못하고 뻘쭘하게 있는게 싫어 수영을 배우고자 다짐했다고 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밥을 안치고 30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에 가고 다시 부랴부랴 돌아와 자식들 밥먹이고, 출근을 하고 공장일을 한 뒤 퇴근후 살림을 이어나갔다.


새벽 수영도 놀라운데, 건사할 밥식구들과 엄마의 사회생활까지 챙겼다니...


누군가의 고생기를 들으면,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로 내 능력치를 점검해보게 된다.


돈을 준다고 해도 나는 절대 못할 일이다. 엄두가 안난다.


대단하고 부지런한 여성이었다.


엄마는 라떼시대를 회자시켜도 넘어가 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가 내 나이때 해내던 것의 반의 반의 반도 나는 하지 못하고, 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 타인도 아니고, 엄마의 라떼 푸념 정도는 받아주고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제 다시 걸음을 배우고 있는 수영 초심자가 되어 영화 밀수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해녀들의 그라운드에선, 총 칼을 든 폭력배들 따위는 우습게 제압한다.


남성배역의 주 무대였던 한국 영화에서, 여성 투톱 주연으로 극 전체를 이끌어 나가고 있고, 살인적인 폭염에 스크린으로 청량감을 더하면서 계절감 충만한 재미있는 영화는 기념비적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밀수 안에서도 힘과 액션의 오락 담당은 남자 배우라는 성역활의 고정성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사건을 끌어가는 큰 축은 염정아, 김혜수 배우임은 명백하고 두여성의 협력과 합동작전으로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과정은 지루할 새 없이 흘러갔다.


연기구멍이 하나 없는 영화였다.

박정민 배우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독하게 얄미운 느낌을 제대로 전달해주고, 

살벌하게 뺸질대는 권상사 조인성은 70-80년 한국식 고전영화에 참 잘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성 리더의 대비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염정아가 우직하게 자기 식구를 챙기면서, 책임감을 도맡는 리더라면, 

김혜수는 적재적소에 인력 활용을 잘하는 생활형 리더라고 볼 수 있다.

고민시의 감초 역할도 매력적이었다.


언니들한테 싹싹하게 잘하면서 제 몫 확실하게 챙기는 똑쟁이 동생들이 있다. 


여성들의 이야기로 꽉 채운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느낌이다.


엄마도 자기만의 삶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래걸렸고.


자신의 몸 외에 가족들, 친구들, 그 외 애정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끌어와 함께 돌보는 여성들을 보면 대견하고 뭉클하다.


그 여성들을 더 많이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는 사회로 점차 바뀌게 되길 희망한다.


나도 내 자리에서 꾸준한 관심과 지지를 보내며,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1명으로 함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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