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병실로 오고자 마음먹었다.
아내가 수술방 들어갈 때는 함께 있어줘야 하니까.
마음이 급하다. 출근시간 강남 쪽으로 들어가는 도로 상황이 엉망진창이란 사실을 망각했다. 분주히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도 강남을 우습게 본 죗값이 톡톡하다.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즈음, 시곗바늘이 8시에 닿을락 말락 했을 즈음, 겨우 병실에 들어섰다.
없다.
침대엔 반듯하게 접힌 담요 한채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망한 마음으로 간호사 데스크로 가서 아내의 행방을 물었다. 수술시간이 앞당겨져 7시 전에 이미 수술방에 들어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응원 한마디, 격려 한마디 듣지 못한 채, 홀로 외로이 수술방으로 가는 아내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아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을까? 일찍 오겠노라 큰소리쳐놓고 나타나지 않은 남편이 야속하진 않았을까?
공허한 병실로 돌아와 아내의 흔적을 더듬었다.
내가 서두르지 않았으면 하는 아내의 배려였을까? 수술 들어간다는 문자 한 통 남기지 않은 아내의 휴대폰이 잘 개어진 담요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중앙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
스크린 제일 윗 칸에 [이 OO님 수술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다. 이미 수술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다며 수술 경과 시간까지 알려준다. 초조함을 머금은 내 눈동자는 스크린에 떠 있는 수술 경과 시간만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다.
보호자 대기실엔 나 외에 여러 명의 보호자들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초조함을 달래는 아들, 여기저기 전화하며 다른 가족들에게 수술 상황을 공유해주고 있는 딸, 대기실 의자 세 칸에 노구를 뉘이고 꼼짝도 않는 할머니... 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걱정을 몸짓하고 있었다. 다들 어떤 사연들과 어떤 마음들로 저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보호자 대기실을 함께 지켰던 동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새로 온 동료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기를 여러 번. 수술 경과 7시간이 지나고 있다. 치프 선생이 말했던 아무리 오래 걸려도 넘지 않을 거라 말했던 7시간.
그 7시간을 지나고 있다.
일반실(2인실) 자리가 났으니 병실 이동하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중간에 잠시 자리를 뜬 것 외엔 계속 대기실 자리를 지켰다.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았건만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비치된 정수기에서 마른입만 한 번씩 적셨다. 7시간까지는 예상 안에 있던 시간이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스크린에 7시간을 경과했다는 메시지를 본 후부터는 1분 1초가 1년처럼 느껴졌다. 이때부터 입술이 마르고 가슴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술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뭐가 잘못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새 나는 스스로 불안을 만들어 내었고, 이 불안은 몸집을 키우면서 나를 점점 덮쳐 오기 시작했다.
햇살이 따스했던 춘삼월의 그날 그 시간. 한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이길 바랐다.
9시간 경과. [이 OO님 수술 중]
스크린에 떠 있는 [수술 중]이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는다.
이제는 심장이 한층 한층 덜컥 덜컥 계단식으로 내려앉고 있다.
장모님이 전화를 주셨다. 계속 기다리다 연락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연락을 하셨으리라. 아직도 수술 중이라는 내 대답에 떨리는 목소리로 나보고 괜찮을 거라 하신다. 주님이 도와주실 거라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하신다. 통화 끝머리에 사위가 함께 기도 해주면 좋겠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부탁하신다. 사위가 기도하면 주님이 반응해 주실 거라 하셨다.
내 처가는 장인, 장모님 뿐만 아니라 처남마저도 목사인 믿음이 아주 깊은 집이다. 아내와 처제 역시 종교인은 아니지만 장인, 장모, 처남에 비해 모자라지 않는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천이다. 이런 집안에 무신론자인(당시엔 기독교에 반감마저 있던) 나와 결혼을 하겠다는 아내의 선포는 상당한 충격을 던져 놓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우리의 결혼은 어찌어찌 성사되었다. 결혼 후 장인, 장모님은 나에게 믿음이 돋아나길 기다리겠다 하셨다. 그리고 10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나에게 믿음을 강요하시지는 않으셨다.
처갓집 식구들이 모이는 자리엔 늘 기도와 예배가 함께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자발적 이방인이었다. 찬양과 기도를 드릴 때 멀뚱이 귀만 열고 앉아 있는 큰 사위가 마음에 차지 않으셨을 텐데도 닫혀있는 내 입을 책망하지도, 채근하지도 않으셨다. 되려, 나를 더 특별하고 귀하게 대해주고 있음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10년의 시간 동안 기독교에 대한 내 반감은 많이 누그러졌다. 더 솔직하자면 호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있어 하나님이라는 절대자란 존재와 그에 대한 믿음은 실체가 없는 생경한 관념으로 남아 있었다.
처음으로 나에게 기도를 부탁한 장모님 마지막 말이 지나쳐지지 않았다. 그것을 제켜놓더라도 지금 내 입술은 말라비틀어지고 있고, 마음은 축이 무너진 채 기우뚱 대고 있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위기상황이라고.
춘삼월에 느낀 한기가 심히 마음을 찔렀다. 뭐라도 시도해야 봐야 했다. 바싹 타들어가는 내 마음에 누구라도 한 바가지 물을 부어주길 갈망했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방법이 없었다. 그간 그토록 부인해 왔던, 보이지 않는 그분께 내 음성을 전하기라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주실지 안 들어주실지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쨌건 문을 두드려 봐야 했고, 목 높여 불러봐야 했다. 물에 빠진 자가 자동으로 외치는 "사람 살려"의 절박함 같은 것이 가슴에 스몄다.
처음으로 두 손을 모았다. 두 눈도 감았다. 그리고 생전 처음 해보는 마음의 고백을 시작했다.
하나님, 전 당신이 정녕 존재하시는지 아닌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당신이 있다고 믿어보려 합니다. 아니 믿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주세요. 제 아내 이 OO은 평생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제가 봐온 그녀는 여태껏 어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되었다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늘 법과 도덕을 지키며, 사랑과 온정으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착하게 살아온 그녀는 육종암이라는 병명을 진단받는 순간에도 담담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며 숨죽여 받아냈습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 당신의 존재를 더욱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신이 있다면, 절대자라 불리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어찌 이런 착한 사람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악하고 부정하며 탐욕스러운 인간들을 제쳐두고 어찌 이 착한 사람에게 이런 병을, 이런 벌을 내리시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제 앎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제 믿음이 모자란 탓이겠지요. 제가 모르는 어떤 뜻이 있으신 거겠지요. 저는 지금 이 순간 두 손 모아 받아들이겠습니다. 저의 무지를요, 저의 우둔함을요. 그리고 이 시련에 분명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다고 믿겠습니다. 의심치 않겠습니다. 그러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지금 저 수술방에 가셔서 은혜를 내려주십시오. 약해져 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내의 육체를 어루만져 주십시오. 지쳐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의사선생들의 손길에 힘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제발 꼭 그렇게 해주십시오. 우리 아이들이 다시 엄마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요... 저는 평생 한번도 기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제가 내 마음 급하다고, 내 마음 불안하다고 갑작스레 하나님을 찾고 이렇게 칭얼거리는 것에 기도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시련의 터널을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게 제대로 된 기도였는지 아닌지 나는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때 손가락 끝, 발가락 끝까지 찌릿할 정도로 온몸 가득했던 간절함은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기도를 마치고 본 스크린은 수술 경과 10시간이 넘어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