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하다 Oct 17. 2024

9. 계획대로 했습니다만?


기도를 마치고 본 스크린은 수술 경과 10시간이 넘어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숨 막히는 20분이 더 지났고, 마침내 스크린 글자가 꿈틀거렸다. 

[이 OO님 수술 중 ] -> [이 OO님 회복실 이동]


참 반가운 글자의 움직임이었다. 불안하게 들이켰던 들숨이 이제야 안도가 되어 내쉬어졌다. 정말 그분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신 건지 알 수 없지만 감사한 마음이 내 안에 가득 들어차는 게 느껴졌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속으로 인사를 전했다. 


보호자는 회복실 앞으로 가서 대기하라는 안내가 스크린에 나왔다. 회복실 앞으로 바삐 이동했다. 회복실 앞에서도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로 얼마간 기다리자 수술방에서 수술복을 입은 간호사가 나와서 나를 찾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나에게 와서 수술 끝나고 회복실에서 이제 막 의식을 차렸다고 했다. 곧 환자를 볼 수 있을 거라 하는 순간, 다른 간호사들이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끌고 나왔다. 온몸이 수술용 시트로 두텁게 감싸져 있었다. 하얗다 못해 시퍼레진 얼굴만 빼곡하게 공기와 맞닿아 있었다. 아내는 눈을 감고 달달달 떨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내가 워낙 지방이 없는 몸인 데다 수술방에 오래 있다 보니 많이 추워해 덮어 준 것이니 놀라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회복실에서 상태를 좀 더 지켜보다가 병실로 올릴 테니 보호자는 병실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말하곤 아내 침대를 다시 어디로 끌고 가버렸다.


드라마에서 보던, 의사가 나와서 '수술은 아주 잘됐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런 걸 기대했는데, 그런 장면은 없었다. 내 현실에서 그 장면은 편집당했다.


병실로 돌아온 나는 또다시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다만, 퍼렇게 질려서 달달 떨고 있는 모습의 아내였지만 잠시라도 본 것에 어느 정도 불안감은 지울 수 있었다. 추위를 느낄 정도로 의식이 돌아온 것이니까 다행이라면 참 다행이었다.






하얀 옷을 입은 이송원이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차를 끌고 병실로 왔다. 큰 병원이라서 그런지 환자들의 침대차와 휠체어를 이동시켜 주는 전문 이송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내는 몸에 각양각색의 링거병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고, 소변줄과 피주머니도 차고 있었다. 사람 몸에 저렇게 많은 호스들이 연결되어 있는 장면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안타깝다, 애처롭다는 느낌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몸에 저런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면? 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생각들이 내 감각 안으로 침투되었던 것 같다. 내 몸이 아니지만 내 몸에 호스들이 연결된 듯 못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의식은 있었지만 여전히 몽롱한 눈빛이었다. 괜찮아 보이지 않은 아내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잡으며 "잘 해냈어, 고생했어."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 말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환자에게 보호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생했다. 수술 잘 받아줘서 고맙다.'라고 하는 장면을 볼 때 나는 사실 공감하기 어려웠다. 


환자는 마취상태로 누워만 있었는데 저 말이 어울리는 말인가? 하며 갸웃거린 적이 있다. 고생했다는 인사는 의사에게 하고, 환자에게는 다른 격려의 말들을 찾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 의문은 더 이상 의문이 아니었다. 무의식이어도 그 긴 시간 동안 생명의 끝자락을, 고비의 순간순간을 부여잡은 환자는 오랜 시간 수술방 안에서 홀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는 것을 마음 졸여 기다리며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생했다는 말은 환자에게 매우 적합한 인사였다. 





시간이 지나고 아내의 동공이 점차 또렷함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병실 옮겨주셨네?"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아내가 첫마디를 뱉어냈다.


2인실이라고는 하나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특실에서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공간으로 바뀌니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나는 아내가 병실로 돌아오기 전에 작은 사물함에 필요 물품들을 정리해 뒀었다. 정리라고 해봐야 거의 내 물건들이었다.


세면도구와 여벌의 옷 따위들. 아내에게 필요한 것이라곤 티슈, 빨대 일체형의 뚜껑 있는 물컵이 다였던 것 같다. 단출한 병실 살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확보된 공간은 빠듯했다.


하지만 불평을 투덜댈 상황은 아니었다. 환자 침대와 보호자 침대(접이식 간이 소파) 사이의 거리는 내 무릎이 들고 날 정도의 공간만 허락할 정도로 가까웠기에 그 짧은 거리만큼 아내를 더 밀접 간병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불편함을 밀어냈다. 




아내가 병실로 올라오고 아주 짧은 텀으로 간호사가 두어 번 와서 무언가를 체크했다. 체온을 재고, 소변량도 체크하고 동공을 확인하며 한 두 마디 질문도 던지고 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간호사는 나에게 딱히 어떤 설명이나 부탁을 하지 않았고, 나 또한 어떤 것도 묻지 않았기에 기억에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보호자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게 다였다. 담당 교수님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일이라면 하나의 일이었을 수도.


간호사가 다녀가고 이내  교수와 주치의 군단이 회진을 왔다. 이제야 아내의 수술 결과와 향후 계획을 들을 수 있겠다 싶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교수님 수술은 어떻게 되었나요?" 궁금하던 질문을 끄집어냈다.


"계획한 대로 수술했습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수술이 잘 되었다. 중간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으나 잘 극복했다. 지금은 괜찮은 상태다.' 뭐 이런 답을 기대했건만 짧고 무성의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따져 물을 위치는 아니라 다시 한번 물었다.


"수술은 잘 된 건가요?"


"저희는 종양이 있던 수술 부위 계획대로 절제하고 나왔습니다. 이후 성형에서 마무리를 했는데 그건 그쪽 선생님이 오셔서 설명해 주실 거예요." 


회사 같았다. 우리 팀 일 끝내고 타 부서로 이관했으니 나머지는 타 부서 가서 물어보아라 라는.. 사무적이고 단호한, 더 이상 쏟아질 질문의 꼬리를 잘라버리는 민원처리 방식이 마치 회사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병원의 장점 속에 가려진 단점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기에 교수가 가버리기 전에 참아왔던 질문을 뱉어냈다.


"교수님, 수술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것 같은데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요?"


"저희는 계획한 시간 안에 수술하고 나왔고, 뒤에 성형외과에서 근육이랑 신경 피부 이식하면서 시간이 좀 더 걸린 것 같은데 나중에 설명해 주실 거예요. 오기 전에 제가 본 바로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이더라고요." 교수가 답했다.


저 답변을 듣고서야 되었다 싶었다. 큰 문제없어 보인다는 말. 저 한마디면 된 거라며 내 마음을 달랬다. 교수도 타 과의 영역에 대해 답을 주기가 조심스러웠을 텐데 저 정도로 답 한 거라면 잘된 거라 생각해도 될 성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나름 안도를 하던 찰나, 교수가 아내에게 말을 붙인다. "이 00님 고생했어요. 수술 잘 받으셨어요. 몸이 약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 버텨주셨어요." 제법 따뜻하고 다정한 말투다. 마음에 안도가 내려앉으니 그제야 교수의 인간미가 보였다. 대답이 무성의하네, 회사 같네, 큰 병원의 단점이네, 라며 품었던 부정적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8. 내 생애 최초의 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