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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정 Jul 10. 2024

이과가 바라보는 문과

입시의 최전선에서 보이는 문과 차별

이과 vs 문과

최근 들어 이공계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비단 의약계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학생들이 철학과, 국문학과, 경제학과를 버리고선 *전화기를 필두로 한 이공계열로 진학하려는 모양새다. 나 역시 최근까지 입시의 최전선에 있었기에 이런 움직임을 누구보다도 크게 체감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인문학을 버리고 이공계열로 쏠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취업 때문이리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 계열이야 그나마 낫다지만, 어문이나 인문학 계열은 정말 취업이 곤란한 상황이다. 학벌이 좋은 사람이라면 로스쿨이나 교수직을 생각할 수 있으나, 뒤늦게 진로를 찾아 나선 학생은 그것조차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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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문과였던 나


잠깐 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내 어릴 적 처음 꾸었던 꿈은 역사학자였다. 부모님과의 내기를 통해 읽었던 한국사 만화책은 당시 유행하던 '메이플스토리'나 '마법천자문'같은 만화책만큼이나 재밌었다. 어찌나 역사를 좋아했던지, 만화로 된 세계사 책들까지 닥치는 대로 찾아 읽고선 엄마 아빠에게 내가 만든 역사 시험을 출제하기도 했다(지금 보면 끔찍하게 어려운 시험이다. 일반인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들어봤을 리가 있나?).


물론 진로야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나는 뼛속까지 문과였다. 갑자기 헌법에 관심이 생겨서는 헌법재판관이 꿈이 되었고, 이어 소수자의 인권을 지키는 인권변호사가 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내가 이공계열로 진로를 정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회과학에 틀어박혔던 나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이공계 진로를 강하게 희망하게 된다. 우리 삼촌은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이었다. 추석에 삼촌이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거기다가 삼촌이 신기한 것을 보여준다며, 내가 설정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간단한 해킹을 통해 알아맞히기도 하였다.


나는 어린 마음에 삼촌을 동경했다. 곧이어 컴퓨터에 푹 빠져들었다. 컴퓨터에 관심이 생긴 나는 C언어 학원을 보내달라고 엄마에게 졸랐고,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인공지능과 데이터 처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문과적 성향을 가진 나에게도 재밌는 공부였다.


결국 고등학교 3년 내내 이과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물화생지와 미적기하의 난이도는 어마어마했지만, 열심히 공부한 끝에 결국 대학에 합격했다. 지금은 컴퓨터공학, 특히 인공지능을 전공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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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가 바라보는 문과


중학생 이후의 나는 이과다. 우리 고등학교는 2학년부터 '과중반(과학중점반)'이라고 해서, 이공계열 학생들 중 의지를 가진 학생들을 따로 모아두는 반이 있었다(40~50명 정도). 나도 과중반에 들어갔고, 이과 친구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문과 친구들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동경했다. 인문학과 사회학은 너무나도 가치있고 재밌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전공하고자 하는 문과 학생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중반 학생들은 그건 아니었나 보다. 문과 학생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빗발쳤다. 물론 우리 학교 성적 TOP 10 학생 거의 대부분이 이과 학생들이었고, 사회탐구 과목이 과학탐구 과목에 비해 비교적 공부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과 학생들을 비판할 근거로 사용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래 뭐...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니, 자기 진로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고까진 천만 번 양보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과 학생들을 비판할 뿐이 아니다. 인문학과 사회학이라는 학문까지도 낮잡아보는 학생들이 많았다. "문과는 이과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식의 비판도 있었다. 한때 인문학과 사회학을 정말 좋아했던 나로서는 이런 인식이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이과 공부가 어려워 문과로 회피한다" 식으로 비판하는 것이 굉장히 거슬렸다. 그런 이유로 문과를 선택한 사람도 물론 있겠으나, 많은 경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주변 지인을 통해 느낀다. 일본 명문대의 사회학 계열에 진학한 사촌 형이라든가, 어문학 계열에 진학한 친구라든가. 정말로 그 분야에 대한 흥미가 가득해서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 이과 학생들이 모든 문과에게 '이과 공부가 어려워 회피' 따위의 꼬리표를 붙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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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필요해!


문과가 천대시되는 지금의 세태를 두고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점차 인문학은 메마를 것이고 우리 국어를, 우리 역사를, 우리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민족을 지탱하는 뿌리와 같은 인문학과 사회학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문과를 선택한 학생들이 '전 우리 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와 같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오늘날의 문과를 차별하는 분위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물론, 단순히 회피를 목적으로 문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같은 이유로 이과를 선택하는 학생들보다 훨씬 많다.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과 선택자들을 싸잡아 힐난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인문학과 사회학을 즐기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이과 중심의 세상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감히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잘못된 짓이다. 반드시 명심하자.





*전화기: 전기, 화학, 기계. 이공계 취업깡패 3대장이다. 요즘은 컴퓨터가 추가되어 전화기컴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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