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티나 Jan 28. 2024

01 가슴속 소리를 들으면, 답이 보여

루이 루이 센루이

- Litsen to the wind, it talks (바람의 소릴 들어봐, 네게 얘길 할 거야)

   Listen to the silence, it speaks (고요의 소릴 들어봐, 네게 말을 할 거야)

    listen to your hearts, it knows. - (네 마음의 소릴 들어봐, 그러면 알 수 있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미국 원주민들의 가르침이 담긴 속담이다. 지난해 몇 개월 동안 이 속담을 수없이 읽고, 또 읽고 그리고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그래! 내가 찾던 답은 결국 내 맘속에 있었던 거다. 


  작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동안 내가 근무하던 회사에서 시행한 "Furlough' (회사 직원 신분은 유지하나 일은 할 수 없음, 주로 회사 운영이 어려워져 비용을 줄이려고 시행) 프로그램에 놓여있었다. 일이 잘 풀릴 경우 회사로 다시 복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부분 회사로 복귀하는 경우이므로 처음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느긋했었다. 여름엔 화단을 조금 더 넓혀 나무와 한해살이 꽃을 더 심었고, 그다음 달엔 백 년이 넘은 소나무와 폭우에 반쪽이 돼버린 매화나무를 완전히 베어버렸다. 구월엔 2층 썬룸을 새로 칠하고 단장하여 내 홈 오피스로 만들었다. 그때까진 별 생각이 없이 밈이 편했고 참 즐거웠다. 하지만 시월이 가고 , 11월이 되면서 회사에서 복귀하라는 소식이 들리지 않자 나는 맘이 조급해졌다. 결국 예정된 6개월이 지나버렸다. 프로그램도 끝나고 이젠 더 이상 회사로 돌아갈 수도 없이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Furlough 프로그램은 시행하는 회사에서는 좋은 의미의 퇴직이라고 하지만 (회사의 이미지만을 생각한), 당장 일자리를 잃어버린 직원의 입장에서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냥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처음엔 회사에 기여한 정도가 차고도 넘치는데, 나를 비롯한 우린 어떤 이유로 왜 회사를 나와야 하는지, 이유조차도 설명해주지 않은 비인간적인 리더들의 행동에 정말 화가 많이 났다. 얼마동안 분함과 슬픔에 화만 내다가, 나는 그 답을 사람보다는 자연에서 찾고 싶었다. 인디언 원주민의 오랜 속담처럼, 처음에는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고,  다음엔 고요의 소리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가슴의 소리를 들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처음 시작은 무작정 생각 없이 침묵하면서 걷기였다. 어떤 날은 1마일, 어떤 날은 2마일, 그리고 더 나아가 6마일을 걸었다. 포레스트 파크, 캐슬우드 파크. 클락슨 벨리 파크... 파크 그리고 파크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어느 날 정말 나에게 얘기하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다. 내 귀가 열리면서 바람의 소리를 분명 들었다. 뭔가 길면서도 짧은 울림이었다. 한국식 발음으로 "윙 윙"이 아닌 내 귀엔 " 휴우, 휴우 ----" 이런 소리로 들렸다. 그때의 내 상황을 안다고 동조해 주는 한숨 같은 소리였다. 중요한 건 내가 바람의 소리를 들었고, 바람은 " 휴우, 휴우하고 얘길 했다. 그리고 또 걷던 어느 날 고요의 소리도 들었다. 고요의 소리는, 그냥 가슴이 막 뛰면서 맘이 뭉클해졌다. 하! 자연 속에서 전해오는 이 적막이 바로 고요의 소리였구나. 그리고 뒤이어 오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는 그 고요와 내가 대화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 이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야 그래서 내일부터 다른 회사에 지원서를 내려고 해. 그리고 그전 회사에 대해선 더 이상 말 안 할게 "...


내 가슴의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에서 나오는 답에 귀를 기울였고 그 답을 실행에 옮겼다.  

  그 후 다른 회사 몇 군데를 지원했고, 오늘이 새로운 회사에서 일한 지 이틀째다. 언제나 그랬다. 나쁜 일에 직면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대충 "감"이 오지만,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준비가 필요했다. 그 준비 단계에서 가장 적합한 쓰임이 바로 " 자연 속에 잠시 있어보기" 었다. 내가 찾은 모든 답은 항상 자연 속에 있었다.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 있을 때도 산에 자주 올랐다. 지리산, 지리산은 정말 많이 갔던 산으로 그 이름만으로도 그립고 가고 싶다. 한 번은 산행 중 잠시 길을 잃어 밤새 내내 지리산을 탔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 떠올려도 지리산 자락의 끝이 어딘지 난 모르겠다. 그리고 지리산의 소리는 더 굵었고, 강하고 적막했다.


또 기억하는 산행 중 한 곳은 강원도 태백산이다. 동료들과 함께 9시간을 차를 타고 새벽 4시에 도착한 강원도, 급하게 라면에 커피를 마시고 오른 태백산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다. 그때도 내가 무언가 고민하고 있었고 , 답을 구하고 있었다면 분명히 바람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적막함과 직면했을 것이고, 가슴속에서 답을 얻었을 것이다. 


언제고 다시 어려운 상황에 마주치면 난 바람의 소리를 , 적막함의 얘기를 들으며, 내 가슴속 소리에서 답을 찾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자연 속에서 한없이 걷고 싶은 이유이고, 그렇게 걸어도 지지치 않은 이유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 중에도 내가 무작정 걸으면서 두려움 없이 바람과 고요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아무 말없이 항상 함께 걸어준 내 가족, 남편과 벨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내 가족이 함께였기에 최상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다시 온 새로운 시작이 무척 설레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