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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09. 2024

얼굴 위에서


나는 거기서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사라진 발들이 어디로 향한 걸까. 자리에 가만 멈춰 생각해 본다. 그건 뒤를 돌아 손걸레의 물기를 짜고 다시 뒤를 돌았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제비 뽑기로 정해진 청소 구역에서 우리 조가 맡은 건 체육 창고였다. 아이들은 각자 창고에서 할 역할을 정하기에 바빴다. 나는 어떤 역할이건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남은 역할을 하기로 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동생들보다도 가장 나중에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뜯어보거나 하는 식. 모두가 더러운 곳을 피해 사라진 걸까. 나는 어째서 이 공간에 홀로 남겨져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좀 전까지 시끄럽던 공간이 어느 순간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나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 사람들이 존재할 거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뚝뚝 물기가 떨어지는 공간 앞에 서서 다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에 대하여. 모두 대체 왜 사라져 버린 건지. 혼자 남겨진 자는 물어볼 사람이 없다.

작게 트인 창 너머로 쨍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뭐라도 선명하게 보일까라는 생각에 햇빛이 가장 잘 비치는 곳에 섰다. 그래도 창 너머가 보이지는 않았다. 스트레칭 용 매트를 몇 겹 쌓아 올렸고 그 위에 올라서서야, 바깥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중으로 덮인 창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묵음이었다. 다들 저너머에 존재하는구나. 아이들의 목소리는 유리에 부딪힐 때마다 잘게 바스러지고 있었다.

구석에 놓인 소화전을 들어다가 유리창에 던졌다. 유리를 깨면 텁텁한 공기 속에서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간의 생각에서 비롯된 거다. 유리 파편은 체육복 바지에 조금 튀었고, 결국에는 창틀만 남았다.

금방 손을 뻗으면 친구들에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처음에는 머리부터 시작했다. 창틀에 붙어 악악 소리를 질렀고, 아무도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누군가 문 바깥에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창고의 걸쇠를 풀어주었다. 그는 누구였을까.

눈을 떴을 때 나의 책걸상은 교실 밖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신경안정제를 가방 앞주머니에서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물도 없이.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아이들은 끼익 소리가 나는 목재 미닫이 문을 열고 우르르 복도로 쏟아진다. 볼에 눌려 생긴 팔의 붉은 자국을 보며 한바탕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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