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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11. 2024

박쥐


 그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여기저기 자주 부딪히는 탓에 복층 천장에 숨어 살기 시작했다. 하루의 대부분은 잠을 잤다. 이불을 끌고 와봐야 공중에선 잠꼬대 한 번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불을 덮는 대신, 양팔을 교차한 상태로 손가락을 최대한 길게 뻗어 어깨를 감싼다. 어깨너비도 채 되지 않는 크기의 창과 보일러가 돌지 않는 열약한 단열재에서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의식이었다.  

 성장이 멈춘 지 한참 지났지만 몸은 계속해서 자라나는 모양이었다. 나날이 바닥과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날갯짓을 덜해도 문 앞까지 재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형광등과 같은 높이에 단단히 매달려 있을 때, 문 바깥쪽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듣지 못할 소리지만 그에게는 유독 크게 느껴졌다. 선명한 시야를 잃은 대신에 소리와 냄새에 민감해진 것이다.

아직은 해가 떠있으므로 밖에 나가보진 못하였다. 낮 시간 내내 신경 쓰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달빛이 눈앞을 환하게 비출 때였다.

 천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지금의 생활에 이미 적응해 버린 상태였다.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누군가를 마주할 일이 사라지면서부터는 사람들의 시선을 짐작해 볼 필요가 없었다.


 평소 좌식 식당에서 신발을 벗을 때의 놓는 위치와 신발의 방향을 신경 쓰거나, 하차벨을 누른 정류장을 지나쳤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커왔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것도 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걸을 때는 늘 바닥에 시선을 고정했다. 덕분에 목은 옷걸이처럼 살짝 굽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위에 있을 때는 바닥의 키가 가장 크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의 몸이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심지어는 바닥과 천장이 가까워진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의 세상은 다시 설계되어야만 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제는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과거로 말이다.

 슬픈 표정으로 최대한 몸을 구겼다. 품을 감싸안던 두 손을 펼쳐 최대한 바닥을 밀었다. 서서히 천장과 바닥의 간격이 넓어졌다. 그의 몸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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