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H Feb 20. 2024

13살 유학, 영국 첫 365일

울기도 많이 울었다

2년가량 엄마 아빠를 조르고 졸라서 나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영국 유학길에 나섰다.


7막 7장을 읽고 겁 없이 졸라대는 나를 이기지 못한 엄마는 어느 날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다가 여성잡지에서 한국인이 영국에 국제학교를 설립한다는 기사를 읽고, 그렇게 나의 영국 ”맨땅에 헤딩“ 유학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펠릭스토라는 영국 바다 마을 시골에 자리 잡은 국제학교. 오래된 나름 명문이었던 영국 사립학교가 재정난이 와서, 그 학교 졸업생 부모이셨던,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분께서 학교를 인수하시면서 국제학교가 된 Felixstowe International College.


나를 포함한 한국의 소녀들 17명은 그렇게 F.I.C. 1기로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유학을 왔다.


김포공항에 모여서 설렘 반, 두려움 반, 여권을 챙기고 눈물을 훔쳐대는 부모님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그렇게 비행기를 탔는데. 그리 기억이 잘 나지는 않더라. 그중에서도 나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김포공항의 바닥.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도톰한 원형이 바둑같이 쭉 있던 고무바닥이었는데, 아마도 나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기가 싫어 바닥을 더 주시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도망을 가고 있었는데. 숨에 막히는 공부에 대한 압박. 살아나기 위해 도망을 가고 있었는데, 막상 그 길을 가려니 나도 아이였기에 두려움이 더했을 것을.


우리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저녁이었다. 학교에서 보낸 택시를 타고 몇 시간을 갔을까. 우리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 영화에서 나올 듯한 오래된, 웅장한 건물 앞에서 Mrs.M이라는 파란 눈의 Housemother 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 길을 와 출출한 한국의 소녀들을 위해 우선 과일과 쿠키를 준비해 주셨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청사과를 주셨는데, 한국에서는 껍질을 깎아서 먹던 우리는 다들 테이블 나이프를 집어 들고 사과껍질을 버껴내기를 시작했는데 Mrs.M 이 놀란 눈으로 웃음 반, 충격 반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던 그 눈길이 지금도 선명하다. 영국에서는 사과를 쓱쓱 닦아서 그대로 한입 베어 먹는 문화였기에.


그때의 나와 한국 소녀들은 쑥스러움, 흥분, 두려움, 배고픔, 피곤함, 이 모든 감정을 느끼면서 영국에서의 첫 밤을 시작했다.


그날 밤. 침대 6개가 들어가고도 뛰어다닐 수 있는 만큼 큰 Dorm에서 우리는 재잘재잘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잠이 들기 전 눈물 쭉. 집이 그립고, 가족이 그리워 이불 밑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터.


작가의 이전글 13살. 도피유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