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의 꿈
작가라는 꿈은 상상 속에서도 꿔본 적 없었다.
‘필명? 훗.’
내 이름 적힌 책에 대한 로망도 당연히 없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 일이었다. 컴퓨터의 언어를 공부했던 사람이었고 기업과 상품, 서비스의 겉모습을 구축하던 사람이었다. 사람 간의 다정한 소통에 귀 기울인 건 내가 글을 쓰면서였다. 내가 힘들어서, 숨 쉴 공간이 필요해서 글이란 도구를 사용하면서였다. 곁에 머문 글에 나를 위로하는 말들이 항상 존재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였다.
한 인간으로서 나를 바라보며 무작정 써 내려간 이야기는 글이 되었다. 내 얘기에 몰입해 일상이 버거울 때는 소설 속 타인의 삶으로 살아보기도 했다. 그것조차 마뜩잖으면 돌로, 나무로, 인형으로도 화자가 되려 했다. 글을 쓰려니 자세히 보게 되고 자세히 보니 모두 애잔하고 어여쁜 존재였다. 커피 위에 내리 앉은 보글보글한 거품 속에도, 폭신한 케이크 속 무화과에도 그들만의 이야기는 존재하겠지?
'바쁜 일상 속 글쓰기'란 말도 이제 참 후지게 들린다. 어느 누구 하나 안 바쁜 사람이 없다.
물속에서 발버둥을 칠지언정 물 위에서는 우아한 자태를 보여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지친 육신을 일으켜가며 노트북 앞에 앉고 짬이 나면 머릿속에 이야기를 굴리며 글 한 줄 남기려는 게 아닐까? 다양한 백조들이 노니는 브런치 호수에 내 이야기 하나 살포시 띄우려는 게 아닐까?
오늘도 나는 꿈 하나를 발행했다. 그 꿈은 어느 순간 누구의 손끝에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꿈에 '마법의 가루'를 한 줌 뿌려놓았다. 카푸치노를 마시는 그녀에게는 시나몬 가루가 되고, 허겁지겁 순대국밥을 밀어 넣는 그에게는 들깻가루가 되길 소망한다. 그거면 족하다.
색이 뚜렷한 작가보다는
색을 정할 수 없는 작가
글이 예상되는 작가는 내겐 매력 없는 꿈이다. 전문성보다 진정성을 발행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이유는 내가 이곳에 온 목적에는 독자를 만나러 온 것도 있겠지만 나를 찾아온 것도 있으니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글쓰기가 먼저이고 싶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매일 변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매일 바뀐다. 나는 호기심이 더 늘어났고 영감을 아무 데서나 받으며 점점 산만하게 바뀌어가는 중이니까 그게 내 방향이다.
글이란 건 참 오묘하다. 글이 잡아당기는 인력은 매일 나를 설레게 한다. 글을 매개로 다양한 방향으로 넓어지는 나의 세계가 마음에 든다. 어릴 적 흙바닥에서 땅따먹기 하듯 뭔가 내 영역을 늘려가는 게 은근히 재미있다.
“앞으로의 꿈은 무언가요?”
40대의 나에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이리 답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브런치 안에서 달달한 꿈을 꾼다. 꿈을 발행한다. 누군가의 깊은 밤과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소중한 새벽과 만나기도 한다. 땅에 쓰러진 사람에게 비빌 얼굴이 되고 싶고 하늘을 건너야 닿는 사람과 습도를 공유하고도 싶다. 꿈같은 삶은 이런 게 아닐까?
누구도 나를 소설가로 부르지 않는다. 에세이스트나 시인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 작가다.
꿈을 발행할 자유와 사랑받을 권리를 가진 브런치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