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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Feb 03. 2024

이 시대의 결혼

그럼에도 왜 결혼을 택하는가?

"저 내년에 결혼할 것 같아요" 막내 직원이 시큰둥한 얼굴로 말한다

"어머 축하해 갈등하더니 드디어 결정했네"

"글쎄요. 축하할 일인지 모르겠어요"

결혼소식을 전하는 막내는 의외로 밝지 않은 얼굴로 복잡한 사연을 이야기한다

사연인즉슨 청년정부지원적금을 두 개 들고 있어 지금의 직장을 옮기지 못하는데 타 지역에 있는 남자친구가 적금을 포기하고 남자 친구가 있는 지역으로 와서 가정을 꾸리자고 해서였다.

"제 직장, 가족, 친구 모두 여기 있는데 제가 거기 가서 뭐해요. 게다가 적금을 깨고 오라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바탕 싸우고 왔어요. 저는 적금 만기동안 주말부부로 살고 싶어요"

적금만기가 앞으로 3년 이상 남았는데 주말부부라...

문제는 시어머니 되실 분이 부부는 함께 살아야 하지 않냐며 여자가 남자를 따라 직장을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남자친구가 그대로 여자 친구에게 전달을 해서 더욱더 화가 난 것이었다.

"그런데도 결혼을 결심했네" 

나의 웃음 섞인 질문에 막내가 대답한다

"네 그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결혼생활 20년인 내 눈엔 투덜거리는 막내가 참으로 귀엽다.

당사자는 심각한데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음이 자꾸 흘러나왔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변하는 세상만큼 우리의 사고방식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여러 가지 트러블이 생긴다


세대 차이, 세대 갈등, 고부 갈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자가 하는 결정에 여자는 당연히 따라야 했고

맞벌이임에도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었으며

결혼과 동시에 여자는 시부모님을 친정부모님보다 더 자주 만나고 , 먼저 챙겨야 하는

시댁 자식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너무 재미있는 것은 내가 25년 직장생활에서 만난 유부녀들은(나와 팀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99%가 여성임)  시어머니에게서 남편식사 잘 챙기라는 당부의 말을 모두 한 번 이상 들어 보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여러 번 들었다)

게다가 그런 말을 들은 아내가 남편에게 투덜거리면 남편은 적진에서 아군을 만난 듯 매우 든든해하며 기뻐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동반자가 아니라 시어머니의 아들을 내 아들로 입양한 느낌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세상이 변하고 의식도 변하고 있다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여성들도 동등하게 교육받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차별에 대한 의식이 날로 변해 가는데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주변사람들이고 직장동료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여러 가지 갈등을 겪는 여성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남자들의 권력(나는 권력이라고 느꼈다)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생존에 오히려 위협이 되는 특징들이 번식에 이득을 주기 때문에 선택되어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

성선택은 두 가지 형태를 가진다

첫째는  성내선택 :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이 경쟁을 벌이는 것

둘째는  성간선택 :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수컷들이 자신의 신체의 특징을 진화시키는 것  


이 이론을 보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들이 열심히 경쟁을 하는 것이 암컷이 우위에 있는 듯 느껴진다

(암컷이 선택을 하는 입장이므로)

설사 포식자들의 눈에 띄어 목숨이 위태로울지라도 수컷은 화려한 깃털을 뽐내고, 동족 수컷끼리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리하여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강한 수컷을 암컷이 선택하여 자신이 선호한 형질의 자손을 번식하게 되면서 이러한 형질들이 진화하게 된다.


 인간의 남자들은 사냥을 잘하고(경제적 능력),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책임감), 부족의 신뢰를 얻어 무리와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성)이 좋아야 여자들이 자손을 낳아 안전하게 기를 수 있었기에 그런 형질을 진화시켜 왔다.

여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보다 능력 있는 남자에게 보호를 받고, 믿고 의지하며 자신들의 자손들을 키우고 살아왔다.


하지만 남자가 마음이 변하여 경제적 능력과 책임감을 자신의 아내와 자녀에게 보이지 않고 다른 여성에게 이런 능력을 보이거나 혹은  사망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남자의 부재는 아내와 자녀의 생존문제에 치명적이다.


그리하여 보호를 받는 아내와 자녀에게 남편은, 아버지는 하늘과 같다.

자신들의 생존을 쥐고 있는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한 집안의 가장인 남자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고 절대적인 권력을 쥘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여 남녀가 함께 일하는 세상이 되었다

외벌이로는 평생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고, 자녀의 교육도 남들만큼 시키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결혼을 하면 수입보다는 비용이 많이 일어나고, 자유는 사라지고 책임감만 남는다며 

남녀 할 것 없이 비혼주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여자 조상들이 느꼈던 생존의 위협도 느끼지 않게 되어 

남편과 시댁의 갈등을 겪는 결혼은 더 이상 필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다수를 이룬다. 

세상살이의 고됨이 유전자를 이기고 있는 듯하다.


요즘에는 노처녀, 노총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의미 없기 때문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데 왜 결혼하냐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자신의 딸에게는 결혼하지 마라고 한다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내가 20대 30대였을 때는 내 주위에 30살 넘은 여성들이 미혼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열 명 중 네 명은 30살 이상 미혼인 여성이다

모두 남자친구가 있고 동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고 한다

친구들도 있고, 취미도 있으면 직장 생활하면서 혼자 살아도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로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에 대한 로망

가정을 꾸려 알콩달콩 신혼을 즐기는 로망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아 함께하는 로망

힘들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에 대한 로망


그리고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말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플 때의 서글픔

친구들은 모두 가정이 있어 잘 만나지도 못하고 대화할 소재도 없어 느끼는 고독감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늙고 병들고 아플 때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 등 등


"이런 생각을 하면 결혼을 하고 싶지만 결혼도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예요. 경제적인 것도 그렇고...

시댁이나 그런 것들도 잘하지 못할 것 같아요.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는 것은 더더욱 두렵고요..."


비혼을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비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성별로 차별하지 않고, 그들을 독립된 성인으로 인정을 하고 존중해 주는 어른들이 아직 많지 않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나는 결혼생활 20년 차 경험자로써 대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 생기면 결혼은 꼭 한 번 해 봤으면 좋겠어. 같은 곳을 바라보며 , 같은 목표를 가지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참 든든하고 행복한 경험이야. 힘든 일이 생겨도 함께 헤쳐나갈 내 짝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더라. 그리고 나만 생각하며 살다가 어느 날 상대방을 먼저 챙기고 살피는 내 모습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면서 생각했어. 내가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하고... 물론 나 자신 말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해. 그래도 나한테 힘든일이 생기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의지가 되는 것은 역시 가족이더라. 지금 걱정하는 일들은 함께 잘 극복할 수 있을 거야. 함께하면 두배로 지혜와 용기가 생기기도 하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해"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인가


그럴지라도 나는 "하나보다는 둘이 좋은 것 같다"는 막내의 말에 한 표를 던진다.


이 시대에 결혼을 하는 모든 커플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택한 그대들 앞날에 축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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