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희귀 난치병 척수이형성증
# 첫 번째 글
21년 8월, 아무것도 모르는 아가는 응애하고 세상에 얼굴을 비췄다. 울던 아가가 내 품에 안기더니 잠시 미소를 지었다. 엄마인 나를 알고 웃었던 건지, 나는 그 순간이 잘 잊히지 않는다. 출산의 고통과 기쁨도 잠시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다른 데는 모두 괜찮은데 등에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저희 병원이랑 연계된 소아과 선생님이 보셨는데 퇴원하면서 의뢰서 작성해 주신다고 해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조리원 퇴소 후 바로 간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는 더 상급병원으로 가라고 말씀하셨고, 여러 병원을 거친 끝에 아이의 병명을 알게 되었다.
척수이형성증. 척추 뼈가 있을 자리에 뼈가 없고, 그 자리를 지방들이 채우고 있는 지방척수수막류라는 이름의 선천성 희귀 난치병. 그 지방들이 척수 신경과 얽혀 있고 하반신 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더 쉽게 말하면 척추 기형이기에 다른 곳도 기형이 있을 수 있으니 뇌랑 심장 검사도 해보자는 이야기까지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유모차 속 꼬물거리는 아가를 보니 다리가 흔들거리고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려졌다.
진료를 보고 친정엄마네로 향했다.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 몰랐던 우리는 달리는 차 안에서 서로 말을 건네지 못했다. 엄마를 보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엄마 나 어떡해.. 미안해"였다. 그 와중에도 평소 걱정 많은 엄마에게 또 걱정할 일을 생기게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먼저였다. 그리곤 펑펑 울었다. 자라면서 엄마에게 늘 씩씩했던 딸이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엄마에게 안겨 울어보았다. 같은 시간 남편도 차에서 어머니께 전화해 상황을 전하며 울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 무서움을 울음으로 먼저 달래 보았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남편과 나는 죽고 싶은 심경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얼마나 어디가 안 좋은 걸까.. 우리가 과연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병은 몇 십 년간 밝혀진 원인이 없기에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대체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아이에게 또 다른 아픈 곳이 있으면 어떡하지. 뇌는 괜찮은 걸까.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꽉 찬 상태로 아이의 눈동자를 살피고 몸짓을 관찰하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 걸까. 너무 막막하고 무서웠다. 그렇게 한참을 며칠 동안 온 가족이 울고 난 뒤에야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내 울음이 멈출 수 있도록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주신 분이 생각난다. 산부인과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인데 조리원 퇴소 후에도 연이 닿아 만남을 이어갔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분의 첫째 아이가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것의 힘겨움과 아픈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고통스러웠던 마음들을 전해 들으며 내 마음도 무척 아팠다. 자연스레 내 이야기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서로 각자의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리곤 그때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하나님도 이 아이를 어느 가정에 보내실지 무척 고민이 많으셨다고.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 보내면 무척 사랑받고 클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그 순간 마음 아프지만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그렇게 믿어야 나도 숨 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작고 예쁜 꼬물이를 정말 많이 사랑할 확신도 들었다. 평소 믿고 있는 종교는 없지만 그분이 내게 해주셨던 이 날의 위로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특별한 아이가 우리에게 온 이유.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우리 가정에서 무척 사랑받고 자랄 수 있기에 우리에게로 왔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울컥해진다. 앞으로 어떤 시련과 아픔이 아이에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잘 키우고 싶다. 마음이 단단한 아이는 곧 사랑 속에서 크는 아이이다. 많이 사랑하고 사랑을 주는 부모가 되어주는 것. 그리고 그 곁을 언제나 함께하는 엄마가 되리라 나와 약속한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글을 쓰는 이
by 마음 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