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 묻어둔 마음들은 꺼내어 돌볼 필요가 있다.
혼자 있는 고요한 오후 시간.
며칠 전 동글이랑 함께 있을 때 애써 묻어두었던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놀이터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동글이는 좋아하는 자동차들을 챙겨 나와 함께 놀이터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자동차를 미끄럼틀에 내려보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하루 일과를 마친 형아들이 우르르 우리가 있는 놀이터로 왔다.
서로가 친구인 듯 보이는 아이들 여섯 명은 모여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신나게 흩어져 잡기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동글이보다 1-2살 많아 보이는 아이들은 어찌나 빠르게 쌩쌩 달리며 높은 곳에서도 점프를 하고 뛰어내리고 노는지. 그 모습을 우두커니 멈춰 가만히 바라보는 동글이다. 그렇게 한 참을 한 형아의 움직임을 눈동자가 따라다니기 바쁘다. 그 시선을 따라가 한 아이의 움직임을 같이 묵묵히 바라보는 나.
더 어릴 땐 다른 또래들에게 관심조차 없던 동글이가 어느새 세돌이 지나 나와 친구들이 다르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 날은 달리고 싶다고 달리는 걸 시도해보기도 하고, 깡충깡충 제자리 점프도 해보겠다며 시도해보기도 하더니 “왜 안 되지? 왜 자꾸 넘어지지?”라고 말하며 조금씩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런 동글이가 그 순간 놀이터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가만히 뛰어다니는 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동글이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눈물이 났다.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고 싶었을 동글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 마음도 속상하고 슬픔을 바라보면서도.. 내가 흘리는 눈물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눈물들로 이런 애도의 시간을 겪어내야 할 동글이를 생각하며 마음이 더 아파왔다.
동글이가 장애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얼마나 더 많은 시간들이 걸릴지.. 동글이가 조금씩 커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어려움들이 더 많을 것이기에 앞으로 수없이 이런 시간들이 반복돼야 함을 직감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슬픈 마음에 머물러 눈물을 쏟아내니 다시 마음이 정돈되었다. 애도의 과정을 외면하지 않고 그저 덤덤하게 내 안의 여러 감정들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 외면하고 묻어둔 마음들은 꺼내어 돌볼 필요가 있다. 내 안의 바라보기 어려운 감정들을 느끼고 헤아리고 이해해야만 아이의 마음도 함께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점점 더 커가는 동글이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슬프면 슬픈 대로, 속상하면 속상한대로 그 마음 자체를 외면하지 않고 느끼고, 나누어 해소할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하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