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일 차 아이의 수술 시간
# 세 번째 글
한 달에 한 번씩 척추 초음파 검사를 하며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왼발 움직임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근전도검사 결과 왼쪽 다리 신경에도 이상 신호가 발견돼 교수님과의 상의 끝에 수술을 앞당겨 진행하기로 했다.
수술 전 날 mri 결과를 보면서 교수님은 우리 아이가 지방척수수막류 환아들 중에서도 1-2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곤 척추 쪽 지방이 신경을 너무 누르고 있어서 수술을 위해 피부를 절개했을 때 압력이 풀리면서 오히려 신경들이 손상으로 받아들여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고 덧붙이셨다. 실제로도 이런 선례가 있었고 수술실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하반신 마비가 될 수 있다고....
다 지난 지금 돌이켜봐도 나는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뎠을까. 그땐 정말 그냥 도망가고 싶었다. 수술을 피하고만 싶었지만 우리 동글이는 오히려 수술을 하지 않으면 하반신 마비는 기정사실이었기에 내게는 다른 선택권이 없어 피할 수도 없었다.
수술 전 동의서 작성을 위해 한참 동안 설명을 들었지만, 더 나아지기 위한 수술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술이라는 결론이었다. 보호자로 수술 동의서를 작성하고 나와 정말 한 참을 울었다. 코로나로 보호자는 1명밖에 입원실에 들어오지 못해 그 시간들을 홀로 견디면서..
다음 날 아침 8시. 동글이를 수술실로 보내고 난 뒤 기도하며 기다린 그 시간들이 생각난다. 오전 시간은 덤덤하게 잘 보냈는데 남편과 점심을 먹으면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밥을 먹는 이 시간에도 우리 동글이는 차가운 공기 속 수술실에 엎드려 긴 시간을 버티고 있는 걸 생각하니 밥을 먹는 게 미안했다. 그래도 먹어야 했다. 수술이 끝나면 아이를 간호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니 힘을 내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날 하루는 내게 너무 긴 시간이었다. 오후서부터는 수술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수술실 바로 앞 대기 공간에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제자리걸음을 하며 동글이의 소식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하반신 마비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을 감사하며 살자고, 어떤 결과를 듣던 괜찮다고 남편과 이야기하며 기도했다. 우리의 모든 운을 동글이가 가져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보호자님은 수술실 입구로 와주십시오 - S병원] 드디어 문자가 왔다. 밤이 되어야 수술 결과를 들을 수 있었고,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셨다. 수술 중 다리의 모든 신경 신호가 떨어지지 않았기에 하반신 마비라는 불운만은 피해 갔다. 다만 오른쪽 다리의 신경들이 한 번에 신호가 떨어지긴 해서 지켜봐야 한다고, 그 외에는 만족스럽게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 말을 전해주는 교수님께 어찌나 감사하던지.. 어떤 표현으로도 그 마음을 다 담을 수가 없다.
그렇게 동글이는 밤 10시가 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14시간이라는 무겁고 힘겨운 시간들이 지나서야 우리 아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동글아 엄마 왔어. 괜찮아. 잘 자고 내일 만나자.”
덤덤하게 인사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우리 아이가 맞나 알아보지 못할 만큼 온몸이 부어 있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찢어졌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 엄마가 강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만 했는데, 어느새 나도 강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2021년 11월 22일, 반나절보다 조금 더 긴 14시간의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고 또 단단한 엄마가 되게 했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글을 쓰는 이
by 마음 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