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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JI Sep 06. 2024

사셰 물(Sachet Water), 대책 또는 미봉책

한국에 사는 동안 물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이 물 부족 국가라고 했지만 전혀 와닿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수돗물은 마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 걱정으로 곧 물을 돈 주고 사서 마셔야 한다고 하는 시대가 정말로 왔지만 쉽게 적응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물을 많이 쓰게 되니, 페트병 재활용 쓰레기가 많아져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브리타 정수기를 당근에서 샀다. 정수해서 마시는 수돗물도 맛이 좋았다.


가나에 와서 지낸 지난 1년, 특히 건기 때, 단수가 몇 번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그때마다 물을 실은 트럭이 와서 물탱크를 채웠다. 식사 준비할 시간, 설거지할 시간, 씻을 시간에도 물이 곧잘 끊겨서 불편했다. 마시는 물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수도 필터는 보통 한 두 달에 한 번 교체를 권장한다는데, 여기 와서 필터를 끼워놓으면 며칠 되지 않아 누런 색이 되었다. 필터를 매주 바꿀 수는 없고, 브리타 정수기가 녹을 잘 걸러낼지도 의심스러웠다. 1.5리터나 4리터 생수병을 매일같이 사다가 날랐다.


어느 날은 지방 출장을 다녀온 지인이 장티푸스에 걸렸다고 했다. 장티푸스는 주로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된다고 한다. 한국인 의사 선생님이 생으로 먹을 채소와 과일은 마지막에 반드시 생수에 씻어서 먹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 뒤로 생수를 더 많이 쓰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걸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먹는 걸까. 최근에는 19리터짜리 대형 생수통을 사 와서 뒤집어엎어 놓고 입구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쓰기 시작했다. 이게 최선인 것 같다.


사실 내가 한 말은 다 배부른 소리다. 가나에서 모두가 언제든지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 실제 가나 사람들은 식수를 어떻게 마시는 것인가? 가나 볼타(Volta)의 두 농촌 지역(Ho West 및 Adaklu)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720 가구에게 묻고 얻은 답을 찾았다. 2022년에 작성된 것이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출처 : An assessment of the water, sanitation and hygiene (WASH) situation in rural Volta Region, Ghana | PLOS Water)

출처 : 위키피디아

수도 다음으로 사셰 물, 우물, 빗물 순이다. 다 알겠는데 사셰 물이 낯설다. 비닐팩에 담긴 물이다. 그러고보니 시장에서 아이가 바닥에 떨어뜨린 흰 사탕을, 아이 엄마가 비닐팩에 든 물에 씻어서 입에 넣어주는 걸 본 기억이 났다. 이어서 어렸을 때 먹었던 삼각팩에 든 우유가 떠올랐는데, 사실 그보다는 얇은 (한눈에 보기에 손으로도 뜯을 수 있는) 비닐에 담긴 물이다. 사셰 물 덕분에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으니 일단 안심하려고 했는데,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이 눈에 또 띈다.


경제적 여건 상 수돗물이나 생수통에 든 물을 사기 어려운 사람들이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들고 다니기 편리한 사셰 물을 사서 마신다. 그런데 길에 버려진 사셰 비닐은 하수구를 막고, 쓰레기를 태울 때는 공기가 오염된다(여기서는 쓰레기 태우는 모습을 종종 본다). 태우지 않은 비닐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https://www.unep.org/news-and-stories/story/rarely-told-story-widely-used-water-sachets). 내가 배출하는 페트병 쓰레기를 생각하니 사셰 쓰레기 양이 어마어마하겠구나 상상은 된다. 하지만 다른 플라스틱 쓰레기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아프리카의 저소득층이 주로 쓰는 사셰 포장 문제를 가장 먼저 바꾸자고 하는 것은 순서가 틀린 것 같다.*


어쩌면 좋겠는가? 다른 깨끗하고 안전한 물 공급을 늘리는 게 좋겠다. 가나 정부는 “WASH 부문 개발 프로그램 (GWASHSDP) 2021-2030”을 갖고 있고, USAID와 같은 양자 원조 기관과 NGO들이 WASH 분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참고로 WASH는 Water Access, Hygiene and Sanitation의 줄임말이다. 식수 문제와 위생 문제는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사업으로 진행한다. 가령 화장실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대소변이 식수원을 오염시켜 질병에 걸리게 마련이다. 코파일럿에게 물어보니 이런 프로젝트는 주로 다음과 같은 세부 목표와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안전한 음용수 공급: 우물, 보어홀, 정수 시설 등을 설치하여 지역 사회에 깨끗한 물을 제공합니다. 물 공급 시스템의 유지보수와 관리 교육을 통해 지속 가능한 물 공급을 보장합니다.    

위생 시설 개선: 화장실과 같은 기본적인 위생 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유지 관리하는 방법을 교육합니다. 위생적인 생활 습관을 장려하여 수인성 질병을 예방합니다.    

지역 사회 교육: 물과 위생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지역 사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깨끗한 물 사용과 위생적인 생활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국제 협력: 개발도상국의 물과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기구와 협력합니다. 물 관리와 위생 관련 기술을 공유하고, 현지 역량을 강화합니다.    

사셰 물을 대체해서 수돗물이나 보어홀을 이용하는 인구가 더 많아지길 바라지만, 보통의 개도국이 그렇듯 재원이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뾰족한 수가 있으면 좋겠다.


* 제 글을 읽은 친구가 알려주었습니다. 얇은 포장 비닐은 재활용이 불가능해서 문제성 플라스틱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페트병은 상대적으로 재활용이 쉽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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