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서 새로 경험한 것 한 가지는 전기세 선불 제도이다. 한국처럼 사용 후 내는 것이 아니라, 쓰기 전에 계정에 미리 돈을 넣어둬야 한다. 잔액이 0이 되면 바로 전기가 끊긴다. 가차 없이. 처음엔 이걸 모르고 정전으로 착각해서 마냥 앉아서 전기가 돌아오길 기다린 적도 있다.
적응 후에는 매월 잔액을 확인하고 1,000세디씩 충전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초반엔 수천 세디가 청구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전기를 아무리 써도 잔액이 줄기는커녕 충전 금액만큼 늘어났다. 요리도 전기로 하고 에어컨도 마음껏 트는데 이게 무슨 일?
다행히 가나전력회사(Electricity Company of Ghana)도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나 보다. 7월에 우리 아파트의 모든 미터기가 교체되었다. 우리 아파트만의 문제였기를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전력회사의 재무상태를 걱정해야 할 테니. 왜 전기세를 선불로 받는지도 알 것 같다. 우리 아파트만의 문제였을 것 같지가 않고, 회사 재무상태는 이미 썩 좋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데서도 돈이 새고 있을 거다. 받을 돈은 선불로 받는 게 회사 입장에서 안전하다(근거 없는 생각의 전개임에도 스스로 확신하게 된다).
여기 와서 초반 몇 개월 간 정전이 잦았다. 그때마다 아파트에 별도로 설치된 발전기가 윙~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전기는 다시 공급되었다. 몇 분 후 다시 정전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뉴스를 찾아보니, 작년 10월에는 전국적인 규모의 정전이 있었다고 한다. 가스 공급업체들이 대금을 받지 못해 가스 공급을 중단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나는 1984년, 1994년, 1998년, 2007년, 2012-2015년 등 여러 차례 전력 부족을 겪었다. 배전 시스템 손실, 전력 생산자가 비용을 회수하기 어려운 요금 구조, 소비자의 전기 요금 미납이 원인이다. (선불제의 진짜 이유를 찾았다. 미납 요금 때문이구나!) 특히 2012-2015년 전력 위기는 가나 역사상 가장 심각했다. 화력 발전소에는 전력을 공급할 가스가 없었고, 가뭄으로 수력 발전도 어려웠다. 2014년에만 약 159일의 정전이 있었다고 한다. (출처 : Power demand in Ghana has dipped after every crisis: the drivers and consequences (theconversation.com))
전력이 크게 부족할 때는 지역별로 번갈아가며 전기 공급을 끊어 대규모 정전을 예방한다. 둠소르(dumsor)라 부르는데 아칸어로 "켜졌다 꺼졌다"를 의미한다. 우리 말로는 순환 정전으로 번역된다. 가나전력회사에서 둠소르 일정을 사전에 공지한다.
가나 전력 공급원을 찾아보니, 2011년에는 67%가 수력, 33%가 화력이었는데, 2022년에는 수치가 역전되어 화력 67.9%, 수력 31.4%이다. 남은 1% 미만이 신재생에너지(태양광)이다. 2022년 가나 정부는 원자력발전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후보지는 서부의 Nsuban 지역과 중부의 Obotan 지역 두 곳이다. 가나 정부는 6개국에 정보요청서(Request for Information, RFI)를 발송했고, 답변서를 제출한 국가는 한국, 미국,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 및 중국이라 한다.
가나는 2030년 원전 가동을 목표로 단계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3년 10월에는 아크라에서 미-아프리카 원자력 에너지 서밋(US-Africa Nuclear Energy Summit, USANES 2023)을 개최했다. (출처 : 가나 원자력 발전소 추진 동향 (kotra.or.kr))
전력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데, 신재생에너지는 갈 길이 멀고, 화력 비중을 늘리기보다는 원자력 발전을 하는 것이 나은가. 이집트, 케냐 등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도 속속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다 함께 최악을 피해 차악으로 가는구나 싶다.